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얼마전에 친구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장례식장에 가게되었다.

대학시절 연합동아리를 같이 했던 친구였다.


이리저리 연락이 닿았는지 그 당시의 동기 녀석들이 죄다 모였다.

그중에는 이젠 애엄마가 되어 허리둘레가 드럼통만해진 여자 아이들도 몇명 왔었다.


장례식은 호상이라서 그리 침울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어떤 친구는 근 10여년만에 얼굴을 본 친구도 있어서 우리들의 자리는 더할 수 없이

반갑고 즐거운 분위기였다.

남자 녀석들이야 가끔씩 술자리도 같이 하고 연락을 쭉 이어오고 있었지만,

여자 친구들은 결혼하고 애낳고 그러다보면 연락도 끊기고 슬금슬금 기억속에서도 잊혀지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가끔씩 들려오는 이런 애사가 우리를 다시 불러모으곤 한다.


근 20년전에 알고 지내던 친구들...


겉모습이야 이젠 늙다리가 되었지만 우리는 20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그 시절의

마음으로 돌아가 웃고 떠들며 즐겁기만 하다.



술 한잔이 들어가니 별별 소리가 다 나온다. 이젠 나이 먹을만큼 먹고, 세월도 흐를만큼 흘러서

비밀도 없고, 더 이상 부끄럽고 숨길것도 없나보다.


그 시절에 물밑에서 진행되었던 남과여의 연애사, 어떤 선배와 여자동기가 몰래 사귀었다는 둥,

누구랑 누가 사귀다 깨졌다는 둥...


다른 녀석들은 다 알고 있었다는데, 나만 모르고 있었다.

그 시절에도 난 영 눈치가 깜깜했나보다. 영계가 뭘 알아~~



술이 좀 오르자, 옆에 있던 밤톨만한 여자애가 나한테 말한다. 지은(가명)이라는 애다.


지은   : 그때 내가 너 좀 좋아했던것 아니?

영계   : 그런일이 있었니? 전혀 몰랐는데......

지은   : 아니, 그걸 왜 모르니? 너한테도 말했는데...

영계   : 나한테 말한 적 없었잖아? 

지은   : 챙피해서 내가 직접 말한적은 없었지만, 내 친구 소현이가 너한테 말했잖아



이야기를 꿰어 맞춰 보니 이런 일이 있었다.



대학교 2학년때쯤 저 위에 언급한 지은이란 얘의  절친한 친구인 소현(가명)이라는 얘가

나한테 와서 뜬금없이 이런 말을 했었다.



"지은이가 요즘 힘들어하더라. 네가 좀 신경써줘라"



난 그때 그게 무슨 말인지도 몰랐다. "지은이가 왜 힘들어하지? 걔네 아버지 사업이 망했나?"



다시 대화가 이어졌다.


영계  : 아니 말을 하려면 내가 알아듣게 해야지, 그게 뭐냐?

지은  : 그정도 말하면 알아들어야지. 이 멍청한 놈아

영계  : 아, ㅆㅂ  인생...ㅠ.ㅠ







사소한 택배하나를 보내더라도 수취인이 제대로 받았는지 확인 사인이라도 받아오는 법이다.

하물며, 저런 중요한 심경고백을 술에 술탄듯, 물에 물탄듯 저렇게 흐리멍텅하게 전하다니.....









아, 내 인생 20대 초반에 꽃이 필수도 있었는데........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