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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로 지는 순간 TV 끄고 책을 잡았습니다. 책을 펴니 더 술이 땡기네요. 지금 읽고 있는 책은 공선옥의 "유랑가족"입니다. 그 연작소설의 첫번째 소설 "겨울의 정취"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오네요.

 

다음달 태양건설 사외보 메인 꼭지에는 남도 산골의 아늑한 겨울 풍경이 오롯이 담긴 사진과 글이 실리게 될 것이다. 자신이 끓여준 라면을 먹으며 좋아하는 아이들의 모습도 거기에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컴퓨터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아이들과 학원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아이들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신리에서 보낸 일 주일 중 사흘을 뺀 나머지 날 동안 미정이 아빠, 김달곤과 함께 통음을 했던 사실도, 김달곤이 들려줬던 이야기도 태양 사외보에는 실리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래야만 한다. 왜냐하면 '남도의 겨울 정취'여야만 하니까. P. 53.

 

삶은 아름답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아름답지 않은 삶을 보고 싶어하진 않지요. 설혹 그것이 자신 안에 고이 묻어둔 아픔일지라도 말이지요. 그런데 아픔을 돌아보지 않고, 그 아픔을 내보이고 치료하지 않은 한 그 아픔은 해결될리 없습니다. 물론 아픔의 원인이 해결되지 않아 아픔이 없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픔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고 인정하는 순간 다른 세계가 열릴 가능성이 생기기도 합니다.

말을 할 줄 안다는 것, 그 중에 자신의 아픔을 얘기할 줄 안다는 것은 위대한 능력이지요. 그래서 말은 곧 힘입니다. 가진 자들은 이 말을 이용하여 자신의 절절한 아픔을 설파하지요. 비록 손끝의 작은 아픔일지라도 정말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인 것처럼 잘 포장합니다. 그렇지만 가지지 않은 자들의 아픔은 보지 않으려고해요. 말할 줄 모르는 사람들의 아픔. 언어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아픔.

사실 말을 못하는 사람은 없어요. 하지만 말을 가지고 자신의 뜻대로 활용하는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말하기 방식을 용납하지 않아요.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의 말하기만을 인정하지요. 그런데 이건, 이건 타인의 아픔을 보기 싫어하는 치졸한 본성의 발로 일 수도 있는 것 같아요. 타인의 고통을 인정하는 순간, 타인의 고통을 통해 덕을 보는 자신의 삶이 부정되니까요.

그들은 용산에서 타죽은 사람들의 고통은, 그 들이 취했던 그 목소리를 전하는 방식이 부당했다고 말하며 "도심 테러"라 규정하여 그 고통이 아예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하지만, 종부세로 강남을 떠나야 했던 1000여명의 자기와 이해관계가 비슷해 보이는 것처럼 위장하여 말할 수 있었던 사람의 고통은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이라 목놓아 부르짖었죠.

그들은 원합니다. 세상이 아름답기를. 겨울의 정취 처럼. 그 속의 삶이 어떻다는 건 보려 하지 않아요. 그들에게 필요한 건 조용한 남쪽 산의 "겨울의 정취"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