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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도,  20세기도 아니고 어느덧 21세기가 되어버린 오늘날, 맑스주의가 "죽은 개" 취급을 당하기 시작한지도 이미 오래된 지금,  도대체 맑스를 다시 생각해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맑스가 여전히 유효하다면 도대체 그 가능성의 중심은 어디에 있을까요?

이에 대한 하나의 대답을 시도해 본 글이 다음에 소개할 가라타니 고진의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입니다. 가라타니 고진이 이 글을 발표한 시기가 1974년입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도 30년전 이상이라고 할 수있지요. 그러나 그 때에도 이미 맑스주의는 한 물간 사상쯤으로 취급받았다고 합니다. 특히나 당시는 1972년 연합적군파사건이라고하는 일본내의 극좌파들에 의한 충격적 사건이 있은지 얼마 뒤의 일이라 소위 맑스주의라는 사상혹은 이념은 당시부터 이미 퇴물 취급을 받았다고 하네요.

가라타니 고진은 이 책에 붙인 1998년 한국어판서문에서 맑스가 <자본(론)>이라는 저작을 통해서 드러내려했던 것은 단순히 자본주의의 사멸을 이야기 했다기보다는 자본주의 경제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것에 대한 고찰, 특히 그것이 '교환'이라는 근원적 패러독스에 의해 잉태된 것이며 때문에 단순히 경제라고하는 범주에 국한된 것이 아닌 인간의 본질적 조건과 관련된 사상으로서 맑스주의를 평가한다고 이야기합니다. .

인간의 본질적 조건에 대한 성찰. 따라서 <자본론>에서 펼쳐진 자본주의에 대한 맑스의 생각들은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단순히 경제라는 하부구조에 국한된 논의뿐만 아니라 상부구조에 대한 논의 또한 요구됩니다. 아니 오히려 "자본주의 자체는 상부구조도 하부구조도 아닌" 어떤 것이 됩니다.

맑스는 <자본론>에서 '상품commodity'의 '신학적, 형이상학적 수수께끼'를 찾아냈다고 표현합니다. 이런 비유로부터 가라타니는 맑스의 공산주의가 종교적 혹은 유토피아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만큼 "자본주의 그 자체가 종교적이며, 공산주의는 단지 자본주의의 논리 자체에서 현실적으로 탄생한 것"일지 모른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책을 쓴 1970년대초부터 그런 생각해 왔다고 하는군요.

따라서 맑스는 <자본론>을 상품에 대한 분석으로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바로 상품이 가진 이 신학적, 형이상학적 비밀을 풀어내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세포”를 분석하고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단초가 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맑스가 보는(혹은 가라타니에 의해 해석된 맑스가 보는) 이 상품은 아담스미스나 리카도식의 노동가치설과는 무관합니다. 노동가치설의 입장에서 상품의 가치는 상품을 만드는데 사용된 투하노동으로 환원됩니다. 또한 그들은 단순한 ‘노동생산물’로부터 상품을 화폐로 전화시키는 ‘가치형태’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생산물이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실현하는가, 다시말해 ‘교환’되는가의 여부는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게 됩니다. 이러한 입장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화폐를 무시해도 좋은 것으로 생각했었던 것이죠. 그러나 “맑스의 독창성은 가치 또는 잉여가치의 문제를 생산과정뿐 아니라 새삼스럽게 유통과정에서도 보려고 한 데 있”다는 것이 가라타니의 생각입니다.

이처럼 맑스가 상품을 다룬 자본론의 1장에서 분석한 가치의 기원을 ‘노동’이 아닌 ‘교환’에 있다고 보는 가라타니의 해석은 이후의 저작인 <트랜스크리틱>을 통해서 구체화됩니다. 더불어 그는 이런 통찰을 실천의 영역으로 확장시키기 위하여 NAM(New Association Movement)이라는 조직을 직접 결성하여 활동하기도 합니다. NAM은 잉여가치를 생산하지 않는 자유로운 개인들간의 계약을 통한 교환원리에 기초합니다. 구체적으로 LETS(Local Exchange Trading System)이라고 불리우는 ‘자본화’되지 않는 일종의 지역통화를 유통시킴으로써 그것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지요. 이는 기존의 분리된 노동자운동과 소비자운동을 결합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가라타니가 90년대후반부터 시도했던 이런 실천운동들은 실천적으로는 소수의 지식인들 사이에서만 소통되고 소멸하고 말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이론, 혹은 사상 자체가 오류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지요.

이처럼 가라타니가 자본론에서의 가치의 기원을 ‘교환’에서 찾은 후기의 관점은 70년대 초 저작인 이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책으로 다시 돌아와 봅시다. 도대체 맑스의 그 가능성의 중심이란 어디에 있을까요?

그는 맑스를 재전유하기 위한 이 가능성의 중심을 말하기 위해 맑스가 박사학위 논문으로 발표했던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르스 자연철학의 차이>에서 취했던 입장에 주목합니다. 맑스가 그의 박사학위논문에서 발견한 그 “차이”는 데모크리토스철학과 에피쿠르스철학의 전체 ‘체계’에 있어서의 차이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차이는 체계라고 말할 수 있는 큰 관점에서의 차이라기보다는 유사성 혹은 동일성이 두드러지는 세밀한 부분에서의 차이들입니다. 맑스와 헤겔의 차이에 비유하자면 맑스사상을 “헤겔사상의 유물론적 전도이다”라고 보는 것과 같이 양자의 큰 체계상의 차이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양자사이의 유사성이나 친밀성이 두드러지는 부분에서 그 거꾸로 ‘차이’를 보고자 하는 것이지요. 가라타니는 바로 이러한 맑스와 헤겔 사이의 유사성이 두드러지는 부분의 하나로 상품과 관련된 가치형태에서 보았던 것이고 때문에 이 자본론에서의 가치형태와 관련된 맑스의 논의에서 “그 가능성의 중심”이 있다고 본 것입니다.

“ ‘가치형태론’의 풍부함은 거기에 ‘아직 사유되지 않은 것’을 도래시키는 데 있다. 모든 저작자가 하나의 언어, 논리 속에서 글을 쓰는 이상, 거기에는 고유한 체계가 있다. 그러나 어떤 작품의 풍부함은 저작자가 의식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체계 자체에서, 뭔가 그가 ‘지배하고 있지 않은’ 체계를 가진 데 있다. 그것이야말로 마르크스가 라살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했던 의미이다. 나에게 마르크스를 ‘읽는’ 것은 가치형태론에서 ‘아직 사유되지 않은 것’을 읽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나는 마르크스를 그것 이외의 어떤 장소에서도 읽지 않을 것이다. 마르크스를 그 가능성의 중심에서 읽는 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다.”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 이학사. 30쪽)

위 인용문에서 볼수있는 것처럼 가라타니가 맑스의 가능성을 찾는 방식은 이미 체계화된 투명한 의미구조에서가 아닙니다. 반대로 의식적으로 체계화되어 있지 않은 사유되지 않은 지점을 발견해 내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그가 맑스의 텍스트를 읽는 방식은 기존의 공식화된 의미체계로서 혹은 맑스주의로서의 맑스가 아니라 맑스의 텍스트를 세밀하게 독해함으로써 그 체계가 가진 빈틈 혹은 외부를 독해하는 방식이라는 것이지요. 전체로서의 체계가 아닌 사소하고 미세한 부분들 속에 자리잡은 ‘같음’이 ‘다름’으로 ‘변환’transform되는 역설을 독해해 내는 방식. 이것이 가라타니가 맑스의 텍스트를 독해해 내는 방식입니다

가라타니는 이러한 독해방식을 ‘상품’에서의 ‘상대적 가치형태’와 ‘등가형태’와의 결합, 즉 서로 다른 사용가치를 가진 상품들을 서로 교환가능하게 해주는 등가형태로 변형시키는 맑스의 발상에 주목하는 것으로 구체화합니다. ‘다른 것’을 ‘다른 것이 아닌 것’으로 변형시키는 잠재성의 사유를 발견하는 이곳에서 발견하는 것이지요.

이처럼 가라타니가 등가형태 혹은 화폐에 주목한 이론적 결과물이 앞에서 이야기한 것과 같은 <트랜스크리틱>에서의 교환을 중심으로 한 맑스의 가치론 해석이고 그 실천적 방안이 NAM이요 LETS 였던 것이지요.

이처럼 가치의 기원을 교환에서 찾는 맑스독해방식은 기존의 노동을 중심으로 가치의 생산을 이야기한 독해방식과는 많이 다릅니다. 그래서 논란의 여지는 여전히 남아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교환을 중심으로 한 가치론 해석에 대한 자세한 서술은 이미 이 책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을 넘어서는 내용이므로 그것은 나중에 <트랜스크리틱>에 대해서 다룰 기회가 있을때 자세히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는 가라타니가 맑스의 가능성을 읽어내는 그 방식에 대해 간략히 이야기해 본 것 만으로 만족해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