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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랑다운 사랑을 못해본 것 같습니다

다만 저를 만났던 두 사람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그 중에서 적어도 한 사람은 저를 정말로 사랑했었죠.

그 다른 사람은 오랫 동안 제가 마음 속에 남았던 것 같기는 한데

좋은 인상으로 남았는지 나쁜 인상으로 남았는지는 확신할 수가 없네요.

사랑다운 사랑이라고 하지 못한 건 아마도 이상적인 모습이 아니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유아기 시절부터 이어져오던 마음 속의 단편을 추적해보면

- 이거 궁금한데 누구에게나 어릴적부터 전생에서부터 유전되어 온 듯한 이미지들이 있지 않나요? -

가녀린 여자가 도망치고 험상궂은 남자가 쫓아가는데 아무리 레이스가 계속되어도 서로 만나지 못합니다.

인생이 적적할 때 근본적인 삶의 계기를 생각해보면 이 문제가 생각납니다.

어릴 적에는 수 년에 걸쳐서 잠 잘때마다 잊을만하면 이 이미지가 저를 덮쳐서

처음에는 공포처럼 그 이후에 익숙해지면서는 아.. 이거 였지.. 그랬죠..


이러한 유아기로부터 전래되어 온 마음의 단편이 청소년기를 넘어서면서 사라졌나 싶었는데

다시금 삶을 반추해보면 그 이미지를 보다 복잡한 모습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인터넷 채팅으로 만난 첫 사랑.. 그때는 피씨통신 시절이라 물이 좋을 때였는데..

이상하게도 저는 주변에서 좋다는 사람에게는 눈이 안가고

무언가 피안의 세계에 있는 사람을 찾아서 헤매고 있더라구요.

곁에 있는 사람들은 의식적인지 아닌지 계속 피했고.

두번째 만난 사람도 역시 인터넷을 통해 만났고 연상녀였죠.


이렇게 주변세계에 익숙해지지 못하고 자꾸만 피안으로 도망치는 제 모습에서

어느날 유아기의 이미지가 제 생활 전부를 변화시켜 놓았다는 걸 알았습니다.

생각이 운명을 창조한 것이고, 그 생각은 제 경험 이전으로부터 유전해온 것이죠.


그렇게 따지고보면 이상형이란

현재의 조건, 외모 등도 있겠지만 천부적인 면이 많이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상형이 이미 있더라도 그것이 정말로 이상적인 사랑의 상대인지 아니면

비극적인 운명의 재생산에 불과한지도 미스테리죠.


이런 문제에 부딪혔음을 상기해 볼 때

이상형을 생각한다는 게 문득 허무해집니다.

머리 속에서 이상형이 떠오르지 않는 이유일 겝니다.



다만 요즘 들어서는 사람의 행동과 풍기는 모습을 보고 판단하자는 경향이 강해지더군요.

이른바 '교양'이라는 측면..

그리고 언어를 사용하는 모습도 상당히 중요한 것 같았습니다.

편한 사람에게도 적절하게 거리를 둘 수 있어야 하거든요.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도 어떤 사람인지 대략 윤곽이 나오는 듯 합니다.

자기만 아는 사람이 아니라 공존의 태세를 갖추는 사람인지 아닌지 살피게 되는 거죠.



겨우 요즘에 들어서야 현실 너머의 관념 세계에 이상형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삶의 주변에서 이상형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눈뜨고서야 드는 생각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