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내가 복이 많아서인지 아님 워낙에 부침이

심한 성격 탓인지 이래 저래 챙겨주려는

지인들이 제법있다.

사실 스물아홉에 갑작스럽게 맞게된 해체기에

자못 정신적 불안정함이 심한 상태까지 이르고

있긴 하다.

그래서인지 애 보살피듯 꼼꼼히 챙겨주는 고마운

벗도 있고 말을 가려가며 에두르듯 지켜보아주는

여러 동지들도 있다.

그 중에 언제나 감탄해 마지 않는 성실함을 갖춘

선배가 하나 있는데 내 침잔함이 저윽이 걱정이

되는 모양인지 온갖 자리를 마련해 나를 불러준다.

오다가다 밥 챙겨주기는 물론이고 몇명 꾸려

술자리 만들어 불러주기도 한다.

선배는 제천에 근거를 두고 있는데 몇일전엔

충주호에서 물놀이나 하자며 부득불 내려올 것을

청했다.

여름나기에 한번쯤의 물놀이는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것이란 생각에 선선히 응했다.

물장구 치며 어린 아이처럼 놀아도 좋고 시원한

솔음 아래서 탁족이나 하며 술잔을 기울여도 제법

유쾌하리란 속내 계산을 하며 기차에 몸을 실었다.

바다 태생이라 내지 호수에서 어떤 장쾌함을 느끼

지는 못하지만 충주호의 시원스런 경치는 오랜만에

가슴에 청량함을 안겨주었다.

평소 남들의 고급스러워 보이는 스포츠란 정도의

느낌만 가지고 있던 수상스키를 해보게 되었다.

생짜 초보라 줄을 잡진 못하고 보트 옆의 쇠막대기를

붙잡고 물위를 미끄르며 달렸다.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물위에 엉거주춤 서 있던

순간엔 재미를 느꼈다기 보다는 왠 고역인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한순간 보트의 속력이 빨라지면서

내 발밑의 물보라는 사라져버리고 매끄러운 유리 표면

같은 수면만이 보여졌다.

시끄러운 모터 소리와 뒤처져 따라오는 물갈림 소리에

바로 옆의 보트에서 외치던 소리도 알아 듯기 힘들정도로

요란했었는데 아주 짧았던 그 순간에 나는 너무나도

고요한 세계에 있었다.

그 매끄러움과 고요함 그리고 그 한적함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바닥으로 뛰어들것을 유혹하는, 속도감이 만들어낸,

매끄러움이라고 하면 이상한 말일까?

군대시절 60트럭의 짐칸 끝에 앉아서 바퀴 아래로

뿜어져 나오던 아스팔트에 종종 몸을 던져 버리고

싶은 기묘한 유혹을 느낀 때와 유사한 감정의 경험이었다.

속도감 뒤로 버려지는 바닥은(땅바닥이든 물바닥이든)

정말로 감칠맛나게, 몸을 던질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한번도 몸을 던져보지는 못했다.

역시 이번에도 몸을 던지지는 못했다.

그저 한 참 뒤에 팔다리에 힘이 빠져 맥없이 손을

놓아버렸을 뿐이다.

부드러운 물의 질감이 온 몸을 감싸온다. 옅은 녹색의

물색깔 틈틈히 부연 햇빛이 흐느적 거린다.

물가에서만 이십녀년을 살은 덕에 물을 두려워하진

않으므로 잠시 떠오름을 미뤄두고 몸을 맡겨둔다.

너무나 선명하게 내가 종내 가라앉지 못할것임을

알겠다.

......................

숨을 쉬고 싶다.

......................

두팔을 휘휘저어 몸을 세운다.

사지를 오그려 뜨렸다 쭉 뻗으며 물을 박찬다.

어깨 아래까지 힘있게 물위로 솟아올랐다.

저만치에 보트가 보인다.

그 보다 더 가까이 하늘이 보인다.

가만히 누워 보트가 다가올 때 까지 얕은 숨을 코앞의

하늘에다 내뱉고 있었다.

                                             ..zz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