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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근무처에 도착하니 책상에 택배로 온 책이 묵묵히 올려져 있다. 여러 책들 틈에서 내가 제일 먼저 반갑게 집어 든 건 김혜리의 세번째 책 <영화를 멈추다>였다.

김혜리라는 사람은 영화에 관심이 있는 분은 다들 아시겠지만 <씨네21>의 기자다. 기자라고 해서 그냥 기자가 아니라 아마 그 잡지가 처음 만들어졌을때부터 지금까지 기자였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이 잡지 기자 생활이 고달퍼 그만두거나 혹은 영화관에 뛰어 들어도 그녀는 묵묵히 그대로다. 나침반 한쪽 끝이 언제나 북쪽을 가르키듯 그녀는 그곳에서 언제나 글을 쓰고 있다.

내가 처음 그녀의 글을 눈여겨 읽은 것은 선물로 받은 <영화야 미안해>라는 책부터였다.  책갈피를 하나씩 넘겨가면서 이 사람 참 감수성이 예민하다'라고 탄식을 했다. 솔직히 내 타입의 글은 아니다. 나는 영화 평론집은 정말 세밀하여 개미의 발자국까지도 다 추적할만한 그런 글들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의다.

그런데 그녀의 글은 지나치게 감수성이 깊다. 그런데 이게 또 묘한 매력이 있다. 이성의 그물로 잡지 못한 물고기들을 그녀는 손으로, 기도하듯 두 손을 모아 그물 망에서 빠져 나간 물고기들을 잡아 올리는 것이다. 그래서 참으로 묘한 감촉과 비릿한 내음이 그녀의 글에 묻어 있다.

두번째로 본 것은 <그녀에게 말하다>라는 인터뷰집이다. 영화배우, 작가, 전직 장관, 문화 평론가 등을 만나면서 진행된 이 인터뷰도 참으로 묘하다. 그건 말 잘하는 인터뷰어가 아니라 듣기를 좋아하는, 그리고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있는 인터뷰어의 기록이기 때문에 인터뷰가 살아있다. 여름철의 종소리와 같은 그런 울림이 이 책에는 녹아있다.

오늘 내가 택배로 받은 <영화를 멈추다>는 책은130여쪽의 얇은 책이다. 우리 영화 서른 편 중 서른 개의 명장면에 대해 그녀가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영화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그 영화를 멈추어 두고 그 장면이 그 영화에 대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 특유의 감수성으로 짚어 낸다. 그것이 재밌다.

내가 알기로 영화에 대해 글을 쓰는 사람이 가져야 할 능력은 두 가지이다. 영화를 아직 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그 글을 읽고 그 영화를 보도록 만드는 것이며, 영화를 이미 본 사람에게는 그 글을 읽고 여운을 오랫동안 간직하게 하는 것.

김헤리의 글이 정말 그런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