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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초류향님이 올려주신 무협관련 글을 보면 자꾸 예전 생각이 납니다.



중학교 1학년 시절, 작고 가냘픈 몸매에 큰 눈을 가진 친구를 알게 되었습니다.

반에서 항상 괴롭힘을 당하던 흔한 말로 '왕따'인 친구였지요. 

돌이켜 생각해 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인데,

비록 직접적으로 왕따에 동참하지는 않았지만 상황을 알면서도 방관했던 저 역시 죄인이지요.


예나 지금이나 별로 주먹 쓰는 걸 좋아하는 취향은 아니지만
 
동네 노는 형들하고-그래봤자 중3인 꼬꼬마들- 조금 친했던 터라

평소엔 대화조차 나누지 않았던 이 친구를 몇 번 위기에서 구해준 적이 있었더랬죠.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던 어느 여름 날, 이 친구가 자기 생일이라며 집으로 초대를 했습니다.

그 친구와 저 그리고 그 친구의 동생. 이렇게 셋 뿐인 초졸한 생일 파티였습니다.


그 친구의 어머니께서 차려주신 푸짐한 음식들을 먹고 나니,

평소 친분이 있었던 것도 아니라 대화는 금새 단절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데, 그 친구가 좀 더 놀다가라고 저를 잡더군요.


그렇게 해서 우연히 그 녀석 방의 책장에 가지런히 꽂힌 김용의 <영웅문> 3부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1권을 읽고...그 녀석에게 영웅문 3부작을 통째로 빌렸습니다. 3일간 식음을 전폐하고 영웅문에 몰입했습니다. 읽고 또 읽고...

저는 그 녀석에게 빌린 책을 돌려주어야한다는 생각도 못한 채 그렇게 여름 방학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뉴스에서 낯 익은 이름을 발견했습니다.


집 근처의 군부대 훈련장이 있던 야트막한 산으로 동생과 함께 놀러 갔던 그 녀석은...

불발된 수류탄이 터지는 바람에 동생과 함께 그 자리에서 사망했습니다. 



책은 아직도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후로 단 한번도 꺼내보지 않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