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자 봐봐. 넌 4대독자지, 왼손잡이지, 빨갱이지, B형에다가 반곱슬이야. 아 그리고 돈도 없어. 잘 될 것 같애?”

“그, 그...그런가?;;;;”

대화는 이런 식 입니다.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면 저를 규정짓는 저 말들이 우박 쏟아지듯 정수리에 꽂힙니다. 한마디 부정도 못합니다. 전 그렇게 정의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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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 땐 늘 이랬습니다. 6월말부터 지루하게 이어지던 장마가 끝나나 싶을 때입니다. 꿉꿉해진 이불을 바깥에 내다 말릴 때면, 팽팽해진 햇빛이 날을 세워 따가울 정도로 내리 꽂히는 때입니다. 콘크리트 바닥과 나뭇잎에 한번 걸러져 들어오는 햇살마저 눈이 부실 때입니다. 제 생일은 딱 이 때입니다.

“아, 울 어머니 나 낳느라 고생 엄청 하셨겠네.”

생일 때면 평소보다 배로 생기는 효심은 날씨 탓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어머니에게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너도 이제 공부 좀 해야 되지 않겠니?’라는 말을 하셨을 때, 저는 머리가 다 굵은 청년이었습니다. 그냥 너무나 죄송해서 어디로라도 사라지고 싶었습니다. 그 때에도 이런 비슷한 기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살아가면서 왜 이렇게 빚을 많이 지고 사는 걸까요. 늘 뒤돌아보고, 절뚝거리면서 앞으로 나갑니다. 언제부턴가 생일이 되면 빚잔치하듯 글을 하나 써봅니다. 아무것도 없는 제가 나눠드릴 것은 없고, 제가 빚진 모든 분들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을 한 번 써 보는 게 답니다.

서른의 고개를 넘고 하나가 되었습니다.(만으로;;) 철드는 일은 요원하다 못해, 이미 포기하다시피 했고, 남들처럼 그럴싸하게 사는 법을 익히는 건 방학 숙제를 제때 하는 것보다 어려웠습니다. 이젠, 헛구호에 그칠 근엄하고 좋은 말을 뱉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오늘, 내일, 모레,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궁리하는 게 훨씬 유익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영혼이 없는 말을 하는 일에는 이골이 났습니다. 그런 게 바로 시간낭비겠지요. 매년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었다면 서른 개의 인생을 살 수도 있었겠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참 오래 살았습니다. 또 큰일만 없다면 참 오래살 수도 있겠습니다. 서른에 미처 못한 이립은 ‘틈나면’ 해보겠습니다. 불혹이니, 지천명이니 하는 것도 인생에서 약간 비껴두겠습니다. 다만 한 번 온전하게 안아보고 싶은 것은 제 마음입니다. 이러니 저러니하고 방치해두었고, 많이도 외면했습니다. 충실하지 못했습니다. 마음이 그러하면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말하자면 ‘마음대로’ 살고 싶습니다. ‘가난한 B형 빨갱이 왼손잡이 4대독자가’ 삐딱하게 생겨먹었으면 생겨먹은대로 살고 싶습니다. 서른이 지나니 정체불명의 여유가 하나 붙었는데 바로 그것 때문인 것 같습니다. 친구들에게 충실하고, 부모님에게 충실하고,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충실하게 살아야겠습니다. ‘넌 가짜 ㅇㅎ이야!’라는 말을 안듣게 ‘진퉁’같이 살아야겠습니다.

......

오래전 대학시절 제 생일은 늘 농활의 막바지를 장식했습니다. 아침이면 십여 명의 친구들이 밥공기에 눌러 모양을 낸 밥케잌을 고추장 찍은 마른 멸치와 풋고추로 데코레이션을 해 놓고, 좀 짜다 싶은 미역국을 마련해 주곤 했습니다. 화려한 선물 따윈 없었지만, 생일 축하한단 말이 여름날 분수처럼 쏟아졌습니다. 갑자기 잊었던 말들이 귓가에 쟁쟁거리기 시작합니다. 제게 주었던 웃음과 미소들이 고스란히 가슴속에 남아있었습니다.

곶감 빼먹듯 한 살 한 살 참 많이 살았습니다.

사는 건 짧든 길든 상관없이 행복할 수 있으니까,

그건 그냥 오늘 행복하게 보내면 되는 거니까.

한번 그래보려고 조용하게 말씀드려봤습니다.

오늘은 저의 서른한 번째 생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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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가 좋아서 그런가요;;;; 베팍에 오늘 태어난 좋은 분들 참 많네요... 끙

저도 그 좋은 사람들 중에 하나가 된 것 같긴하지만

성격이나 뭔가가 좀 이상한 관계로(가난한 B형 빨갱이 왼손잡이 4대독자) 엄친아들이 득시글거리는 베팍에서는 좀 부대끼는 느낌입니다.;;;;;

매년 생일 때면 그냥 긴 뻘 글 한번씩 쓰곤 합니다. 하지만 올해는 삶이 그러하듯 글도 참 종잡을 수 없습니다. 하루하루 인생이 퇴적되는 속도보다 풍화되는 속도가 더 빨라서 돌이켜보니 남은 것도 없는 삶이었습니다. 너무 미안한 마음에 주변사람들에게 저를 그동안 ‘버리지 않고’ 이만큼 키워줘서 감사하단 말도 제대로 못하겠습니다. 그래도 베팍은-내일은 어떠하든 간에-지금껏 신세를 많이 진 곳이기에, 낯 뜨거움을 무릅쓰고 -_-;;; 한마디 남겨보고 싶었습니다;;;;;

네...(아직 꼬꼬마긴 하지만, 엄청 힘들겠지만, 약간은 빈말이지만...) 철도 좀 들겠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