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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것이야말로 돌발영상이다

정말 돌발이다. 이것이야말로 돌발영상이다.
‘대행’이 이럴 줄 뉘 알았으랴.
대행이면 그저 임시관리업무에 종사할 줄 알았고, 한시적으로 대행업무에 충실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건 사장보다도 더 하고 오너 사장보다도 더 하고, 재벌 오너보다도 더한 리더십과 오너십을 구사한다. 이것만으로도 돌발이다.

27일 YTN사측은 용역들을 동원했다. 언론기관에 용역들이 동원되는 일도 이제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가장 자유롭고 가장 표현의 자유가 꽃 피워야 될 언론사에, 그것도 입출입을 통제하고 감시하고 증거를 수집하는 임무를 담당할 용역이 등장했다. 역시 대행이다. 회사에서 할 일을 용역이 대행 중이다. 노동력을 사다 업무를 대행시키고 있다. 대행이요, 대행답다. 역시 돌발이다.

                                                               ▲ 오마이뉴스

그렇게 해서 노조 지도부의 회사 출입을 완벽하게 통제했다. 보도국장에 대한 불신임투표를 저지하려는 속셈으로 이해된다. 노종면 위원장, 현덕수 전 위원장, 조승호 기자 등 해고자 6명은 아예 출입이 통제됐다. 노조 지도부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해고자신분이었다 하더라도 노동조합 집행부의 신분만으로 사실상 출입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노동조합 집행부의 신분마저 무시해 버리는 행태가 벌어지고 있다. 노동조합의 활동은 헌법이 정한 사항이다. 헌법이 있고, 노동법이 있고, 상법이 있다. 회사 눈에는 회사법만 보인다. 일방이다. 사용자만의 회사다. 대행이다. 대행들만의 회사다. 돌발상황이다.


2. 대행의 역사를 새로 쓰는 배석규 대행

인사권 행사도 대행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 같다. 보도국장에 대한 인사도 그런 의심을 주기에 충분하고, 그런 관행을 벗어났다고 평가하기에 너무도 충분하다. 보도국 소속 5명 기자에 대한 지방발령도 역시나 그렇다. 대행이 갖는 대행의 한계를 도리어 극단적으로 극복하고 강화하는 역사상 최강 대행이다.


3. 고립과 공포를 통한 자포자기 전술이다, 네가 죽어야 우리가 살 수 있다는 대한민국 판 공동체주의다

맹수가 무리지어 생활하고 있는 연약한 초식동물을 공격하는 방식이 있다. 먼저 혼란을 초래한다. 공포를 조성한다. 이리저리 우왕좌왕하게 한다. 그러면 낙오가 생긴다. 그때 낙오를 분리시킨다. 그런 다음 집중적으로 공격한다. 그러면 나머지 무리들은 어떻게 될까. 겁이 나서 도망간다. 그렇게 해서 무리들은 가장 약한 몇 마리를 맹수들에게 사냥감으로 바치고, 혹은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다시 자기들의 생활로 돌아간다. 물론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랬을 것이다. 그런 방식의 생존이 수 백년을 계속해 왔을 것이다.

요즘 드는 생각이 이상하게 그런 생각이 많다. 분리시킨다. 고립시킨다. 포기하게 한다. 무관심을 유발시킨다. 연대의 맥을 끊어버린다. 격리시킨다. 고립되고 격리되고 소외되고 분리되고 차별된 자는 한편 인내심이 고갈되고, 다른 한편 분노로 결국은 자기만의 세계로 침잠해 버린다. 이로써 승부는 쉽게 끝이 난다.

어느 순간 중립을 자초하는 사람들은 이제 그만 됐다, 어쩔 수 없지 않느냐, 이것도 저것도 다 필요 없으니 제발 조용했으면 좋겠다며 중립을 가장한 극단적 편향에 사로잡힌다. 이는 힘의 우위를 인정하는 전술이다. 폭력의 합법성을 그대로 수용하는 전근대적 방식이다. 이른바 마름근성이요, 혹은 노예근성에까지 맞닿는다.

조폭영화가 있다. 한 놈만 패자는 전술이다. 그 놈만 패면 된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공포에 젖어 쉽게 포기한다. 그것이 세상이다. 어설프게 개입했다가는 나 또한 삶을 망치게 된다.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 변명하면 다들 이해하는 세상이다. 나 또한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은 그 답답함을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고 일갈했다.

용산이 그렇다. 글을 쓰고 있는 8월 27일 현재 220일째다. 이들은 서서히 분리되고 고립되고 무관심 속에 잊혀져 간다. 진중권 교수 해촉에 대한 항의에 나선 중앙대 학생들의 경우도 그렇다. 결국 그 학생들만 피해자가 된다. 잠시 동정하지만 결국 이들만 피해자가 되고, 동정의 시간도 대행의 시간만큼이나 지극히 한시적이기 때문에 어느 순간 연민의 고리를 끊기고 만다. 그러다 어느 때 명동 골목에서 부딪히더라도 잠시 미안한 마음으로 외면하고 되돌아서 차가운 소주 한 잔 빈속에 부으면, 그래 나는 못난 놈이야 하고 자조하고 나면 그게 곧 인생이다.

쌍용차 사태도 마찬가지다. 일자리를 나누고, 시간을 나누고, 봉급을 나누고, 그러면서 버틸 수 있는 여지도 있다. 그런데 네가 죽어줘야 내가 산다는 식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다 죽는다, 그럼 다 죽자는 말이냐, 제발 힘들더라도 네가 좀 포기하고 죽어주렴, 그래서 도장 공장에 있던 해고 근로자보다도 사용자 쪽에서 일하고 일자리를 잃지 않았던 노동자나 그 가족들의 반응이 그토록 격렬할 수 있었다. 물론 대한민국 사회는 사회적 안전망이 없다. 난파선이다. 난파선의 정원이 50명인데, 그 배에 80명이 타 버린 형국이 바로 쌍용차 사용자 측의 현실인 식이다. 죽어 주라는 식이다. 당신들이 죽어줘야 나머지가 산다는 식이다. 그야말로 막장이라는 식이다. 이들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 난파선 식의 삶을 강요하는 시장이라는 이름의 왜곡된 물신이 그 책임이다. 그런데 이 물신에 대해서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다.

                                                              ▲ 오마이뉴스

쌍용차의 맥락을 YTN에 비견할 생각은 없다. 다만 우리 사회의 시대적 흐름이 지나치게 왜곡되고 있는데 대한 어설픈 분노다. 분리, 고립, 무관심은 곧 연대의 파괴요, 연민의 정을 철저하게 후퇴시킨다. 고립된 개인, 원자화된 개인, 철저히 소외된 개인, 세상과 회사로부터 왕따 당한 개인을 만들어낸다. 그러다 이들은 어느 순간 회사에서 쫓겨나고 사회에서 쫓겨나고 세상에서 잊혀진다. 우리는 잠시 슬픔과 연민의 정에 취해 있다가 어느 새 되돌아와 여우같은 내 아내와 토끼 같은 내 새끼들의 입을 걱정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 자조한다. 세상이 다 그런데 나 혼자 힘으로는 어쩔 수 없었다고 역시나 자조한다. 물론 그런 세상이다. 그런 세상을 우리가 만들었다. 어떠한 연민의 정도 허용되지 않고, 어떠한 연대의식조차도 용납되지 않는 얼음공주보다도 더 차갑고, 가위손보다도 더 날카로운 지극히 냉정하고 지극히 혐오스러운 분열과 분단과 고립과 소외의 장벽을 우리가 만들었다. YTN 해고자에게 진정 따뜻한 햇볕정책이 펼쳐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