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대학교 1, 2학년 때,
여자동기들이 저를 부를 때,

Mr. 'Poor' Kang이라고 부르던 시절이 있었지요.

그럴만도 한 게,
겨울에는 다떨어진 검은색 점퍼만,
주구장창 입고 다녔으니까요.


때는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
곤궁한 삶을 영위하면서도,
밥은 굶어도 꼬박꼬박 담배는 사피던 시절,

하루는 전날 얻어먹은 저녁과 술이 탈이 났는지,
일어났는데 배가 살살 아파 오더라고요.

머지않아,
대란이 찾아올 것을 예상하고,

일찌감치 화장실을 갔더니,
글쎄 휴지가 없는 게 아니겠습니까?

집에 있는 동전이라도 긁어모아,
휴지를 사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아뿔싸,
어제 담배 산다고 동전 다 써버렸더군요.

은행잔고가 다 떨어진 지는,
이미 일주일 전,


제 아무리 빈한 삶을 산다할지라도,
온전히 남은 것은 자존심,

손으로 닦느니 목숨을 끊겠다!


그리하여,
아픈 배를 이끌고,
주변에 사는 여자동기 집에 가서,
화장지 좀 달라고 했더니,

글쎄, 남자친구 와 있다고 문을 안 열어주는 겁니다!

오라질 년!


그래도 불쌍한 동기가 안타까웠는지,

<야, 창문 밑으로 나와 봐!>
(여자동기 당시 3층에 살고 있었음)


세레나데를 하는 것도 아니고,
처자 집 아래에서 창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는데,

문이 빼꼼- 열리더니,
이황 선생님이 분분히 다이빙을 하시더군요.

낼름 받아서 휴지를 샀지요.


거사를 마치고 상콤한 기분으로 방에 앉으니,
문자가 하나 왔는데,


<500원만 주려다가,
라면 사먹을 돈 없을까봐,
천 원 준다. 물론 안 갚아도 돼.>

라는 친구의 문자가 와 있더군요.


아, 아직 세상은 따뜻하구나.
라는 소중한 교훈을 얻은 하루였지요.
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