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뻘글/책] 책 읽는 남자의 책을 읽는 남자가 전하는 책 읽는 이야기
- 작성일
- 08-12-07 01:08
0.
<피가 되고 살이 되는 500권, 피도 살도 안되는 100권>은 다치바나 다카시가 주간 문예춘추에 연재해온 ‘나의 독서일기’를 엮은 3부작 중 하나로,
2001년 3월에서 2006년 11월까지의 연재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1부와 2부로 나뉘는데, 1부는 고양이빌딩을 답사하며 독서이력를 소
개하는 대용이고, 2부는 서평(모두 약230권)을 모은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다치바나 다카시의 거대한 서재이자 작업공간으로 유명한 '고양이 빌딩'을 한 번 살펴보시죠.
이 책의 1부에는 문예춘추, 문학편식, 세계논픽션 전집 50권 완독과 세계 최악의 여행, 방랑하는 호수, 콘티키 호의 모험 등 재밌는 이야기들이 많
지만, 그 중에서 고양이 빌딩을 한 바퀴 돌며 진행한 인터뷰는 단연 압권입니다. 인터뷰어가 어떤 책을 지적하면, 그 책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과
더불어 언제, 어떤 맥락에서 읽었고, 그 과정에 대해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막힘없이 풀어내는 그의 모습은 감탄을 자아냅니다.
다치바나 다카시가 말하길, 그의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까지 약 10여년은 자기인생의 공백기이자 지적 체력을 단련하는 기간이었습니다. 그리
고 그 기간 동안 읽었던 책들이 오늘의 자신을 형성하는 자양분이 되었다고 그는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에게 영향을 준 인물로 러시아의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종교사상가인 베르자예프와 18세기 이탈리아의 철학자 비코를 꼽습니다.
책의 후반부라 할 수 있는 2부는 그가 읽은 약 이백여권의 책에 대한 평으로 이뤄집니다. 2부에서 특히 주목할 점이라면, 다독이 생활인 그가 책
을 고르는 방식입니다. 2001년에서 2005년까지의 신간들을 소개하는데 그 시기의 책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이점이 있습니다. 주로 일본어로
된 책으로, 대부분 번역이 안 된 것들이라 일본어엔 까막눈인 저는 그 책들을 직접 읽어볼 수 없다는 점이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1.
다치바다 다카시의 다른 책들을 읽으며 느꼈던 그의 독서론에 대해 몇 자 적어봅니다. ‘독서는 인간의 본성’이라고 말하는 그는 책을 읽는 목적을
순수한 지적욕구와 실용적 목적으로 나누는데, 실용적 목적을 통한 책 읽기를 강조하는 편입니다. 단적인 예로 그는 '픽션'은 읽지 않는다는 나름
의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_- 하지만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를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만도 않습니다.
동경대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을 엮은 책인 <뇌를 단련하다>를 보면 스무 살에 배워야 할 것들로 다음과 같은 것을 듭니다.
- 취업 걱정 대신 교양을 쌓아라.
- 유급을 해서라도 넓고 긴 안목을 키우는 데 투자하라.
- 자기 뇌는 스스로 만들어라.
- 모르면 더욱 읽어라.
- 권위를 의심하라. 활자로 된 것이라고 무턱대고 믿지 말 것이며 권위 있는 교수나 전문가의 말이라도 전적으로 믿어서는 안 된다.
- 자기 유형을 찾아내라.
- 사전을 통째 읽어보라. 이는 기본개념을 익히기 위한 좋은 방법이다.
또한 그는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에서 교양을 쌓는 방법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 조사하고 작성하는 것이 교양의 기본.
- 인류의 지적 재산 목록을 만들라. 독서계획을 세우는 것 등이 이에 해당한다.
- 지적 세계의 지도를 입수하는 것이 교양의 첫 걸음
- 10만권 이상 소장 대형 서점의 서가에 있는 모든 책의 제목을 읽어보며 교양수준을 측정하라 자신의 교양이 어느 수준인지 알 수 있다.
- 일간신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읽고 이해할 수 있어야 현대의 교양인이다.
- 교양의 핵심은 뇌과학, 생명과학, 정보학.
- 발상력과 문제발견 능력, 거짓과 오류를 발견하기 위한 허위론·오류론·궤변론, 사회적 음지를 이해하고 대응할 수 있는 능력,
미디어 트레이닝과 커뮤니케이터로서의 능력, 영어 메일 능력, 정보 수집 평가 이용술, 콘텐츠를 만드는 능력,
계획을 세우고 수행할 수 있는 능력, 팀을 만들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은 필수.
- 대학의 시대는 끝났다.
- 자신의 지식여행 지도를 만들라.
그렇다면 무엇을 읽어야 하는가를 살펴보면, 그에 따르면 '고전=좋은 책'이라는 등식은 유효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고전이 좋은 책은 아니라는
말은 고전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부분부정으로 꼭 좋지 않으나 좋은 책도 많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칸트, 헤겔, 뉴턴, 사르트르 등은 고
전이 아니며 책의 시효도 다했다고 주장하면서 전문 연구자 외에는 읽을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최근 몇 십 년 내의 명저도 찾아 읽을
필요는 없다고 이야기하면서 신간 전문서를 읽으라고 권합니다.
다음으로 그가 권하는 책을 읽는 방법에 관해 살펴보면, 우선 책읽기는 순차적으로
- 글 전체를 통독하는 ‘음악적 책읽기’와 전체에서 필요한 부분을 찾아 읽는 ‘회화적 책읽기’로 구분.
많은 양의 글을 읽기 위해서는 ‘회화적 책읽기’의 속독법이 필요.
- 책을 꽂이에 꽂지 말고 책상 위에 쌓아놓을 것.
- 책은 좀 험하게 다루되 읽을 때 메모는 하지 말 것. 책을 읽으며 메모를 하는 것보다 그 시간에 다섯 권의 책을 더 읽는 게 낫다.
- 조금 읽어보다 시시하면 그 책은 던져버려라. 책을 꼭 다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벗어나자.
- 자신의 수준에 맞지 않는 책은 무리해서 읽지 말라.
- 읽다가 그만 둔 책이라도 일단 끝까지 넘겨보며 책의 소제목이라도 훑어보라.
- 주석을 빠뜨리지 말고 읽어라.
- 끊임없이 의심하라.
- 새로운 정보는 꼼꼼히 체크하라
- 의문이 생기면 원본자료로 확인하라.
- 난해한 번역서는 오역을 의심하라.
그렇다고 해서 다치바나 다카시의 방법을 꼭 권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분이야 보통 사람들과 다른 수준의 책읽기에 관한한 '달인'이므로 무리하
게 따라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으론 뱁새가 황새 쫓아가려다 가랑이 찢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더군다나 다치바나 다카시는 '픽션
은 잃지 않아!'라고 말할 정도로 주로 실용서들을 읽기 때문에 문학은 책읽기 분야에서 외면하곤 하는데 별로 바람직한 태도는 아닙니다. 무엇
보다 자신에게 맞는 독서법을 스스로 찾는 것이 제일 좋겠지요.
2.
그럼 오늘도 적절한 요약으로 마치겠습니다. 다치바나 다카시가 전하는 실전 독서법은,
- 책을 사는 데 돈을 아끼지 말라. 책 한권에 들어 있는 정보를 다른 방법을 통해 얻으려고 한다면 그 몇십배, 몇백배의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이다.
- 같은 주제의 책을 여러 권 찾아 읽어라. 관련서를 읽고 나야 비로소 책의 장점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과정을 통해 그 주제에 관련된 탄탄한 밑그림을 그릴 수 있다.
- 책 선택에 대한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 선택의 실패도 선택 능력을 키우기 위한 수업료로 생각한다면 결코 비싼 것이 아니다.
- 자신의 수준에 맞지 않는 책은 무리해서 읽지 말라. 수준이 너무 낮은 책이든, 너무 높은 책이든 그것을 읽는 것은 시간 낭비다.
- 읽다가 그만둔 책이라도 일단 끝까지 넘겨보라. 의외의 발견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 속독법을 몸에 익혀라. 가능한 한 짧은 시간에 가능한 한 많은 자료를 섭렵하기 위해서는 속독법밖에 없다.
- 책을 읽는 도중에 메모하지 말라. 메모를 하면서 책 한권을 읽는 사이에 다섯권의 관련 서적을 읽을 수 있다.
- 남의 의견이나 가이드북에 현혹되지 말라.
- 주석을 빠뜨리지 말고 읽어라. 주석에는 때때로 본문 이상의 정보가 실려 있기도 하다.
- 책을 읽을 때는 끊임없이 의심하라. 활자로 된 것은 모두 그럴듯하게 보이는 경우가 많지만, 좋은 평가를 받은 책이라도 거짓이나 엉터리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 새로운 정보는 꼼꼼히 체크하라. ‘아니, 어떻게?’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발견하면 지은이가 어떻게 그런 정보를 얻었는지, 또 지은이의 판단 근거는 어디에 있는지 숙고해보라. 이런 내용이 정확하지 않을 경우 그 정보는 엉터리일 확률이 아주 높다.
- 의문이 생기면 원본 자료로 확인하라.
- 난해한 번역서는 오역을 의심하라. 번역서는 오역이나 나쁜 번역이 생각 이상으로 많다.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머리가 나쁘다고 자책하지 말고 우선 오역이 아닌지 의심해보라.
- 대학에서 얻은 지식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사회인이 되어서 축적한 지식의 양과 질, 특히 20∼30대의 지식은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중요한 것이다. 젊은 시절에 다른 것은 몰라도 책 읽을 시간만은 꼭 만들어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