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공개증오대회 - 스티브 알렌
- 작성일
- 09-08-04 14:46
토털호러 라는 SF 호러 단편선에 수록된 글입니다.
조큼 길어요. 심심하신 분들만 읽어보셔효. ^ ^
공개증오대회 (公開憎惡大會)
지은이 : 스티브 알렌(Steve Allen)
1978년 9월 9일, 하늘에는 구름이 약간 끼어있었다. 스타디움의 진입로로 몰려들고 있던 군중들 중에는, 간간이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옆사람에게 흘깃 곁눈질을 하며 '비가 안 오면 좋겠는데요'라고 말하곤 하는 이들이 있었다.
텔레비전의 기상예보관은, 구름은 약간 끼겠지만 비는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었다. 그다지 쌀쌀한 날씨는 아니었다. 스타디움 인접구역에서는 전차, 버스, 지하철들이 사람이란 사람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쏟아내고 있었다. 그들은 개미처럼 일렬로 줄을 서서 길을 건너고 회전문을 통과하고 계단을 오르고 진입로를 지나 입구를 통과하고 복도를 따라 내려갔다.
큰 소리로 웃고 이리저리 밀고 밀리면서, 사람들은 손바닥이 축축하게 젖을 정도로 흥분한 채 마구 뒤섞여 거대한 콘크리트 스타디움 안으로 들어갔다. 어떤 사람들은 화장실에 들렀고, 또 어떤 이들은 팝콘을 샀으며, 제복을 차려입은 안내원에게서 무료 안내책자를 받는 사람들도 있었다.
특별히 이날 만은 모든 것이 무료였다. 이 행사는 입장권도 팔지 않았다. 신문과 텔레비전에서 한 차례 공고를 했을 뿐인데, 무려 6만 5천여명이 호응한 것이다.
물론, 신문들은 수 주일 전부터 행사가 열릴 것임을 넌지시 시사하긴 했었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내내, 심지어 배심원이 선택될 무렵부터 신문의 사설기고가들은, 결과는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는 식의 논조로 글을 써 댔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발표가 난 것은 고작해야 어제였다. 텔레비전 방송망들이 신문보다 약간 빨랐다. 6시 정각에 정부는 모든 방송망을 통해 5분간 짤막한 연설을 하고 이 사실을 발표했다.
"우리 모두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케터리지 교수 재판의 추이를 지켜보아 왔습니다."
수상은 말을 계속했다. 회색 정장을 입은 그는 침착하고 핸섬하게 보였다.
"오늘 오후 배심원들은 유죄평결을 내렸습니다. 평결은 한 시간 내로 대법원에서 확정되었습니다. 시간을 절약한다는 취지에서, 백악관은 보통때와 마찬가지로 신속하게 공고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내일, 공개 증오(憎惡) 대회가 열립니다. 여러분의 협조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뉴욕 지역에 살고 계시는 분들께서는 빠짐없이…."
그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이런 저런 세부사항들을 '요청'했다. 그 뒤 아침이 되자 조간신문들은 일제히 '맨 처음 줄을 선 브롱크스 부부'니 '학생들이 증오대회를 보기위해 밤을 새서 기다렸다'느니 '일찍 일어난 새가…'어쩌구 하는 설명을 붙인 사진들을 게재했다.
오후 한 시 반이 되어 사람들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특별경찰이 출입구를 차단하고 더 이상 관객입장이 불가능하다는 전갈을 밖의 군중들에게 전했다 행상인들이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면서 차가운 맥주와 핫도그를 팔았다.
'양키즈'가 지금 클리블랜드에서 시합을 하고 있지 않았다면 1루였을 자리 바로 뒤에 앉아서, 프레드릭 트로브는 구장 가운데에 놓여있는 단상을 호기심 어린 눈길로 바라보았다. 단상은 복식용 링보다 한 두 배쯤 커 보였다. 단상 중간에는 약간 더 높은 부분이 있었고, 그 위에 흔한 목제 식탁의자가 하나 놓여있었다.
의자 옆쪽으로 고위인사들이 앉을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 '무대'라고 할만한 자리 아래에는 사회자석과 마이크가 설치되어 있었다. 단상은 온통 장막이며 휘장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군중들이 불길하게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2시가 2분정도 지났을 무렵, 몇 사람이 본루 바로 뒤쪽지점으로부터 도열행진해서 구장에 입장했다. 군중들은 잠시동안 더 시끄럽게 웅성거리더니 이윽고 박수갈채를 터뜨렸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목제계단을 올라 단상위를 일렬로 가로질러가서는 준비된 자리에 앉았다. 트로브는 구장을 한 바퀴 빙 둘러보다가 위쪽의 기자석에서 깜박이는 TV카메라와 빨간 불빛을 발견하고는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엄청나군."
트로브가 같이 온 친구에게 나즈막히 말을 건넸다.
"그렇지. 하지만 효과적이야."
"맞아. 그래도 내겐 좀 낯설군. 우린 좀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거든."
트로브가 말했다.
"그래서 경마가 생겨난 게 아닌가."
친구의 대답이었다.
트로브는 얼마동안 주위의 목소리들에 귀를 기울였다. 놀랍게도 임박 한 행사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야구, 영화, 날씨, 가십거리, 신변잡기, 별별 얘기가 다 오고갔다. 마치 증오대회에 대해서만은 일부러 말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친구의 목소리가 그의 몽상을 깨웠다.
"일이 시작되어도 괜찮겠어? 졸도하는 사람들도 많았다구."
"난 걱정마."
그러더니 트로브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하지만 난 도대체 믿기지가 않아."
"무슨 소리야?"
"전부 말이야. 어떻게 이런 일이 시작됐는지.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말이야."
"이거 죽겠구만."
트로브의 친구는 계속해서 말했다.
"아마 듀크 대학의 어떤 교수가 생각해냈을 거야. 물론 정신이 지배한다는둥 하는 소리야 오래 전부터 돌아다녔지. 하지만 이 친구는 최초로 정신이 물질을 지배할 수 있다는 걸 과학적으로 증명했단 말이야(초심리학의 선구자인 듀크 대학의 라인박사를 말함:옮긴이)."
트로브가 받았다.
"주사위로 했겠구만."
"바로 그거야. 처음에는 여러 갈래로 갈라진 홈통 같은 데다가 주사위를 한 다스쯤 떨어뜨리는 실험을 했는데, 그것들이 내려가는 방향을 맘대로 조절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아냈지. 그리고는 그 비결을 발견한 거야. 아주 간단했어. 주사위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었던 사람들은 자기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었던 거야.
그러다가 한 번은 체육관에다 한 2,000명 쯤의 사람들을 모아놓고는 동시에 주사위의 움직임을 정신력으로 통제하는 실험을 했던거지. 그리고 그게 성공한 거야. 생각해보면 당연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 만약에 말 한 마리가 무거운 짐을 어느 정도 멀리 빨리 끌 수 있다면, 열 마리의 말은 훨씬 더 멀리 또 빨리 끌 수 있을게 아닌가? 군중들은 80%의 확률로 원하는 곳에 정확히 주사위를 떨어뜨렸지."
"주사위 대신 생물을 놓고 실험한 것은 언제쯤인가?"
트로브가 물었다.
"그건 전혀 모르겠네."
친구가 대답했다.
"상당히 오래 됐을거야. 처음부터 정부가 본격적으로 일을 추진했었지. 궁지에 몰린 교회들이 마지막으로 반발을 좀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무튼 그들도 곧 불가항력임을 깨달았지."
"지금 이 정도면 사람들이 많이 모인 편인가?"
"정치범으로 치자면 꼭 그렇지도 않다네. 요즘은 강간범이나 살인범을 잡으면 2, 3만명 정도도 끌어모으지 못할 때가 많아. 사람들을 그다지 흥분시키지 못하는 거야."
이윽고 해가 구름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트로브는 거대한 지도처럼 생긴 그림자를 보았다.
"햇빛도 준비운동을 하고 있군 그래."
누군가가 말했다.
"맞아, 아주 근사할 거야."
또 다른 목소리가 맞장구쳤다.
사람들의 함성이 구장을 뒤흔들었다. 그는 놀라서 고개를 쳐들었다.
멀리 떨어진 우측 내야쪽에서 남자 세 사람이 단상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두 명은 발을 맞춰 걷고 있었고, 세 번째 사람은 그들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몸을 구부정하게 굽힌 채로 불안하게 휘청거렸다.
트로브는 점점 기분이 나아지고 있었지만, 모자도 쓰지 않은 채 벗겨진 대머리를 드러낸, 피곤에 찌든 그 남자가 간수들에게 쿡쿡 찔려가며 2루쪽으로 떠밀려가는 모습을 보자 약간 속이 메슥거리기 시작했다.
두 명의 간수가 죄수를 끌고 계단을 올라가 조그만 식탁의자에 앉히는 동안이 마치 영겁의 세월처럼 길게 느껴졌다.
마침내 죄수가 자리에 앉자, 군중들이 다시 함성을 질렀다. 키가 크고 돋보이는 남자 하나가 사회자 단상에 올라가서 목청을 가다듬고는 오른 손을 쳐들어 군중들을 진정시켰다. 그가 말했다.
"좋아요, 아주 좋습니다."
군중들은 천천히 고요해졌다. 트로브는 두 손을 확 맞잡았다. 그는 어쩐지 수치스런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사회자가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신사, 숙녀여러분. 미합중국 대통령의 이름으로 공개증오대회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오늘의 대상은 어제 뉴욕시 소재 미합중국 지방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아서 케터리지 교수입니다."
케터리지의 이름이 불려지자 군중들은 마치 지진으로 땅이 흔들리는 듯한 소음을 냈다. 구장 가운데의 지붕없는 관람석에서 몇 사람이 음료수병을 던졌지만 케터리지를 맞추지는 못했다.
"잠시 후 대회를 시작하기에 앞서서, 먼저 개회 기도를 인도해주실 파크 애버뉴 러본교회의 찰스 풀러 목사님을 소개드리겠습니다."
안경을 낀 작달막한 남자가 나와서 사회자 대신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눈을 감고 고개를 뒤로 젖혔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 세상에서 저희에게 내려주신 모든 축복에 감사드립니다. 바라옵건대 저희가 오늘 참된 영혼으로 정의를 행함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 주님. 기도하노니 저희가 오늘 행하고자 하는 일이 주님의 성스러운 뜻의 종노릇함이 되게 해주십시오. 성서에 쓰여있는 바, 죄의 대가는 죽음이나라 하셨사옵니다. 이 사람의 마음을 깊숙이 들여다보시고 회개의 씨앗이 보이지 않거든 당신의 은혜와 자비로 그곳에 심어주시옵소서."
풀러 목사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헛기침을 하고 '아멘'이라고 덧붙였다.
기도가 끝나자 숙연하게 서있던 군중들이 다시 자리에 앉으면서 웅성대기 시작했다.
사회자가 일어섰다.
"좋습니다, 여러분. 모두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시겠지요. 그리고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도 역시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예!"
수 만의 목소리가 입을 모아 대답했다.
"그럼 지체없이 시작하기로 합시다.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구구한 설명이 필요없는 분이십니다. 신사숙녀 여러분, 하버드 대학의 총장을 역임하시고 현재 국무장관 보좌관으로 재직하고 계시는 하워드 S. 웰트머 박사를 소개합니다!"
웰트머 박사가 앞으로 걸어나와 사회자와 악수를 하고는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해선 안 됩니다. 이 일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려면 우리들의 모든 정신력과 최대의 집중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여러분들께서는 제 왼쪽 의자에 앉은 사람을 똑바로 주목하기 바랍니다. 이 사람은 제가 생각하기에 우리 시대의 가장 흉악한 범죄자인 아서 케터리지 교수입니다!"
군중들이 쇳소리같은 비명을 질렀다.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십시오! 그렇습니다, 한 사람도 남김없이 일어서 주세요. 이제 여러분 모두… 제 생각엔 여기 7만명 이상이 모인 것 같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한 분도 빠짐없이 모두 이 인간의 탈을 쓴 악마 케터리지를 똑바로 쳐다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그동안 꾹꾹 눌러놓았던 감정의 엄청난 힘을 그가 깨닫도록 하십시오. 자신이 범죄자이며, 살인자보다도 더 흉악한 반역죄를 저질렀기에 온 세상을 통틀어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다는 것을, 그가 태양만큼이나 뜨거운 열기를 가진 증오로 경멸당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십시오!"
트로브 주위의 사람들은 주먹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눈은 가늘게 뜨고 입을 한 일자로 꾹 다문 채로. 한 여자가 정신을 잃었다.
"힘을 내세요. 함께 느껴봅시다!"
웰트머가 소리질렀다.
사회자의 주문에 걸려들었는지, 트로브는 문득 자신도 피가 끓고 심장이 고동치는 것을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내면으로부터 분노가 솟구쳐 올랐다. 자신은 케터리지를 증오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뚜렷한 대상도 없이 분노와 증오가 마구 솟구쳤다.
"어머님의 영혼과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 조국에 대한 사랑의 이름으로, 여러분들이 이끌어낼 수 있는 최대의 증오감을 쏟아붓기 바랍니다. 증오를 불태우십시오. 여러분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 정글의 야수처럼 사납게 증오를 쏟아내십시오! 여러분, 이 인간을 증오하십니까?"
"그렇습니다!"
군중들이 포효했다.
"악마! 민중의 적! 이 소리가 들리느냐, 케터리지?"
웰트머가 부르짖었다.
트로브는 입이 바싹 마를 정도로 열중한 채, 의자에 힘없이 앉아 있던 형체가 발작적으로 몸을 내뻗고 고개를 뒤흔드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처음으로 자신들의 힘이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는 표시를 보자 군중들은 새로운 흥분의 절정감에 달아올라 신음했다.
웰트머가 말했다.
"전국에 계신 시청자 여러분. 여러분의 거실에서 일어나십시오. 동쪽을 향하십시오. 뉴욕시를 향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증오감이 심장을 통해 흐르도록 하십시오. 크게 소리지르십시오. 증오가 흘러넘치도록 하십시오!"
트로브 옆자리의 남자가 주저앉더니 고개를 돌리고 조심스럽게 손수건에다 구토를 했다. 트로브는 그 남자가 떨어뜨린 쌍안경을 줏어들고는 미친 듯이 렌즈를 조절해서 케터리지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었다.
한 순간 케터리지는 무대 앞쪽으로 뛰어나왔다. 트로브는 케터리지의 눈에 가득 고인 눈물과 흐느낌으로 들썩거리는 몸을 보았다. 그는 틀림없이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케터리지는 살아갈 가치가 없는 인간입니다. 여러분의 분노를 그에게 토해내십시오. 분노를 조절해서 생산적으로 쓰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의 가족이나 친구, 동포 시민들에게 화를 내지 말고, 이 인간의 모습을 한 악마에게 가차없이 쏟아내십시오."
웰트머가 소리쳤다.
"계속하세요! 해냅시다! 그를 죽여버립시다!"
그 순간, 마침내 트로브는 저도모르게 케터리지가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그 때 웰트머가 말했다.
"좋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이제 실제 단계로 들어갑시다. 여러분, 케터리지의 오른쪽 팔에 주의를 집중하십시오. 그 팔을 증오하십시오. 아시겠지요? 그 살을 뼛속부터 태워버리는 겁니다. 여러분은 해낼 수 있습니다! 자, 더 힘을 내십시오! 산 채로 태워버립시다!"
트로브는 쌍안경을 통해 눈도 깜빡이지 않고 케터리지의 오른쪽 팔을 지켜보았다.
죄수는 비명을 지르면서 펄쩍 뛰어올라 웃옷을 찢어내고는 왼손으로 오른쪽 팔뚝을 부여잡았다. 그 순간 살이 검게 변하는 모습이 망원경을 통해 트로브의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선홍색이다가 다음 순간엔 거무튀튀한 자주색으로, 케터리지는 손가락들이 쭈그러든 팔을 옆구리에 부딪쳐대면서 좁은 무대위를 자학하는 수도승처럼 마구 뒹굴었다.
"바로 그겁니다! 잘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잘하고 있어요! 정신이 물질을 지배합니다! 바로 그겁니다! 이 혐오스러운 육체를 태워버립시다! 우리 주님의 복수의 천사처럼 이 악마를 짓밟아 뭉갭시다! 바로 그렇게요!"
어깨살까지 점차 검은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케터리지는 셔츠를 찢어발겼다. 그는 마구 절규하면서 의자에서 펄떡 뛰어 무대 밑으로 몸을 던졌다. 잔다밭에 무릎이 부딪쳤다.
"오, 경이로운 힘입니다! 이제 저 인간은 여러분의 손아귀에 있습니다. 이제 진짜로 끝을 냅시다. 자, 힘을 내세요!"
케터리지는 잔디밭에서 꿈틀거리다가 벌떡 일어서서 방향을 잃고 마구 달리기 시작했다. 마치 달궈진 프라이팬 위의 벌레같았다.
트로브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쌍안경을 내려놓고 휘청거리며 통로를 빠져나왔다.
그는 스타디움을 나와서 열 두 블록 정도 비틀거리며 걷다가 마침내 택시를 부르고 말았다.
※ 토크쇼 진행자, 코미디언, 작곡가, 음악가등 다채로운 경력으로 1950년대에 미국에서 커다란 인기를 얻었던 인물이다. 1955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그의 유일한 SF소설로서, 당시 미국 사회에 휘몰아쳤던 극우 매커시즘의 광풍을 풍자한 것이다.
조큼 길어요. 심심하신 분들만 읽어보셔효. ^ ^
공개증오대회 (公開憎惡大會)
지은이 : 스티브 알렌(Steve Allen)
1978년 9월 9일, 하늘에는 구름이 약간 끼어있었다. 스타디움의 진입로로 몰려들고 있던 군중들 중에는, 간간이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옆사람에게 흘깃 곁눈질을 하며 '비가 안 오면 좋겠는데요'라고 말하곤 하는 이들이 있었다.
텔레비전의 기상예보관은, 구름은 약간 끼겠지만 비는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었다. 그다지 쌀쌀한 날씨는 아니었다. 스타디움 인접구역에서는 전차, 버스, 지하철들이 사람이란 사람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쏟아내고 있었다. 그들은 개미처럼 일렬로 줄을 서서 길을 건너고 회전문을 통과하고 계단을 오르고 진입로를 지나 입구를 통과하고 복도를 따라 내려갔다.
큰 소리로 웃고 이리저리 밀고 밀리면서, 사람들은 손바닥이 축축하게 젖을 정도로 흥분한 채 마구 뒤섞여 거대한 콘크리트 스타디움 안으로 들어갔다. 어떤 사람들은 화장실에 들렀고, 또 어떤 이들은 팝콘을 샀으며, 제복을 차려입은 안내원에게서 무료 안내책자를 받는 사람들도 있었다.
특별히 이날 만은 모든 것이 무료였다. 이 행사는 입장권도 팔지 않았다. 신문과 텔레비전에서 한 차례 공고를 했을 뿐인데, 무려 6만 5천여명이 호응한 것이다.
물론, 신문들은 수 주일 전부터 행사가 열릴 것임을 넌지시 시사하긴 했었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내내, 심지어 배심원이 선택될 무렵부터 신문의 사설기고가들은, 결과는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는 식의 논조로 글을 써 댔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발표가 난 것은 고작해야 어제였다. 텔레비전 방송망들이 신문보다 약간 빨랐다. 6시 정각에 정부는 모든 방송망을 통해 5분간 짤막한 연설을 하고 이 사실을 발표했다.
"우리 모두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케터리지 교수 재판의 추이를 지켜보아 왔습니다."
수상은 말을 계속했다. 회색 정장을 입은 그는 침착하고 핸섬하게 보였다.
"오늘 오후 배심원들은 유죄평결을 내렸습니다. 평결은 한 시간 내로 대법원에서 확정되었습니다. 시간을 절약한다는 취지에서, 백악관은 보통때와 마찬가지로 신속하게 공고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내일, 공개 증오(憎惡) 대회가 열립니다. 여러분의 협조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뉴욕 지역에 살고 계시는 분들께서는 빠짐없이…."
그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이런 저런 세부사항들을 '요청'했다. 그 뒤 아침이 되자 조간신문들은 일제히 '맨 처음 줄을 선 브롱크스 부부'니 '학생들이 증오대회를 보기위해 밤을 새서 기다렸다'느니 '일찍 일어난 새가…'어쩌구 하는 설명을 붙인 사진들을 게재했다.
오후 한 시 반이 되어 사람들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특별경찰이 출입구를 차단하고 더 이상 관객입장이 불가능하다는 전갈을 밖의 군중들에게 전했다 행상인들이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면서 차가운 맥주와 핫도그를 팔았다.
'양키즈'가 지금 클리블랜드에서 시합을 하고 있지 않았다면 1루였을 자리 바로 뒤에 앉아서, 프레드릭 트로브는 구장 가운데에 놓여있는 단상을 호기심 어린 눈길로 바라보았다. 단상은 복식용 링보다 한 두 배쯤 커 보였다. 단상 중간에는 약간 더 높은 부분이 있었고, 그 위에 흔한 목제 식탁의자가 하나 놓여있었다.
의자 옆쪽으로 고위인사들이 앉을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 '무대'라고 할만한 자리 아래에는 사회자석과 마이크가 설치되어 있었다. 단상은 온통 장막이며 휘장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군중들이 불길하게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2시가 2분정도 지났을 무렵, 몇 사람이 본루 바로 뒤쪽지점으로부터 도열행진해서 구장에 입장했다. 군중들은 잠시동안 더 시끄럽게 웅성거리더니 이윽고 박수갈채를 터뜨렸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목제계단을 올라 단상위를 일렬로 가로질러가서는 준비된 자리에 앉았다. 트로브는 구장을 한 바퀴 빙 둘러보다가 위쪽의 기자석에서 깜박이는 TV카메라와 빨간 불빛을 발견하고는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엄청나군."
트로브가 같이 온 친구에게 나즈막히 말을 건넸다.
"그렇지. 하지만 효과적이야."
"맞아. 그래도 내겐 좀 낯설군. 우린 좀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거든."
트로브가 말했다.
"그래서 경마가 생겨난 게 아닌가."
친구의 대답이었다.
트로브는 얼마동안 주위의 목소리들에 귀를 기울였다. 놀랍게도 임박 한 행사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야구, 영화, 날씨, 가십거리, 신변잡기, 별별 얘기가 다 오고갔다. 마치 증오대회에 대해서만은 일부러 말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친구의 목소리가 그의 몽상을 깨웠다.
"일이 시작되어도 괜찮겠어? 졸도하는 사람들도 많았다구."
"난 걱정마."
그러더니 트로브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하지만 난 도대체 믿기지가 않아."
"무슨 소리야?"
"전부 말이야. 어떻게 이런 일이 시작됐는지.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말이야."
"이거 죽겠구만."
트로브의 친구는 계속해서 말했다.
"아마 듀크 대학의 어떤 교수가 생각해냈을 거야. 물론 정신이 지배한다는둥 하는 소리야 오래 전부터 돌아다녔지. 하지만 이 친구는 최초로 정신이 물질을 지배할 수 있다는 걸 과학적으로 증명했단 말이야(초심리학의 선구자인 듀크 대학의 라인박사를 말함:옮긴이)."
트로브가 받았다.
"주사위로 했겠구만."
"바로 그거야. 처음에는 여러 갈래로 갈라진 홈통 같은 데다가 주사위를 한 다스쯤 떨어뜨리는 실험을 했는데, 그것들이 내려가는 방향을 맘대로 조절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아냈지. 그리고는 그 비결을 발견한 거야. 아주 간단했어. 주사위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었던 사람들은 자기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었던 거야.
그러다가 한 번은 체육관에다 한 2,000명 쯤의 사람들을 모아놓고는 동시에 주사위의 움직임을 정신력으로 통제하는 실험을 했던거지. 그리고 그게 성공한 거야. 생각해보면 당연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 만약에 말 한 마리가 무거운 짐을 어느 정도 멀리 빨리 끌 수 있다면, 열 마리의 말은 훨씬 더 멀리 또 빨리 끌 수 있을게 아닌가? 군중들은 80%의 확률로 원하는 곳에 정확히 주사위를 떨어뜨렸지."
"주사위 대신 생물을 놓고 실험한 것은 언제쯤인가?"
트로브가 물었다.
"그건 전혀 모르겠네."
친구가 대답했다.
"상당히 오래 됐을거야. 처음부터 정부가 본격적으로 일을 추진했었지. 궁지에 몰린 교회들이 마지막으로 반발을 좀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무튼 그들도 곧 불가항력임을 깨달았지."
"지금 이 정도면 사람들이 많이 모인 편인가?"
"정치범으로 치자면 꼭 그렇지도 않다네. 요즘은 강간범이나 살인범을 잡으면 2, 3만명 정도도 끌어모으지 못할 때가 많아. 사람들을 그다지 흥분시키지 못하는 거야."
이윽고 해가 구름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트로브는 거대한 지도처럼 생긴 그림자를 보았다.
"햇빛도 준비운동을 하고 있군 그래."
누군가가 말했다.
"맞아, 아주 근사할 거야."
또 다른 목소리가 맞장구쳤다.
사람들의 함성이 구장을 뒤흔들었다. 그는 놀라서 고개를 쳐들었다.
멀리 떨어진 우측 내야쪽에서 남자 세 사람이 단상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두 명은 발을 맞춰 걷고 있었고, 세 번째 사람은 그들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몸을 구부정하게 굽힌 채로 불안하게 휘청거렸다.
트로브는 점점 기분이 나아지고 있었지만, 모자도 쓰지 않은 채 벗겨진 대머리를 드러낸, 피곤에 찌든 그 남자가 간수들에게 쿡쿡 찔려가며 2루쪽으로 떠밀려가는 모습을 보자 약간 속이 메슥거리기 시작했다.
두 명의 간수가 죄수를 끌고 계단을 올라가 조그만 식탁의자에 앉히는 동안이 마치 영겁의 세월처럼 길게 느껴졌다.
마침내 죄수가 자리에 앉자, 군중들이 다시 함성을 질렀다. 키가 크고 돋보이는 남자 하나가 사회자 단상에 올라가서 목청을 가다듬고는 오른 손을 쳐들어 군중들을 진정시켰다. 그가 말했다.
"좋아요, 아주 좋습니다."
군중들은 천천히 고요해졌다. 트로브는 두 손을 확 맞잡았다. 그는 어쩐지 수치스런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사회자가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신사, 숙녀여러분. 미합중국 대통령의 이름으로 공개증오대회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오늘의 대상은 어제 뉴욕시 소재 미합중국 지방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아서 케터리지 교수입니다."
케터리지의 이름이 불려지자 군중들은 마치 지진으로 땅이 흔들리는 듯한 소음을 냈다. 구장 가운데의 지붕없는 관람석에서 몇 사람이 음료수병을 던졌지만 케터리지를 맞추지는 못했다.
"잠시 후 대회를 시작하기에 앞서서, 먼저 개회 기도를 인도해주실 파크 애버뉴 러본교회의 찰스 풀러 목사님을 소개드리겠습니다."
안경을 낀 작달막한 남자가 나와서 사회자 대신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눈을 감고 고개를 뒤로 젖혔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 세상에서 저희에게 내려주신 모든 축복에 감사드립니다. 바라옵건대 저희가 오늘 참된 영혼으로 정의를 행함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 주님. 기도하노니 저희가 오늘 행하고자 하는 일이 주님의 성스러운 뜻의 종노릇함이 되게 해주십시오. 성서에 쓰여있는 바, 죄의 대가는 죽음이나라 하셨사옵니다. 이 사람의 마음을 깊숙이 들여다보시고 회개의 씨앗이 보이지 않거든 당신의 은혜와 자비로 그곳에 심어주시옵소서."
풀러 목사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헛기침을 하고 '아멘'이라고 덧붙였다.
기도가 끝나자 숙연하게 서있던 군중들이 다시 자리에 앉으면서 웅성대기 시작했다.
사회자가 일어섰다.
"좋습니다, 여러분. 모두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시겠지요. 그리고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도 역시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예!"
수 만의 목소리가 입을 모아 대답했다.
"그럼 지체없이 시작하기로 합시다.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구구한 설명이 필요없는 분이십니다. 신사숙녀 여러분, 하버드 대학의 총장을 역임하시고 현재 국무장관 보좌관으로 재직하고 계시는 하워드 S. 웰트머 박사를 소개합니다!"
웰트머 박사가 앞으로 걸어나와 사회자와 악수를 하고는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해선 안 됩니다. 이 일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려면 우리들의 모든 정신력과 최대의 집중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여러분들께서는 제 왼쪽 의자에 앉은 사람을 똑바로 주목하기 바랍니다. 이 사람은 제가 생각하기에 우리 시대의 가장 흉악한 범죄자인 아서 케터리지 교수입니다!"
군중들이 쇳소리같은 비명을 질렀다.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십시오! 그렇습니다, 한 사람도 남김없이 일어서 주세요. 이제 여러분 모두… 제 생각엔 여기 7만명 이상이 모인 것 같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한 분도 빠짐없이 모두 이 인간의 탈을 쓴 악마 케터리지를 똑바로 쳐다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그동안 꾹꾹 눌러놓았던 감정의 엄청난 힘을 그가 깨닫도록 하십시오. 자신이 범죄자이며, 살인자보다도 더 흉악한 반역죄를 저질렀기에 온 세상을 통틀어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다는 것을, 그가 태양만큼이나 뜨거운 열기를 가진 증오로 경멸당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십시오!"
트로브 주위의 사람들은 주먹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눈은 가늘게 뜨고 입을 한 일자로 꾹 다문 채로. 한 여자가 정신을 잃었다.
"힘을 내세요. 함께 느껴봅시다!"
웰트머가 소리질렀다.
사회자의 주문에 걸려들었는지, 트로브는 문득 자신도 피가 끓고 심장이 고동치는 것을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내면으로부터 분노가 솟구쳐 올랐다. 자신은 케터리지를 증오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뚜렷한 대상도 없이 분노와 증오가 마구 솟구쳤다.
"어머님의 영혼과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 조국에 대한 사랑의 이름으로, 여러분들이 이끌어낼 수 있는 최대의 증오감을 쏟아붓기 바랍니다. 증오를 불태우십시오. 여러분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 정글의 야수처럼 사납게 증오를 쏟아내십시오! 여러분, 이 인간을 증오하십니까?"
"그렇습니다!"
군중들이 포효했다.
"악마! 민중의 적! 이 소리가 들리느냐, 케터리지?"
웰트머가 부르짖었다.
트로브는 입이 바싹 마를 정도로 열중한 채, 의자에 힘없이 앉아 있던 형체가 발작적으로 몸을 내뻗고 고개를 뒤흔드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처음으로 자신들의 힘이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는 표시를 보자 군중들은 새로운 흥분의 절정감에 달아올라 신음했다.
웰트머가 말했다.
"전국에 계신 시청자 여러분. 여러분의 거실에서 일어나십시오. 동쪽을 향하십시오. 뉴욕시를 향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증오감이 심장을 통해 흐르도록 하십시오. 크게 소리지르십시오. 증오가 흘러넘치도록 하십시오!"
트로브 옆자리의 남자가 주저앉더니 고개를 돌리고 조심스럽게 손수건에다 구토를 했다. 트로브는 그 남자가 떨어뜨린 쌍안경을 줏어들고는 미친 듯이 렌즈를 조절해서 케터리지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었다.
한 순간 케터리지는 무대 앞쪽으로 뛰어나왔다. 트로브는 케터리지의 눈에 가득 고인 눈물과 흐느낌으로 들썩거리는 몸을 보았다. 그는 틀림없이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케터리지는 살아갈 가치가 없는 인간입니다. 여러분의 분노를 그에게 토해내십시오. 분노를 조절해서 생산적으로 쓰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의 가족이나 친구, 동포 시민들에게 화를 내지 말고, 이 인간의 모습을 한 악마에게 가차없이 쏟아내십시오."
웰트머가 소리쳤다.
"계속하세요! 해냅시다! 그를 죽여버립시다!"
그 순간, 마침내 트로브는 저도모르게 케터리지가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그 때 웰트머가 말했다.
"좋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이제 실제 단계로 들어갑시다. 여러분, 케터리지의 오른쪽 팔에 주의를 집중하십시오. 그 팔을 증오하십시오. 아시겠지요? 그 살을 뼛속부터 태워버리는 겁니다. 여러분은 해낼 수 있습니다! 자, 더 힘을 내십시오! 산 채로 태워버립시다!"
트로브는 쌍안경을 통해 눈도 깜빡이지 않고 케터리지의 오른쪽 팔을 지켜보았다.
죄수는 비명을 지르면서 펄쩍 뛰어올라 웃옷을 찢어내고는 왼손으로 오른쪽 팔뚝을 부여잡았다. 그 순간 살이 검게 변하는 모습이 망원경을 통해 트로브의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선홍색이다가 다음 순간엔 거무튀튀한 자주색으로, 케터리지는 손가락들이 쭈그러든 팔을 옆구리에 부딪쳐대면서 좁은 무대위를 자학하는 수도승처럼 마구 뒹굴었다.
"바로 그겁니다! 잘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잘하고 있어요! 정신이 물질을 지배합니다! 바로 그겁니다! 이 혐오스러운 육체를 태워버립시다! 우리 주님의 복수의 천사처럼 이 악마를 짓밟아 뭉갭시다! 바로 그렇게요!"
어깨살까지 점차 검은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케터리지는 셔츠를 찢어발겼다. 그는 마구 절규하면서 의자에서 펄떡 뛰어 무대 밑으로 몸을 던졌다. 잔다밭에 무릎이 부딪쳤다.
"오, 경이로운 힘입니다! 이제 저 인간은 여러분의 손아귀에 있습니다. 이제 진짜로 끝을 냅시다. 자, 힘을 내세요!"
케터리지는 잔디밭에서 꿈틀거리다가 벌떡 일어서서 방향을 잃고 마구 달리기 시작했다. 마치 달궈진 프라이팬 위의 벌레같았다.
트로브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쌍안경을 내려놓고 휘청거리며 통로를 빠져나왔다.
그는 스타디움을 나와서 열 두 블록 정도 비틀거리며 걷다가 마침내 택시를 부르고 말았다.
※ 토크쇼 진행자, 코미디언, 작곡가, 음악가등 다채로운 경력으로 1950년대에 미국에서 커다란 인기를 얻었던 인물이다. 1955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그의 유일한 SF소설로서, 당시 미국 사회에 휘몰아쳤던 극우 매커시즘의 광풍을 풍자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