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스포츠서울닷컴ㅣ이명구 뉴스부장]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진실이 바위 속에 있다면 수 십, 수백, 수 천개 이상의 계란이라도 던져봐야 하는 것 아닐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대부분이 그렇듯 계란이 깨지는 것이 두려워 바위치기를 포기한다. '장자연 리스트'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려 한다.

젊고 꿈많은 한 연예인을 죽음으로 몰고 간 직-간접적인 가해자들은 조용히 그들의 권력 뒤에 숨었다. 일찍이 권력의 위대함이야 익히 알았지만 이토록 강하다는 것을 다시한번 실감하고 나니 절망감이 앞설 뿐이다.

누군가는 장자연 사건을 깨끗이 무자르듯 덮고 지나가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장자연 사건의 경험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남규리 사건을 주목하게 만든다. 완전 다른 사건이면서도 일면 흡사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장자연사건과 남규리 사건이 흡사한 이유?

장자연 사건이나 남규리 사건이나 연예권력 그리고 언론계 권력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장자연은 절대 권력인 김대표에 휘둘려 또다른 권력(정계, 재계, 연예계)에 의해 고통당하고 희생당했다고 할 수 있다.

연예계의 고질적인 계약문제로 불거진 남규리 사건 역시 절대 권력인 소속사와 언론을 잇는 삼각관계 속에 빠져 있다. 배신이 횡행하는 연예판이라고는 하지만 배신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누가 누구를 배신했는가'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소속사나 등을 돌린 연예인이나 양측 입장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런 갈등과 문제를 접한 언론만큼은 공평무사하게 사실에 의거해서 양쪽의 의견을 대등하게 다뤄줘야 한다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남규리 사건의 경우 객관적인 상황은 소속사가 훨씬 유리해 보인다.

실제로 연예계의 '마이더스의 손'으로 불리는 김광수 대표와 톱스타를 향해 달려갈 길이 아직도 많이 남은 남규리의 싸움은 애초부터 적수가 되지 않는 구도였을 지도 모른다. 남규리 사건이 발생하고 난 이후 연예관련 언론매체의 보도양상을 한번쯤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적수가 안되는 남규리 VS 김광수 대표

자유인이 되고자 했다던 남규리는 사건 발생이후 언론대응을 피하며 자신의 미니홈피를 통해 결백을 주장하고 아픈 심경을 토로하고 있다. 반면, 김광수 대표를 중심으로 한 소속사 측은 거의 모든 매체에 자신들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개진하고 있다. 무단이탈-계약위반-법적대응-배후조종설 등 연약한 여자 연예인이 듣기엔 무시무시한 단어들을 총동원하며 초강수를 두고 있다.

이에 비해 남규리는 '하늘도 알고 땅도 알것'이라는 넋두리와 그간 힘들었던 자신의 생활에 대한 고백으로 대신하고 있다. 그리고 본인의 생일날인 26일 미니홈피에 남긴 장문의 글에서는 "싸움이 싫어요. 자꾸만 슬픔이라는 병이 들어가는 것만 같아"라며 나약해진 자신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우연이 아니라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묘하게도 남규리 공방이 보도되는 와중에 쏟아지는 관련뉴스엔 남규리를 대체할 '씨야'의 멤버인 '티아라' 지연의 소식이 덧붙여져 있다. 적어도 언론보도만을 놓고 봤을 때 남규리는 지워져야 할 대상이 된 반면, 지연은 새로 각인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면 편파적인 것일까.

25일엔 스포츠서울닷컴의 보도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계약기간, 수익금 배분, 특별예우 등에 대한 양측의 주장이 처음으로 상세하게 보도됐다. 이후 수익금 문제가 가장 뜨거운 논란을 일으켰다. 3년간 8천만원이라는 남규리의 주장에 맞서 소속사는 4억5,000만원 이상을 벌었다며 자료공개도 불사하겠다고 한 것이다.

남규리 덮고 '티아라 지연' 띄우는 언론

오비이락일까. 이미 예정됐던 이벤트였는지는 몰라도 26일 오후엔 씨야, 다비치, 신인그룹 티아라까지 참여한 '여성시대, 영원한 사랑' 뮤직비디오 촬영현장 공개가 진행됐다. 이 자리에서는 촬영현장 공개에 앞서 씨야 멤버인 이보람과 김연지가 남규리 탈퇴에 관한 인터뷰까지 가졌다.

예상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보다 더 드라마틱하고 파워풀한 홍보이벤트가 있을까 싶다. 남규리와 동고동락했을 씨야의 멤버들은 남규리에게 안타깝고 당황스럽다고 했다. 나아가 자신들에게 상처를 줬으며 배신감을 느낀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한 멤버는 남규리 관련 발언을 하며 눈물도 지었다. 씨야의 다른 멤버들 심경도 복잡할 줄은 안다. 하지만 뉴스를 검색해 보면 '씨야-다비치-티아라 지연, 화끈한 뮤비 촬영 공개!' '씨야&다비치 "빠른 템포, 격렬한 댄스 기대부탁"' '티아라 지연, 매혹적인 눈빛 유혹' 등등으로 채워져 있다. 언론사 카메라 앞에서 배신한 멤버 때문에 눈물 짓고 곧바로 격렬한 댄스를 선보여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 것일까.

남규리가 소총들고 대언론홍보전을 펴고 있다면, 소속사는 기관총에 대포까지 동원한 형국이다. 불편한 뉴스는 찾아보기 힘들도록 만드는 일명 '도배질'에 성공했고, 씨야의 대체멤버인 '티아라 지연' 띄우기에 자연스럽게 연착륙한 것으로 보인다.

둥지 떠났다고 삶의 터전까지 없앤다?

이런 환상적인 언론플레이가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 오랜시간 동안 연예계 권력의 핵심으로 자리잡고 있는 김광수 대표의 탁월한 능력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과거 정치판 언론계에서 'YS장학생'이란 말이 있었던 것처럼 연예판 언론계에도 'ㅇㅇㅇ장학생'이 없으란 법도 없다.

김광수 대표는 스포츠서울닷컴과의 전화통화에서 남규리의 계약위반을 주장하면서도 계약서만 놓고 본다면 법정에서는 질 수도 있는 사안임을 솔직히 내비쳤다. 하지만 도의적이고 인간적인 측면에서 결코 용서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던 셈이다. 남규리가 미니홈피를 통해 남겨놓은 글들 속에는 오해의 여지가 있을 부분들이 너무도 많다.

연예계에서 가장 민감한 스폰서라는 단어가 장자연 사건이후 다시 등장했다는 대목이 특히 그렇다. 누가 봐도 이것은 계란과 바위의 싸움임이 분명하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엔 보는 시각에 따라 정답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누가 더 넓은 마음으로 이해력과 포용력을 가져야 하는가는 분명해 보인다. 자신의 둥지를 떠났다는 이유만으로 삶의 터전까지 없애버리는 일은 너무 가혹하다.

남규리 사건에서 다시한번 장자연을 떠올려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것은 장자연 사건이 비록 권력의 한계에 부딪힌 수사로 유야무야 됐다고 해도 그가 육필로 남겨놓은 교훈까지 잊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힘없고 나약한 신인일 뿐입니다'는 '힘없고 나약한 소속사 연예인일 뿐입니다'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것이 아직까지는 연예계 권력의 부인할 수 없는 불행한 속성이다.

◆ 김광수 대표 "나도 마음의 상처 커...남규리 매장 의도 없다"

균형있는 보도는 언론의 본질이다. 칼럼이 나간 이후 오전 11시와 오후 1시 두차례에 걸쳐 김광수 대표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차분한 목소리로 그는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 남규리 사건이 장자연 사건과 비교가 됐다는 것 자체가 자신은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김광수 대표는 칼럼에 대한 반박보다 자신의 연예계 인생을 풀어놓으며 기자의 이해를 구했다. 그는 84년 연예계의 밑바닥부터 시작해 오늘의 자리에 이르렀다고 한다. '좋은 음악만 갖고 승부를 걸어야 겠다'는 것이 신조였고 지금도 지켜오고 있다고 한다. 다른 소속사 연예인이 자기발로 걸어와 함께 일을 하고 싶다고 해도 정도를 어기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 되돌려 보낸 일이 많을 정도라고 했다.

남규리에 대해 김 대표는 재계약 건은 분명히 자신이 먼저 공론화한 것이라고 말한다. 영화 '고사' 촬영이 끝난 이후 남규리만을 불러 놓고 재계약을 하게 될 수도 있고 돈도 생기게 될 것이라고 알려줬다는 것이다. 하지만 설명을 듣고 난 뒤 남규리의 태도가 돌변했다고 한다.

김 대표는 조성모, SG워너비 등의 사례를 들며 자신은 연예인이 잘되는 쪽으로 모든 일을 추진해왔다고 설명했다. 특히 SG워너비의 경우 엠넷에서 4억5천만원 수준으로 음반을 낼 수 있었지만 8억원을 제시한 쪽과 작업을 하도록 결정했다는 것이다. 김광수 대표는 자신은 결코 욕심을 낸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남규리 건도 재계약을 먼저 이야기 해주지 않고 음반을 그대로 진행했다면 아무도 모르고 지나갈 일이었다는 것이다. 김광수 대표는 조금만 참으면 더 좋은 조건으로 연예활동을 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남규리가 안타깝다고 이야기했다. 수십명의 스타를 키워왔고 지금도 함께 하면서 항상 연예인 편에서 일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일로 마음의 상처가 무척 크다고 한다.

남규리의 경우 씨야의 마지막 멤버로 합류시키면서 김 대표는 전 소속사와의 문제도 선의적으로 처리했다고 밝혔다. 남규리와의 개인적인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받으면서 물심양면 도왔다는 것이다. 26일 씨야 멤버들의 기자회견 역시 원래 예정된 행사였다고 억울한 입장을 표명했다.

어차피 기자들의 질문을 피해갈 수 없는 입장이었다는 것. 결국 어려움 속에서 함께 지낸 동료였던만큼 하고 싶은 말을 편하게 하라고 했는데 결과가 이렇게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힘자랑이 아니라 김 대표는 오랜 연예계 경험이 있는만큼 어떤 색이 밝은 색인지 흐린 색인지 적어도 구분은 할 줄 알고 있단다.

언젠가 인터뷰에서 김대표는 자신이 '연예계의 권력자인가? 실력자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단다. 이에 대한 해답은 실력자가 되고 싶을 뿐이라고 한다. 앞으로도 많은 가수와 연기자들을 육성하겠지만 자신은 열심히 하려는 예비 스타들의 가교역할만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남규리를 속된 표현대로 매장시키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음을 김 대표는 재차 강조했다. 자신이 잘못한 부분만 인정한다면 다시 받아들일 수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