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세상은 온통 소리로 가득 차 있다.
규칙적이든 불규칙적이든 자연적이든 인공적이든 우리의 세계는 소리를 뿜어내고 또한 그 소리에 갇혀진다.
살아있다는 증명 내지는 존재하고 있다는 증명을 가장 확연하게 해주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소리다.

소리는 또한 관계를 만든다. 존재와 존재 사이를 차단한 투명한 공간을 뚫는 그 공기의 진동은 상호를
인식시키며 동시에 둘의 교집합을 생성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공명하지 않는 일방적인 소리는 존재와
존재 사이를 격한 공간속에서 끊임없이 소멸해 갈 뿐이다. 결국 관계를 맺지 못하는 음원으로서의 개체는
존재 하지 않는 것이 되고 만다.

영화 애정만세는 소리에 대한 고찰이다. 동시에 존재에 대한 외로움의 자각이다. 그리고 관계를 통해
실존으로 매듭지어지고자 하는 열망의 외침이다. 납골당 외판원인 남자 A와 보따리 무역을 하는 남자 B
그리고 부동산 중계를 하는 여자A. 그들 또한 하루 내내 수많은 소리를 만들며 산다. 시끄러운 오토바이를
끌고 다니며 떠들석한 심야의 난장에서 싸구려 옷을 팔고 씩씩한 목소리로 집을 소개한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 속에서 같이 소리를 만들어 가고 있을 땐 그것이 주변과 공명하든 안하든 상관이 없다.
소음속에 묻혀 있음으로 해서 관계를 맺지 못하는 그의 소리가, 그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공간속에 홀로 놓여질 때 그들은 적나라하게 발가벗겨진다. 사소한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조그만 소리가 너무도 고통스럽게 그의 부재를 일깨운다. 옷 벗는 소리, 샤워를 끝낸 후 잠근 수도 꼭지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 몸을 뒤척일 때 마다 삐그덕 거리는 침대 소리. 그 모든 소리들이 번득이는 비수가
되어 그의 존재를 갈가리 찢어 해체 한다.

"너는 존재하지 않아!"

때론 열쇠로 문을 여는 소리, 계단을 오르는 소리, 섹스중의 거친 숨소리와 격한 몸부림에 비명을 지르는
침대 스프링 소리가 그에게 부딪혀 오지만 그것들은 견고한 공간을 허물지 못한다. 스스로 공명하고자
그래서 관계를 맺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소리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생존의 방법을 잊어버린 것이다.

도시속에 사는 그들은 모두 그렇다. 그들은 결코 도시속에 편입해 들어가지 못한다. 서로 관계를 맺지 못하는
그래서 그 속에 끼어들어가지 못하는 그러한 개체들이 모여 만든 것이 바로 도시이기 때문이다. 그 속에는
유대도 없으며 소통도 없다. 다만 결코 뚫리지 않는 엷은 공간의 막으로 둘러 싸인 채 밀집해 있을 뿐이다.

그러니 외롭지 않을 수 없다. 존재이나 실존하지 않으니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오직 지쳐가다 발악하듯
더 큰 소리를 만들어 본다. 관계를 엮어보고자 공명해보고자 계속해서 전화를 해보고 수박을 굴려 깨트려보고
꺼억꺼억 울어도 본다.

하지만 진정한 의 지는 없다. 상대는 전화를 끊을 것이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굴러가서 터지는 수박의 소리와
젖은 얼굴을 들어 한번 둘러 보지도 않는 울음은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
누구와도 공명하지 않는다. 절박하지만 관계를 맺는 법 즉 살아가는 법을 잊어버린 그들은 그렇게 점점
엷어져만 가서 공간속에서 꺼트려져 버릴 것이다. 
 
                                                                                                                                       ... zz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