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타인의 삶>에서의 오역과 정확한 번역
- 작성일
- 08-12-21 23:31
토요일 밤에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영화, 그러면서 약간의 감동을 원하는 영화를 추천해달라고 할때, 여러분은 어떤 영화를 추천합니까?
재미와 감동이라는 것도 상대적이라서 나는 충분히 그것을 느끼는데 상대방은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영화도 많습니다.
하지만 지금껏 추천한 작품 중에 단 한번도 거부 반응이 없었던 영화가 <쇼생크의 탈출>과 <타인의 삶>이었습니다. 재미와 감동, 그리고 대중성까지 갖춘 작품이지요. 개인적으로 이 영화들을 걸작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앞서 말한대로 그냥 토요일 밤에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지요.
<쇼생크의 탈출>에 비해 <타인의 삶>은 그렇게 많이 알려진 작품은 아닙니다. 2007년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하고 국내에 곧 개봉되었으나 4만여명이 관람했을 뿐이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우리 나라 개봉되는 외국 영화, 특히 유럽권 영화는 오역이 비일비재한데 이 영화에서 나타나는 오역들을 한번 지적해보겠습니다. 본문 내용은 최경은 선생의 <독일 영화와 독일 문화>라는 책을 참조했습니다.
이 영화에서 잡지와 신문명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잘못 번역되어 있습니다. 독일의 유명잡지인 <슈피겔>(Spiegel)을 모두 <미러>(mirror)로 번역했습니다. 독일어 Spiegel이 '거울'이라는 뜻이 맞긴 한데 그걸 모두 mirror라고 바꾼 건 희한하다고 할 수 밖에요. 고유 명사를 바꾼다는게 말이 되는 소린가요? 같은 예로 독일의 유명신문인 <프랑크푸르트알게마이너차이퉁>(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은 '프랑크 푸르트 종합신문'이라는 뜻인데 이게 모두 <프랑크푸르트 퍼브릭 데일리>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영화 클라이맥스에서 예술가 부부를 감시하다가 그들의 삶에 동화되는 슈타지(국가안전부)의 중대장인 비슬러가 감시 대상인 여자 배우를 심문하다가 이렇게 말을 합니다. "Danken Sie an den Publkum!" 이 말은 영화 전반부에 이미 나온 말로 비슬러가 여배우를 술집에서 우연히 만난 것으로 가장하여 그녀가 진정한 연극배우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의미 심장한 표현입니다. "관객을 생각하십시오!"라는 이 말을 우리 나라에서는 "여론을 생각하십시오!"라는 말로 번역되었습니다. 여론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내용인데 관객들도 이 부분에서 '저게 뭔말이야?'라고 갸우뚱했을 겁니다. 영화에서 암시적인 이 말의 맛을 못살린 경우입니다.
이 영화의 라스트 씬은 인상적인데 번역상 오역은 아니지만 뉘앙스를 살리지 못한 부분이 있습니다. 서점 주인이 극작가 드라이만의 <선한 사람들의 소나타>를 구입한 비슬러에게 묻습니다. "Geschenkverpackung?"(선물용으로 포장해 드릴까요?) 이때 비슬러가 대답을 합니다. "Nein, es ist fur mich " 우리 나라 자막은 이 말을 "아니요, 제가 볼 겁니다"라고 되어있습니다. 이것은 오역은 아닙니다. 하지만 번역으론 왠지 부족한게 있습니다. fur mich는 '나를 위한'이라는 뜻입니다. 즉 드라이만이 헌정한 이 책이 비슬러 자신을 위한 책이다는 것이지요. 그것을 독일어로는 느낄 수 있지만, '제가 볼 겁니다'라고 번역해버리면 그 뉘앙스를 느끼기 힘듭니다.
아무튼 이런 부분을 감안하시고 다시 한번 이 영화를 보시길 바랍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