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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남주 
길지 않은 남한 변혁운동 역사 속에서 혁명가란 이름이 부끄럽지 않을 삶을 살다간 몇 안 되는 사람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하여,때론 펜으로 때론 칼로, 권력과 압제에 맞서 싸우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사람

남민전(남조선 민족해방전선) 사건으로 15년형을 언도받고 수감중인던 그에게, 남민전 동지였던 박광숙이 15년을 기다리겠다고
사랑을 고백합니다. 평소 '연애시는 시도 아니다' 라는 주장을 하던 김남주도 박광숙의 마음을 받아들여 몇 편의 연애시(?) 비슷한 것을
남기게 되죠. 결국 김남주는 1988년 거의 10년 만에 가석방으로 풀려나게 되고 89년 박광숙과 결혼합니다.
하지만 감옥에서 얻은 지병으로 김남주는 그토록 목놓아 부르짖던 자주 민주 통일 세상을 이루지 못하고 94년 초 눈을 감습니다.

회사 월차내고 컴퓨터 하드 정리하다보니 구석에 쳐박힌 채로 김남주 시인 육성낭독 파일이 있어서
한번 올려 봅니다. 어쩌면 처절하지만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었던게 김남주 시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갈수록 답답한 소식만 들려오는 요즘 더욱더 사랑하면서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남주 시인이 온몸으로 적어 내려갔던 싯귀처럼 사랑만이 겨울을 이기고 봄을 기다릴 줄 아는 법이니깐요

  잡아보라고
  손목 한번 주지 않던 사람이
  그 손으로 편지를 써 보냈다오
  옥바라지를 해주고 싶어요 허락해주세요

  이리 꼬시고 저리 꼬시고
  별의별 수작을 다해도
  입술 한번 주지 않던 사람이
  그 입으로 속삭였다오 면회장에 와서
  기다리겠어요 건강을 소홀히 하지 마세요

  15년 징역살이를 다하고 나면
  내 나이 마흔아홉 살
  이런 사람 기다려 무엇에 쓰겠다는 것일까
  5년 살고 벌써
  반백이 다된 머리를 철창에 기대고
  사내는 후회하고 있다오
  어쩌자고 여자 부탁 선뜻 받아들였던고

사랑의 얼굴

푸른 옷의 사내는
  철창에 기대 담 쪽을 내다보며
  이제나 올까 저제나 올까
  면회 오겠다던 님을 기다리고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면사포도 없이
  양친 부모 승낙도 없이
  혼자서 결혼한 여자는
  면회가 되면
  혹시라도 특별면회라도 되면
  간수 몰래 남편 될 사람
  손등이라도 한번 어루만질 수 있을까
  담 곁에서 애를 태우고

  그러나 어쩌랴 이것도
  분단과 식민지의 밤이 빚어낸
  사랑의 한 얼굴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