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검은 머리. 스머프. 호남선 기차
- 작성일
- 09-07-01 02:30
독거 이야기로 꽃을 피우다보니, 정말 가슴이 후벼파질 정도로 심각한 후폭풍이 있었던
시절이 생각납니다. 그 때는 그냥 제 자신만 믿고 살자고 스스로를 채찍질했던 시기였네요.
학생회 일에 코가 꿰이고, 카투사 시험에 낙방하고, 현역으로 입대했다가 팔이 부러지는 바람에 귀향.
결국 대학 4학년을 졸업하고 군에 입대하게 됩니다.
12월 기말고사를 마치고, 군대에 가려면 몇 달 남은 상황.
놀자니 눈치가 보여서 알바를 시작합니다.
홍보대행사입니다. 소개시켜준 사람이 운동권 선배라 그런지 빨간 사람들이 득시글 거립니다.
첫 주가 끝나고 또래들끼리 모여서 술 한 잔 합니다.
각 학교 운동권 졸업예정자들은 다 모였더군요. 그 정도의 차이일뿐.
(저처럼 희미한 사람부터, 진-한 사람들까지)
골방에서 술마시다 제게 노래를 시킵니다. 뺄 수 없는 자립니다.
공연때 솔로로 불렀던 노래 한 곡 부릅니다.사람들 술에 취해 대충 환호해줍니다.
뒷풀이가 끝나고 어떤 츠자분과 함께 지하철을 탑니다.
대학교 4학년 올라간다는 이 붕은 소위 "운동"한다는 사람들과는 거리가 먼데,
어케 선배 소개로 들어왔답니다. 근데 제 소개 할 때 야구 좋아한다는 말이 기억에 남았답니다.
제 가슴은 뜁니다. 하지만, 그녀는 엘지를 그리고 김재현과 유지현을 좋아한답니다. 털썩.
그렇습니다. 우리는 한 지붕 라이벌입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벌써 좋아지기 시작했으니까요-
같은 일에 배치가 됩니다. 핑계삼아 집에도 바래다 줍니다. 추운 겨울날 예술의 전당 구경을 갑니다.
"오빠? 민가말고 다른 노래는 못 불러요?" 평소 노래방도 가지 않는 제가
김장훈 ㅤㅎㅛㅇ아의 "나와 같다면"을 쌩목으로 부릅니다.
검은 머리, 흑단같은 검은 머리가 인상적인 그녀가 쌩긋 웃습니다.
몇 번의 이메일과 편지, 그리고 같이 영화보기가 끝난후.
"내가 곧 군대가지만, 너와 사귀고 싶다고" 담담하지만 진심으로 고백합니다-
1월이 되고 며칠이 지난 후, 쫌 보잡니다. "이제 우리 사귀는 거에요?"라고 합니다.
기쁜 마음에 엘지로 갈아탈까도 고민하게 됩니다.
몇 달 동안 너무 행복했습니다- 세상을 다 가진게 아마 이런 기분일꺼야...라고 느끼기도 합니다.
드디어 영장에 날짜가 박혀 나왔습니다. 제 마음도 그녀의 얼굴도 함께 어두워집니다.
언젠가 술먹고 전화해서 "군대 안가면 안돼?"라고 물어보는데,
작두로 손가락 자를뻔도 했습니다. 입대일이 왔습니다.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친구들, 선배들과 봉고차를 타고 논산으로 갑니다.
쏘주 한 잔에 불고기로, 마지막 사제 외식을 하고, 입대 순간을 기다리는데
전화가 옵니다. 입소대대에 왔답니다. 그녀를 만납니다. 저는 눈물이 나올 것 같은데,
검은 머리의 그녀는 말이 없습니다. 뜬금없이..랄랄랄 라라라 랄랄랄라라- 스머프 노래를
흥얼거립니다. 나중에 알았습니다. 눈물 날까봐 노래 불렀다고...
암튼 술김에 입대합니다. 그 후에 상황은 다 아실껍니다. 열라 구르고 또 구르고.
휴가 때 보고, 편지 받으면 화장실에서 보고 또 보고, 가져간 그녀의 증명사진(코팅)은
닳도록 매만집니다. 상병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대학원생이 되었습니다.
휴가를 나갔는데, 전화가 안됩니다. 무작정 그녀 학교를 찾아갑니다.
만났는데, 그녀 얼굴이 하얘집니다. 학교에 오지 말랍니다. 집에 가있으랍니다. 전화한답니다.
그 날 저녁, 전화로 이별 통보를 받습니다. 힘든 결정이니까 오빠도 받아줬으면 좋겠답니다.
군인 신분에 잡아봤자...어쩔 수 없다고, 그녀 맘 아프게 하지 말자고 다짐하고 그러마 했습니다.
유일하게 휴가 기간 동안 술도 안 마시고, 방 안에 쳐박혀 있더랬습니다.
복귀날, 몰래 그녀의 집 앞에서 학교 가는 그녀 모습을 봅니다.
서울역에 갑니다. 호남선 기차를 타고 복귀해야 합니다.
티비에는 며칠후 김대중 대통령이 역사적인 평양 방문을 한다고 난리입니다-
항상 소원했던 남북화해 따위, 그날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호남선 기차를 타고 부대에 복귀합니다-
언젠가 호남선 기차를 타고 같이 목포에 놀러갔던 일이 떠오릅니다-
천안을 지나면서 홍익회 아저씨한테 호도과자를 사먹었었는데, 그녀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왜 고속도로 휴게소 호도과자는 맛있는데, 기차 호도과자는 맛이 없을까?"
천안을 지나가는데, 별 일도 아닌 일이 생각나면서 눈물이 납니다-
옆 칸에 앉은 젊은 처자가 흉측한 광경이라 생각했는지 이상한 눈초리로 곁눈질 합니다.
여자사람 때문에 처음으로 눈물 흘렸습니다.
부대에 복귀해서도 며칠 동안 밤마다 화장실에서 소리없이 울었습니다.
6.15 공동선언을 이뤄낸 역사적인 그 해의 6월은,
저에게는 마음을 굳게 했던, 회색빛의 6월이었습니다.
스물 다섯 어깨 쳐진 청춘. 2000년 입니다.
시절이 생각납니다. 그 때는 그냥 제 자신만 믿고 살자고 스스로를 채찍질했던 시기였네요.
학생회 일에 코가 꿰이고, 카투사 시험에 낙방하고, 현역으로 입대했다가 팔이 부러지는 바람에 귀향.
결국 대학 4학년을 졸업하고 군에 입대하게 됩니다.
12월 기말고사를 마치고, 군대에 가려면 몇 달 남은 상황.
놀자니 눈치가 보여서 알바를 시작합니다.
홍보대행사입니다. 소개시켜준 사람이 운동권 선배라 그런지 빨간 사람들이 득시글 거립니다.
첫 주가 끝나고 또래들끼리 모여서 술 한 잔 합니다.
각 학교 운동권 졸업예정자들은 다 모였더군요. 그 정도의 차이일뿐.
(저처럼 희미한 사람부터, 진-한 사람들까지)
골방에서 술마시다 제게 노래를 시킵니다. 뺄 수 없는 자립니다.
공연때 솔로로 불렀던 노래 한 곡 부릅니다.사람들 술에 취해 대충 환호해줍니다.
뒷풀이가 끝나고 어떤 츠자분과 함께 지하철을 탑니다.
대학교 4학년 올라간다는 이 붕은 소위 "운동"한다는 사람들과는 거리가 먼데,
어케 선배 소개로 들어왔답니다. 근데 제 소개 할 때 야구 좋아한다는 말이 기억에 남았답니다.
제 가슴은 뜁니다. 하지만, 그녀는 엘지를 그리고 김재현과 유지현을 좋아한답니다. 털썩.
그렇습니다. 우리는 한 지붕 라이벌입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벌써 좋아지기 시작했으니까요-
같은 일에 배치가 됩니다. 핑계삼아 집에도 바래다 줍니다. 추운 겨울날 예술의 전당 구경을 갑니다.
"오빠? 민가말고 다른 노래는 못 불러요?" 평소 노래방도 가지 않는 제가
김장훈 ㅤㅎㅛㅇ아의 "나와 같다면"을 쌩목으로 부릅니다.
검은 머리, 흑단같은 검은 머리가 인상적인 그녀가 쌩긋 웃습니다.
몇 번의 이메일과 편지, 그리고 같이 영화보기가 끝난후.
"내가 곧 군대가지만, 너와 사귀고 싶다고" 담담하지만 진심으로 고백합니다-
1월이 되고 며칠이 지난 후, 쫌 보잡니다. "이제 우리 사귀는 거에요?"라고 합니다.
기쁜 마음에 엘지로 갈아탈까도 고민하게 됩니다.
몇 달 동안 너무 행복했습니다- 세상을 다 가진게 아마 이런 기분일꺼야...라고 느끼기도 합니다.
드디어 영장에 날짜가 박혀 나왔습니다. 제 마음도 그녀의 얼굴도 함께 어두워집니다.
언젠가 술먹고 전화해서 "군대 안가면 안돼?"라고 물어보는데,
작두로 손가락 자를뻔도 했습니다. 입대일이 왔습니다.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친구들, 선배들과 봉고차를 타고 논산으로 갑니다.
쏘주 한 잔에 불고기로, 마지막 사제 외식을 하고, 입대 순간을 기다리는데
전화가 옵니다. 입소대대에 왔답니다. 그녀를 만납니다. 저는 눈물이 나올 것 같은데,
검은 머리의 그녀는 말이 없습니다. 뜬금없이..랄랄랄 라라라 랄랄랄라라- 스머프 노래를
흥얼거립니다. 나중에 알았습니다. 눈물 날까봐 노래 불렀다고...
암튼 술김에 입대합니다. 그 후에 상황은 다 아실껍니다. 열라 구르고 또 구르고.
휴가 때 보고, 편지 받으면 화장실에서 보고 또 보고, 가져간 그녀의 증명사진(코팅)은
닳도록 매만집니다. 상병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대학원생이 되었습니다.
휴가를 나갔는데, 전화가 안됩니다. 무작정 그녀 학교를 찾아갑니다.
만났는데, 그녀 얼굴이 하얘집니다. 학교에 오지 말랍니다. 집에 가있으랍니다. 전화한답니다.
그 날 저녁, 전화로 이별 통보를 받습니다. 힘든 결정이니까 오빠도 받아줬으면 좋겠답니다.
군인 신분에 잡아봤자...어쩔 수 없다고, 그녀 맘 아프게 하지 말자고 다짐하고 그러마 했습니다.
유일하게 휴가 기간 동안 술도 안 마시고, 방 안에 쳐박혀 있더랬습니다.
복귀날, 몰래 그녀의 집 앞에서 학교 가는 그녀 모습을 봅니다.
서울역에 갑니다. 호남선 기차를 타고 복귀해야 합니다.
티비에는 며칠후 김대중 대통령이 역사적인 평양 방문을 한다고 난리입니다-
항상 소원했던 남북화해 따위, 그날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호남선 기차를 타고 부대에 복귀합니다-
언젠가 호남선 기차를 타고 같이 목포에 놀러갔던 일이 떠오릅니다-
천안을 지나면서 홍익회 아저씨한테 호도과자를 사먹었었는데, 그녀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왜 고속도로 휴게소 호도과자는 맛있는데, 기차 호도과자는 맛이 없을까?"
천안을 지나가는데, 별 일도 아닌 일이 생각나면서 눈물이 납니다-
옆 칸에 앉은 젊은 처자가 흉측한 광경이라 생각했는지 이상한 눈초리로 곁눈질 합니다.
여자사람 때문에 처음으로 눈물 흘렸습니다.
부대에 복귀해서도 며칠 동안 밤마다 화장실에서 소리없이 울었습니다.
6.15 공동선언을 이뤄낸 역사적인 그 해의 6월은,
저에게는 마음을 굳게 했던, 회색빛의 6월이었습니다.
스물 다섯 어깨 쳐진 청춘. 2000년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