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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크린쿼터제가 유명무실화되면 할리우드의 문화제국주의에 한국이 점령당한다던 예언은 쿼터 일수가 반토막난 후에도 그냥 그렇게 어딘가에 처박혀 있을 뿐, 현실에서 재앙의 조짐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 효과는 장기적으로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는 주장은 반박이 불가능해서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왜 지금은 효과가 나타나지 않느냐고 비판하면 아직 때가 오지 않았다고 답하고, 한국영화가 어떤 다룬 이유로 침체기에 빠지기라도 하면 스크린쿼터 축소의 부작용이 드러났다고 우기면 되기때문이다. 한국영화는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오르막과 내리막을 주기적으로 타겠지만 붕괴할 것이라고 믿을만한 징후는 없다. 스크린쿼터재앙론을 아직도 고집한다면 스크린쿼터 축소가 한국영화 붕괴로 이어지는 과정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집이 무너질려면 하다 못해 벽이 금이 간다거나 문짝이 잘 닫히지 않는다거나 조짐이라도 보일 것 아닌가?

신문법, 방송법 등 미디어법 개정도 스크린쿼터와 마찬가지로 필요이상의 공포와 비관이 사회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다. 물론 미디어법이 스크린쿼터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회적 임팩트가 큰 제도개편이기에 잘못되면 우리가 겪을 손해도 크다는 점에서 가벼운 이슈가 절대 아니다. 공영방송 엠비씨를 재벌이나 조중동에 넘긴다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설 아니될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지금 미디어산업은 거대한 재편기를 지나고 있는 중이다. 내가 미디어와 관련해 관심을 갖고 보는 것들은 죄다 디지탈시대에 전통적 매스미디어가 어떻게 변화된 환경에 맞게 적응하고 변신할 것인가에 맞춰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디어통신 융합이란 개념이 소개된 지가 십여 년이 훨씬 넘었다. 변화된 기술적 매체환경에 맞춰 법제도 정비도 따라줘야 한다.

지금의 미디어법 개정은 늦은감마저 있다. 오히려 법제도, 규제환경을 손질하기에 딱 좋았던 시점은 지난 노무현정권, 열린 우리당이 국회를 주도했을 때였다. 노정권하에서 5공 때 틀이 잡힌 현재의 지상파 체제를 정비했어야 했고, 미래가 어두운 신문기업들이 종합미디어기업으로 커나갈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공했어야 했다. 방송개혁 드라이브를 걸어서, 공영방송의 공영성을 강화하고 엠비씨의 위상도 재설정해야 했다.

탄핵에서 살아돌아온 노무현과 그 덕에 지갑을 주운 열린우리당은 방송에, 그 뒤에 있는 언론노조 세력의 눈치를 보느라, 내가 볼 땐, 방송개혁과 미디어재편과 관련해 별다르게 기억날만한 제도개혁을 하질 못했다. 정권말기에는 안티조선운동으로 이름을 날린 최민희 당시 방통위 부위원장이 총대를 매고 지상파 중간광고 허용하자고 분위기를 잡기까지 했다 (이런 식으로 하면 공영방송의 존립근거는 근본적으로 위험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이 방송을 수술대에 올리지 않았기에 이명박 정권과 국회다수당으로 복귀한 한나라당은 아주 입맛대로 제도를 정비할 수 있게 된 꼴이다. 그렇지 않은가? 엠비씨의 제도적 위상이라든가, 민간 신문기업의 방송사업 진출 등 산적한 문제를 크게 이슈화해서 그 때 제도를 정비했다면 지금 한나라당에게 이렇게까지 넓은 활동공간을 허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언론노조와 시민운동세력에 끌려다닌 댓가를 지금 민주당과 진보개혁세력이 함께 치루고 있는 셈이다. 가위를 쥐었을 때 헤어스타일을 바꿨더라면 지금처럼 한나라당이 휘두르는 바리깡에 머리채를 맡길 일은 피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회는 또 올 것이다. 미디어산업의 재편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방송통신산업은 규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특수산업이다. 최대한 빨리 국회 다수당의 지위를 회복하고 정권을 찾아와서 방통위 자리를 차지하면 된다. 그리하여 되돌릴 건 되돌리고 손질할 건 손질하고 없앨 건 없애면 된다. 미국에서도 오바마정권이 임명한 젊은 연방커뮤니케이션위원회 위원장이 구 공화당 인사의 자리를 넘겨 받아 개혁의 고삐를 당기고 있다.

이 와중에 민주당보고 총사퇴를 하지 않으면 니네들을 저주하네 마네 하는 무책임한 발언을 일삼는 사람들이 보이는데, 이런 사람들일수록 자기 기득권을 내려 놓는 걸 못봤다. 민주당 보고 의원직을 사퇴하라고 압력을 넣는 언론노조는 미디어악법에 맞서 사표라도 내 놓겠다는 소리 한 적이 있는가? 사표를 내면 방송의 빈자리는 누가 채울까? 민주당이 의회에서 철수하면 그 다음 일은 어떻게 될 지 설명을 해 보라. 그리고 내가 정말 궁금한 것은 언론노조는 민노총의 핵심하부조직으로서 민노당만을 오로지 몸바쳐, 돈바쳐 지지하면서 왜 민주당 의원들 얼굴만 보고 사는지, 혹시 아시는 분? 민주당 의원들이 의원직 반납하면 후원금이라도 내 줄려는지?  그런 요구를 하려면 일단 민노총부터 탈퇴하고 민주당 지지선언부터 하든가. 그러기 싫으면 민노당 의원들보고 밥값하라고 다그치든가.

민주당은 민주당을 지지하는 수많은 유권자들의 이해와 요구를 제도권에서 대변해야 하는 정당이지 언론노조가 고용한 대리운전 기사가 아니다. 세상에는 염치없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고 이들이 세상을 더욱 꼬이게 만든다. 민주당은 언론노조에 끌려다니지 말고 의연하게 이 어려운 정국을 헤쳐 나가길 바란다. 일단 절차상의 문제를 공론화하면서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통과시킨 미디어법의 문제점을 분명하게 정리해서 민주당이 집권하면 어떻게 바꾸겠노라고 천명해 주길 바란다. 언론노조건 시민사회건 잘못된 미디어법을 바꾸고 싶다면 우리는 특별하니까 기타잡당 지지한다는 배부른 소릴 할 게아니라 한나라당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야당인 민주당을 밀어 줘야 할 것이다.

근데 내가 볼땐 아직 배가 고프지 않은 것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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