BASEBALLPARK

0.  전에 잠깐 이야기 한대로, 이미지 쇄신을 위해 짧은 까페 기행을 몇편 올리겠습니다.

소기의 성과를 거두어야 할텐데 말이에요.


1.

-낮고 작은 원목 테이블은 약간 기울어져 있어 밀크티를 담은 묵직한 유리포트를 들어올릴 때마다 하늘거리며 내려앉던 그아이의 시소처럼 잔잔히 흔들렸다.
포트 주둥이에 맺힌 베이지색 밀크티 방울을 유리잔 가장자리에 지긋이 그어 넣고 포트를 내려놓자..
 작은 원목테이블은 이내 안정을 되찾았다.

-여자는 훌륭한 밀크티를 내왔다. 작은 나무 쟁반에 체크무늬천으로 만든 컵받침을 깔고 유리 포트를 올려내온 밀크티.
티에 밀크를 넣은 것과, 우유에 티를 우려낸 것 그 어딘가. 중간 쯤의 맛.
그저 좋은 밀크티였다. 까칠한 얼그레이로 내린 것이 아닌 것도 마음에 들었다. 매운 맛의 얼그레이로 만든 밀크티는 독기 품은 숙녀와 같다.
짝사랑하던 남자에게 몹쓸 말이라도 들은 것처럼.


                                                                  -<Sping come, Rain fall> 첫방문

2. Cafe <Sping come, Rain fall> 은  디자인 문구회사에 사무실 1층에 있는 작은 까페입니다. 4개의 테이블이 있는 좁은 실내. 그마저 한쪽벽에는 디자인 문구를 몇개 전시해 놓았습니다.

아 , 그래서 별로냐구요? 아뇨. 전혀.

작지만 답답하지 않은 곳입니다. 공간이 사람을 옭조여 오지 않아요.


쓸데없긴 하지만 잠시 까페의 기본에 대해서 점검해 봅니다. 저같이 혼자 돌아다니는 까페체류자의 경우 몇가지 원칙을 가지고 까페에 갑니다. 굉장히 자의적인 기준입니다만.
  
- 정말 급하게 카페인이나 수분이 부족하지 않은 이상 체인점엔 가지 않는다.
 ;대기업 체인의 배를 불려주기 싫을 뿐더러, 통일된 맛이나 메뉴는 어쩐지 돈이 아깝다는 생각.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의 공간이 적당히 확보되어야 한다
; 분명히 주인은 알고 있다. 테이블의 간격이 손님에게 끼치는 영향을. 그럼에도 테이블을 꽉꽉 밀어넣는다면. 그건 돈독이다. 가게세가 비싼 곳이라면 이해할 수 있지만.
이해는 하되 가지는 않는다. 오직 이해만 해줄 뿐.

- 밀크티, 녹차라떼를 시켜본다. 분말이면 out
; 커피는 속일 수가 없다. 아메리카노를 시켜보면 그집의 커피 수준은 단박에 알 수 있다. 적어도 오래된 원두를 쓴다면 (쩐내) 그집의 수준은 거기까지. 커피의 수준은 까페마다 비교적 평준화되어 가고 있는 추세. 던킨의 놀라운 성장을 보라. (로스팅 공장을 차리다니!)
그렇다면 까페의 수준을 가장 쉽게 가늠할 수 있는 메뉴는? 바로 밀크티와 녹차라떼. 또는 커피가 들어가지 않은 그집의 독특한 메뉴(요거트류 등등)
분말로 된 액기스를 우유에 타주거나 한다면 이건 상도의가 없는거다.

-케이크나 쿠키, 패스츄리 류는 홈메이드 수준으로  판매해주었으면...누나가 너무 많이 바라는 거니..
;직접 만들면 제일 좋겠지만, 안되면 괜찮은 집에서 떼와도 좋다. 구비하고 있는 달콤한 것들의 맛과 수준을 보면 까페 주인의 까페에 대한 정성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 스타벅스는 자신들이 조선호텔 파티쉐에서 공급받는다고 하지만. 조선호텔에서 파견나온 직원이 감독하는 공장일 확률이 높다. 조선호텔만 붙이면 레베루가 올라가는게 아니지 않는가 이사람아!)



오늘 [거기. 그. 곳]의 첫번째 방문지가 된 Cafe <Sping come, Rain fall>은 위의 기준에서 볼때 나쁘지 않은 곳입니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발견하고 들어간 까페였지만, 지금은 제가 좋아하는 자리가 있을 정도로 애정을 주는 곳이 되었습니다. .

커피 원두는 illy 것을 쓰지만, 아주 맛있는 편은 아닙니다. 원두의 문제이기도 하고, 뽑는 기술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크레마가 별로 없더군요. 아쉬워요.
오히려 이집에서는 티 라떼류나 요거트류를 드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저희는 아이스크림 와플 세트로 아메리카노를 먹었습니다만,
 혼자올 때는 티라떼나 녹차라떼를 마십니다.

오늘은 절 이곳으로 영도해준 선배와(지금은 제밑의 하수인이되었지만) 함께 갔습니다.
전에 알려준 커피집에서- 다크 초콜렛 70% 로 만든 초컬릿케이크를 파는-
 더이상그 케이크를 판매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심히 절망한 선배.
이곳의 브라우니가 비슷한 맛을 낸다고 하자 '얼씨구나 신난다! 데려가줘요! '모드가 되어
소나기가 내리는 일요일 저녁 함께 까페를 찾았습니다.
선배의 절친(애인..;?)이자 한때 제가 속했던 식신 팀 감독이신 '김옹'께서 함께하셨어요.
한 떡대 하는 남자 둘을 끼고 보쌈집에서 보쌈세트먹고, 까페까지에 가자니
어쩐지....
밥하기 싫어서 아들 둘 끼고 외식하러나온 젊은 엄마처럼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하아. 내가 이것들을 낳은 것인가..

3. 오늘 찍은 사진 몇장.





▲메뉴판을 열심히 보시는 김옹 . 왼쪽에는 사향고양이 똥꼬에서 나온 커피빈 코피 루왁. 
향이 좋지만. 어쩐지. 똥꼬. 라고 통에 크게 써주고 싶었어요.  잠깐 들른 다른 친구집에서 얻었다고 합니다.





▲  까페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자리. 길고 치렁치렁한 치마를 입고가서 소파에 앉아 양반다리를 한후 치마속에 다리를 쏙 넣으면 아주 편해집니다.
오래오래 책을 읽을 수도 있고, 창밖으로 안마당을 볼 수도 있습니다.



▲좋아하는 자리에 앉아서 본 까페 안마당. 내려가 본적은 없습니다. 가끔 새들이 내려앉아 왔다갔다 하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심장이 도곤도곤 하는 작고 귀여운 참새들이 자주 옵니다.



▲뒷쪽에 있는 4인석 테이블. 작업하기 좋은 테이블입니다. 스케치북같은걸 펼쳐놓고 무념무상의 상태로 낙서에 열중하기 좋은 자리입니다.




▲디자인 문구를 진열해 놓은 한쪽벽면. 심플한 것들이 대부분이며 값도 아주 비싼 편은 아닙니다.



▲좋아하는 자리에서 찍은 입구쪽. 정말 작은 가게입니다.
하지만 테이블 사이의 간격이 아주 좁지는 않아요.





▲ 출입문 옆에 흰벽에 찍힌 몇글자들.  봄도. 비도. 돌아올겁니다.
싫어도 올테니. 걱정말아요.

▲ 팔'만'은 잘생긴 선배. 맥북을 지르시는 과감함을 보여주시기도 하는 분. (=할부 노예)



▲ 먼저 음료가 나왔습니다. 아메리카노 2잔+아이스크림 와플 세트, 그리고 아이스 모카를 시켰습니다.



▲이집에 온 주 목적인 브라우니 세조각도 나왔습니다. 브라우니는 차를 시키면 한조각씩 줍니다.
토할때까지 먹여준다고 약속했던 선배. 그러나 브라우니는 단품으로 팔지 않더군요;
오빠 본의아니게 사기쳐서 미안. 그래서 내 것 반만 먹고 오빠 반 줬잖아;
이런걸 두고 희생이라고 하는건가.. (강유미 버젼으로 배꼽쥐고 웃는다)





▲ 애완견 '기다려!' 모드로 기다리는 중. 고양이발 자세. 이미 입가에는 침이 흥건.




▲막간을 이용하여 김옹께서 비틀즈와 친환경을 보여주는 퍼포먼스를 펼치셨습니다.

작품명; 내비둬.




▲티 쟁반에 같이 나온 장식용 식물.
이게 시럽이냐 아니냐 두 선배분께서 논쟁을 펼치셨습니다.
이에 식겁한 까페 언니 등장 曰' 그거 드시면 안돼요....!'
아 ..  이들이 내 아들들이 아닌게 얼마나 다행인지.







▲그리고 세남녀는 밤길을 걸어 그곳을 떠났습니다.



4. 까페에 앉아서 오래오래 노닥노닥 거리는 것은 고요한 제 주말의 일과입니다.
혼자있어도 괜찮다고. 집 아닌 곳에서도 나는 편안합니다.
다음주에도. 혼자서 까페에 갈예정입니다.

괜찮아요.

조금 더 행복해지기로 했습니다. 



 피부결이 뽀얀 소년이 와서 카푸치노 거품같은 키스를 하고 걸어 나갔다.
그가 문을 밀고 나갈 때야 비로소 나는 키스의 뒷맛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딘지 가슴앓이를 한 키스였다. 
그러나 나는 그를 잡진 않았다.
 
                    -<Sping come, Rain fall>에서.




▲팔뚝이 굵게 나왔다는 항의를 받은 얼굴 나오는 인증샷을 지우고
오늘 입은 꽃 원피스 인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