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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전 10시, 충남 천안역의 한 사무실에 철도 노동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철도노조의 2차 파업이 철회되고 노조의 지침에 따라 근무를 위해 역으로 출근한 노동자들과 천안역지부 노조 간부들이었다. 언론의 인터뷰를 해본 경험이 없는 노동자들은 처음엔 멋쩍어 했지만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담아뒀던 생각들을 쏟아냈다. 동료가 말할 때 조용히 있던 노동자들은 한 마디씩 거들었고, “이 얘기는 꼭 실어 달라.”고 부탁하는 노동자들도 있었다.

파업이 철회되고, 다시 일터로 돌아왔지만 노동자들은 모두 할 말이 많아 보였다. 파업 당시 철도파업과 관련한 기사들이 언론에 실시간 보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노동자들이 가슴에 담아뒀던 말은 무엇일까.


철도공사, 교섭에 나올까?

“철도공사는 파업을 철회하면 대화한다고 했다. 과감히 파업을 철회하라고 했다. 그런데 또 핑계를 대고 교섭에 안 나오고 있는 모양이다. 3차 파업을 예고했다는 이유를 들면서 말이다. 노조는 조건부로 파업을 철회한 것이다. 공사측이 교섭에 성실히 응하면 3차 파업은 없을 수 있다. 이것은 핑계 아닌가? 노조와 진짜 대화를 해서 사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인지… 믿을 수가 없다.”

노조는 공사측이 교섭 자리에 나올 것을 촉구하고 파업을 철회했지만 공사측이 교섭자리에 나와 성실하게 대화를 할 것인지는 미지수다. 공사측은 지난 달 26일 2차 파업에 돌입할 때에도 노조가 2차 파업을 이미 예고했다며 단체협약(이하 단협)을 해지했다. 일방적인 단협해지는 노조를 파업으로 내몰았고, 바로 전날까지 공사측과 실무교섭을 했던 노조 관계자는 “(단협해지의)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파업을 예고한 목적은 허준영 사장을 포함한 공사측을 교섭자리에 나오게 하기 위한 노조의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파업에 돌입하게 된 배경은 단협해지 때문이다. 26일로 2차 파업을 예고했지만 상황 변동에 따라 파업에 돌입할 수도 있었고, 안 할 수도 있었다. 파업을 철회한 목적은 공사의 말처럼 대화를 통해 절충점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대화를 하지 않겠다면 우리는 다시 3차 파업에 돌입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지난 달 5일부터 6일 동안 순환파업을 한 것도 정확히 ‘경고파업’이었다. 사장이 교섭 자리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분노는 이명박 정부에게도 향해 있다. 정부는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자 ‘불법파업’으로 규정했다. 검찰, 경찰을 동원해 노조 지도부에게 체포영장 발부하고, 노조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그러나 노동위원회조차 이번 철도노조의 파업이 불법파업이라고 규정한 적은 없다. 정부는 단협을 해지하고, 교섭자리에 나오지 않는 공사를 향한 비판을 함구했다.

“노동자들의 요구가 정당하니까 정부는 파업 5일차까지 불법파업에 대해 언급하지 못하다가 파급효과가 크니까 ‘불법’이란 꼬투리를 끼워 맞췄다. 노사간의 대화와 협상이 우선이지만 정부가 개입하면서 대체인력을 투입하고, 공사와 함께 노조 탄압에 나섰다. 대통령이 일개 사장만도 못하는 행보로 노조를 압박했다. 사실 이명박 대통령은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고 얘기할 입장이 안 된다. 철도가 파업을 하자 대통령은 지금 놀고 있는 사람이 얼마다 많은데 파업을 하냐면 우리는 나무랐다. 그런데 사람을 더 뽑아야 하는 상황에서 정원감축만 하고 여기 있는 사람 저리로 빼서 쓰고 있다."

거짓으로 부풀린 현장복귀율

2차 파업 기간 동안 파업참가자들에 대한 압박은 심각했다고 한다. 공사는 파업참여자에게 문자를 보내 파면할 계획이라며 엄포를 놓았고, 사직서를 제출하라고 강요하기도 했단다.

“천안역지부 노조 임원은 한 달반 동안 병가중인데, 노조 간부라는 이유로 직위해제를 했다. 복귀하지 않으면 파면하겠다, 의원면직 하겠다며 사직서를 제출하라고 강요하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역장 과장이 파업참가자 집에 찾아가 경찰이 죄 지은 사람을 체포하듯이 현장으로 끌고 나온 경우도 있었다. 가족들에게 편지를 보내 자칫 소중한 가족을 잃을 수도 있다며 협박을 했다. 부모님이 투병생활을 하는 조합원이 있었는데, 공사측이 부모님을 협박하자 어쩔 수 없이 현장으로 복귀한 조합원도 있었다. 친인척과 철도내 선후배 라인을 파악해 이들이 협박을 하기도 했다.”


공사측이 파업참여자들의 현장복귀를 종요한 행위는 언론에 보도되었던 현장복귀율과도 맞물린다. 파업 내내 공사측은 현장복귀자가 늘고 있다고 강조했고, 노조는 파업참여자가 늘고 있다고 알렸다. 무엇이 진실일까.

“이번에는 파업에 참여한 사람이 상당히 많았다. 왜냐하면 단협해지이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기본적이고 전반적인 근로조건을 노사가 약속한 것이 단협인데, 이를 해지한다고 하니 모두 ‘이제 죽는구나’라고 생각한 것이다. 공사측은 파업에 참여자를 이탈시키기 위해 전화하거나 혹은 구두 보고하면 근무한 것으로 쳐준다고 했다. 또한 무노동 무임금으로 파업에 참여하면 기간동안 임금을 받지 못하니까 돈으로 노동자들을 회유하는 것이다. 근퇴처리해서 복귀율을 높이고, 억지로 언론 조작한 측면이 많다. 자진 복귀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새벽에도 문자가 오니까… 수면에도 방해되고…”

공사측은 파업참여자와 미참여자를 끊임없이 분리시켰다. 현장에 복귀 한 첫 날, 노동자들은 사측이 의도적으로 미참여자들을 보호하다며 현장에 출근시키지 않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본질은 공사측이 노동자간의 갈등을 유발한 것이나 그래도 파업에 참가하지 않은 동료들에 대한 서운한 감정은 숨길 수 없나 보다.

“처음부터 파업참여자와 미참여자간의 갈등이 있다. 심한 곳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고… 업무 특성에 따라 푸는 방법은 다양하다. 서운한 감정은 있다. 추운데서 안 떨고 싶은 것은 모두 같은 마음이다. (현장으로)돌아와서도 처음에는 서먹서먹하다. 그런데 같이 지내다보면 많이 묻히고… 그러나 속으로는 다음에는 꼭 참여해 줬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전체를 위한 일이니까… 그것을 고려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런데 마음이 약해서 참여안 하는 사람들도 있다. 회사에 잘 보이려고 안 나오는 사람도 있고… 병가를 써버리는 사람도 있다(웃음).”

허준영이 사장이 되고 나서

“허준영이 사장이 되고 나서 모든 조건이 다 후퇴했다. 사장이 이명박 대통령 낙하산으로 들어오면서 정부 정책을 일방적으로 행동에 옮겼다. 고소고발을 남발해서 3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당했다. 이틀에 한 명꼴이다. 낙하산 인사라고 해서 취임식 하는 날부터 반대했는데… 6개월동안 허준영 사장이 안 나와 본교섭은 4번밖에 열리지 않았다. 취임하자마자 5,115명 정원축소안을 이사회를 열어 통과시켜버리고, 지방본부를 비용절감센터 정도로만 인식한다. 비용절감을 한다며 일반관리비조차 깎는다. 마스크도 우리가 돈 주고 사서 써야 하는 실정이니까… 복지도 많이 축소했는데, 노동자들에게 무임승차권도 없앴다.”

무임승차권 얘기가 나오자 노동자 한 명은 “복지가 뭐 있어요? 딸랑 그거 누리는 건데.”라고 맞받아쳤다. 무임승차권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출근하는 노동자들이 일종의 ‘교통비’로조 공사측과 투쟁을 통해 얻어낸 복지혜택이었다.


상황이 이러자 허준영 사장을 겨낭한 비판의 목소리는 높았다. 특히 공기업 선진화 방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공사측의 행보에 우려를 나타냈다. 공사측은 노조가 공기업 선진화 방안을 반대하며, 이는 교섭의 대상이 아니라고 했고, 정부는 노조의 파업을 ‘정치파업’으로 몰았다. 반면 노조는 공기업 선진화 방안은 이번 교섭 대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공사측이 문제의 본질을 호도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공기업 선진화 방안에 대해서도 말문을 열었다. 교섭대상이냐 아니냐보다 중요한 것은 공기업 선진화 방안 자체가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후퇴시키는 모든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공기업 선진화 방안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근로조건을 개악시키고, 임금을 삭감시키는 방안이다. 지금은 3조2교대인데 5조2교대로 변형근로를 강요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인원은 남아돌고, 노동강도는 강화된다. 사측의 요구안대로 한다면, 기존의 월급을 받으려면 특근을 죽어라 해야 한다. 내용적으로 선진화는 정책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공기업 노동자들을 구조조정 하는 수단이다. 선진화안을 받는다면 기존에 체결한 단협이 무의미해진다. 모든 것을 뒤집어 놓는 안이기 때문이다. 전환배치, 노조 전임자 수 줄이는 문제… 시간외수당도 없어지고… 선진화와 노동조건은 반비례하고 있다. ‘선진화’라고 표현하니까 국민들이 혹하는 것 같다. 언론플레이에 속아 넘어가는 것 같다. 그러나 실제 근무하는 사람들은 그게 아니다. 가족들은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설, 추석, 휴일도 없이 일한다.”


국민들에게 죄송합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국민들에게 불편을 끼쳐서 죄송하다는 말과 동시에 ‘정말로 불편한 시대’를 막기 위해 일시적인 불편을 감수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또한 ‘국민을 볼모로 파업을 한다’는 말은 의도적이고 악의적인 표현이라며, 파업을 할 때마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겪는 고충을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철도 노동자들은 출퇴근하는 거리가 머니까 열차가 안 오면 우리도 불편하다. 홈에서 시민들이 욕하는 소리 우리도 듣는다. ‘이 놈들은 뻑하면 파업 해가지고…’ 공공서비스가 후퇴하고, 민간서비스로 넘어가면 열차 요금 올리고, 경로 우대 등의 할인율 없어진다. 지금도 새마을과 무궁화를 우선 줄여버리지 않는가. 사실 공공서비스가 늘어나면 적자로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공사는 적자기업이니 이윤을 남겨야 한다면서 공공성을 파괴하고 노동자들을 죽이고 있다. 사실 우리는 필수유지업무를 하면서 파업을 했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파업을 했던 것이다. 철도 노동자들이 국민들에게 미안해한다. 그런데 파업을 하지 않으면 우리의 요구에 귀기울여주지 않는다.”

철도노조가 교섭으로 사태를 해결하자는 의지를 표현하며 2차 파업을 철회했다. 노조가 파업을 철회한다는 것은 벼랑 끝에서 썩은 동아줄을 한 더 믿어보자며 두 손으로 꼭 잡은 것과 다름없다. 썩은 동아줄이 끊어지도록 칼날을 댈 것인가, 썩은 줄이 아니라 손을 내밀어 노동자들과 사회 구성원으로서 살아갈 것인가. 그 답은 철도공사와 정부에게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것은 사회는 ‘가진 자’로만은 절대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다. 철도를 굴리고, 수리하고, 시민들에게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오로지 노동자들의 몫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