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평소 함께 다니던 선배들과 친구 무리가 있었다.
대학생인 주제에 매일 술처먹고 다닌다고 여자 동기들은 우릴 굉장히 싫어했고
허구한날 모여서 정치얘기, 사회얘기만 하고 쌈박질이나 한다고... 남자들도 우릴 싫어했다.

그들은 우릴 이렇게 불렀다.

"쓰레기파"

비록 사회에서 말살되어야 할 종족같은 비유를 들으면서도 우리가 생글생글 했던 이유는
우리 나름대로 서로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과 어울려 술 한병 따르고, 글라스에 소주를 가득 따라 건배를 하며 외쳤던 건
이놈의 거지같은 사회를, 우리가 바꾸어버려야지 라는 절대적 목표의식이었던 게다.

함께 어울릴 때는 참 즐거웠다.
술이 있든 없든간에 서로 토론을 시작하면 끝이 없었다.
토론 말미에 논리에서 밀려서 울그락불그락 하다가도
토론이 끝난 후의 상쾌함은 지고 이기고의 문제가 아닐 정도로
큰 즐거움을 안겨다 주었다.

우리 쓰레기들의 공통된 목표는 '글로서 세상을 바꾸는 것' 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토록 욕만 얻어먹는 기자라는 직업을 택한 것은,

우리가 그 때 진물나게 했던 토론을 훈련삼아 논리를 가다듬고,
화끈한, 정의로운, 멋진 기자가 되어 세상의 비리를 끄집어내고,
우리가 사는 세상을 멋지게 바꿔놓자구. 그럴 자신이 있기 때문이었고

그렇게 서로가 다짐을 하고 매일같이 부딪치며 말싸움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때의 선배, 동기 패거리들 중 몇몇은 이미 기자가 되어있다.
조선.. 동아.. 한겨레.. 오마이뉴스.. 한국..


가장 나와 잘 어울렸고, 가장 나의 이상적 롤 모델로 삼았던 한 선배는 동아일보 기자가 되었다.
벌써 몇년 전이었더라....
그 선배가 동아일보 입사를 결정하고 축하주를 사겠다고 우리 패거리를 불러 모았던 날,
나는 감자탕 집에서 크게 실수를 하고 말았다.

그렇게 사람이 많았던 한여름의 새벽에,
모든 친구들이 있던 자리에서..
만취한 채로 숟가락을 휘저으며 그 선배의 입사를 두고
큰 소리를 내지르며 비판했던 것이다.
"다신 당신같은 사람과 상종하지 않는다고"



모두가 나에게 잘못이라 했다.
너도 취직할 때가 되면 그렇게 될 것이라고.
너도 붙어놓고 보면 안 가지 못할 것이라고.

시간이 지난 후
나도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나도 역시 그렇게 될거라고.
나도 역시 한낱 범인인데.
그저 다른 20대들처럼 현실에 순응하지 않겠냐고..




그렇게 많은 이들이 떠나갔다.
많은 친구들이 기꺼이 자신의 신념을 자본의 유혹에 버렸고
그리고선 '현실은 이래' 라며 가벼운 자위로 쿨한척 한다.




.....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전후의 기사를 읽다가 발견했다.
"봉하마을 방문객, 시계찾기 혈안"
이 무슨 소리인가 기사를 들여다 본 후 할 말을 잃는다.

우리는 이렇게 변해가는구나.
내가 그토록 믿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이런 기사를 쓰는구나.

우리는 세상을 바꾸자고 했는데.
여러모로 세상은 그대로일 수 밖에 없겠구나.




지금 대한민국에서 '기자'라는 직업은 가장 욕을 많이 먹는 직업이고,
마땅히 욕을 먹을 만 하다고 생각된다.

그 누구도 내 어릴 적 꿈.
"글로서 세상을 바꾼다"는 이상을 실현시켜주지 못하는 것 같아 슬프다.





알고보니 우리는 진짜로

"쓰레기파"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