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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후 전화 한통이 걸려왔습니다.
 
"기자님. 오늘 덕수궁 앞에서 촛불 산책 있는데요. 경찰이 지난 주처럼 못하게 할 것 같아요.
혹시 모르니까 취재좀 와주시면 안돼요?"
 
한 이름 모를 촛불 시민으로부터의 전화였습니다.
경찰이 어떻게 한다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할지도 모르니 와달라는 이 부탁.
사실 처음엔 부담스러웠습니다.
 
경찰이 촛불들고 10m 씩 떨어져서 산책하는 시민들조차도 연행하고 산책을 못하게 막는다는 건 (실정법 위반가능성이 있기에) 분명 기삿감이지만, 그렇다고 오늘 (경찰이) 그렇게 한다는 것도 아니고, 그럴지도 모르기때문에 제 크리스마스 이브를 온전히 반납하고 현장에 나간다는 건, 사실 내키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저도 사람이니 쉴 땐 쉬고 싶었죠.
 
꾀를 좀 부렸습니다.
남대문서 정보계에 전화를 했습니다.
 
"한겨렙니다. 오늘 시민들이 촛불 산책 하는 거 막을거에요, 안막을거에요?"
"글쎄요. 현장 상황을 봐야죠."
"지난 주엔 막았잖아요."
"이번 주도 현장 상황을 보고 판단할 겁니다."
 
명확하게 답을 안해주더군요.
대체 경찰은 인도에서 촛불 들고 걸어가는 사람들까지 왜 막으려해서 기자들 집에도 못가게 만드는지,
무지 원망스러웠습니다.
 여기서부터 저의 로멘틱한 크리스마스 이브는 조금씩 어그러지기 시작합니다.

하는 수 없이 전 오후 8시까지 덕수궁 앞으로 나갔습니다.
카메라 하나를 챙겨서 말이죠.
시민 오십여명이 모여있더군요.
이윽고 각자 촛불 하나씩 들고 10m씩 거리를 두고 산책을 시작하셨습니다.
초에 불 켜주는 어떤 분이 "원래 백명 정도씩 나오는데 오늘은 시민들이 서울시교육청으로 많이 가서 50여명 정도만 모인 것 같다"고 설명해주었습니다.
 
경찰을 살펴보았습니다.
사복경찰들 30여명이 웅성웅성 모여 있고, 남대문서 형사들이 무전기 들고 왔다갔다 하더군요.
한데, 경찰은 오늘 시민들의 촛불산책에 별다른 훼방을 놓지는 않았습니다.
저로선 다소 허탈할 수도 있었지만 쨌든, 다행이었죠.
 
집에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케이크 상자를 든 한 20대 여성분이 시청앞으로 걸음을 옮기더군요.
 
"어디 가시는 거에요?"
"매일 시청앞 광장에 촛불을 밝히고 있는 아저씨가 한분 계신데요. 오늘 크리스마스 이브라 케익을 드려야 해요."
 
'아직도 시청 앞에서 촛불을 들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어그러지기 시작했던 크리스마스 이브가 인상깊은 크리스마스 이브로 바뀌기 시작할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분을 따라가보았습니다.
(서두가 너무 길었습니다. -.-)
 
.
.
그 분의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한 말끔한 아저씨가 공사중인 시청 정문 앞 잔디 밭에 앉아 외롭게 촛불 하나를 들고 계셨습니다.
 
"아니, 아저씨는 언제부터 여기서 촛불을 들고 계셨던 거에요?"
"7월달부터 주욱 이곳에서 촛불을 들고 있습니다."
"이제 촛불시위도 안하는데요?"
"그래도 시청 앞은 상징적인 공간이잖아요. 여길 지키고 싶어요."
 
알고봤더니, 이 분, 촛불 시민들 사이에는 은근히 알려져 있는 분이었습니다.
하루도 거르는 날 없이 저녁 7시부터 12시까지 시청앞에서 촛불을 들고 계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분 굉장히 말끔하게 잘 생기셨습니다.
호기심이 발동해 이런 저런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죄송한데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39입니다."
"직업은 없으세요?"
"변호사 사무실 사무관 하다가 그만두고 이거 하고 있습니다."
"집에서 뭐라고 안해요?"
"결혼을 안해서 괜찮아요."
"왜 이렇게 계속 촛불을 들고 계시는 건가요?"
"검역주권 문제도 그렇고, 대운하니, 언론장악이니, 해결해야 될 문제가 한 두개가 아니잖아요."
 
이 분은 촛불을 듦으로써 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굳게 믿고 계신 듯 했습니다.
 
시간이 좀 흘러서 밤 9시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시민들이 하나 둘 늘기 시작합니다.
어느새 한 십여분 정도의 시민들이 이 분 옆에 앉아 있습니다. 
40대 아주머니, 50대 아주머니, 30대 아저씨, 20대 예비군 등등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약간 친분이 있어 뵈기에, '원래 아는 사이냐'고 물었더니 시청앞에서 이렇게 촛불 들다 만난 인연들이라고 했습니다.
연락을 해서 만나는 건 아니고, 그냥 여기서 우연히 보면 보는 거고, 안보이면 그런가보다 하는 사이들이라고 했습니다. 


40대 아주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아주머니, 이 밤에 여기 나오시면 부군께서 뭐라고 안하세요?"
"밥 차려주고 나오니까 괜찮아요. 그냥 적당히만 하고 오래요."
 
옆에 있던 50대 아주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아주머니는 왜 나오셨어요?"
"이웃을 잘못 만나서 그래요."
알고 봤더니 40대 아주머니의 동네 이웃이었습니다.
 
두툼한 점퍼를 입고 있던 30대 아저씨에게 물었습니다.
"여기 왜 나오셨어요?"
"미안해서요. 이렇게 촛불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머릿수라도 하나 채워주려구요."
"어디서 오셨어요?"
"남양주요."
"헉" -.-
 
20대 예비군에게 물었습니다.
"여기 왜 나왔어요?"
"원래 매일 프레스센터 앞에서 예비군들이 촛불을 들어요. 오늘은 거기 갔다가 여기 잠시 들렀어요."
"아니, 아직도 예비군들이 나오고 있었어요?"
"네."
"직장은 마치고 온거에요?"
"네. 직장 마치고 시간 내서 가끔씩 와요."
"촛불은 왜 드시는 거에요?"
"촛불이 절 변화시켰어요. 전 원래 인력업체에서 일했었어요. 소위 용역깡패라고 하는 사람이었죠.
 올해 초 겨울에 여의도에서 용역 직원들이 코스콤 농성장 강제로 철거한 적 있잖아요? 그 업체에 제가 있었어요.
 기자님, 그 때 그 현장에 계셨죠?"
"네."
"그 때 기자님 얻어 맞는 거 다 봤어요." (네. 그 때 저 취재하다 용역들한테 얻어맞았었습니다. -.-)
"그래요?"
"그게 얼마나 나쁜 직업이었는지 이번 촛불시위 하면서 알게 됐어요. 그래서 이젠 주물공장에서 일해요."
 
.
.
 
제 각각 사연은 다르지만 이렇게 이분들은 여전히 촛불을 밝히고 계셨습니다.
시청 앞, 청계광장 근처, 와이티엔 앞, 국회 앞, 명동 등등에서요.
전 처음에는 무슨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조직한 건가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습니다.
그냥 평범한 동네 아주머니, 아저씨,  직장인들이었습니다.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젠 기자들도 촛불시위 하는 시민들에 더 이상 주목하지 않습니다. 지루한 아이템이 되어가고 있거든요.
경찰은 수시로 시민들을 연행하고, 검찰은 벌금을 부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대체 이 평범한 아주머니, 아저씨, 청년들은 왜 줄기차게 촛불을 들고 있을까요. 
 
 
한 아주머니는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모르겠어요. 그냥 촛불에 중독된 거 같아요. 난 그 뿐이에요."
 
.
.
 
수만개의 촛불은 꺼졌지만 이렇게 촛불은 다양한 형태로 그 불씨를 살려가고 있었습니다. 
누군가에겐 아쉬움으로,
누군가에겐 부채감으로,
누군가에겐 중독으로,
누군가에겐 희망으로,
 
그렇게요...
 
이분들과 대화하다가 어찌저찌 한 두시간 같이 촛불을 들다가 크리스마스 이브를 몽땅 보내고 집에 들어왔네요.
촛불 불면서 케익도 하나 잘라 먹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가 로멘틱하게 흘러가진 않았지만 이렇게 낯선 분들과 추위에 떨며 보낸 것도 썩 나쁘지 않은 추억이 될 듯 합니다.

둘러 앉아서 케익을 앞에 두고 찰칵! 맨 오른쪽 아저씨가 매일 시청앞 광장을 지키고 있는 촛불 시민입니다. 
   
 

 
2008년 아기 예수가 다시 탄생했다면 어떨까요. 
미국산 쇠고기 염려에 성모 마리아께서도 촛불들고 시청앞 광장에 나오시지 않았을까요.

#참. 시청앞 광장에서 케익 잘라 먹는데, 경찰들이 덕수궁 앞에서 한 시민을 또 연행해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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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우리나라 희망이 있네요. 아자~~ 힘내요~~ 이제 정말 시작이네요.
내일부터 언론노조 파업으로 큰 싸움이 시작되는거 같네요. ^^ 기다려라 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