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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정체성 문제는 문명이 계속되는 한, 언제나 인류의 숙제로 남겠지요. 개인 사이라면 연애의 문제로 남아 오늘도 여러 청춘 남녀의 머리를 쥐어 짤 테고, 집단 사이라면 권력의 문제로 비화되어 첨예한 갈등을 양산할 겁니다. 가장 사적인 영역이자 가장 사회적인 영역이라는 이중의 모순이 아웅다웅 한다고 할까요. 이 문제를 다뤘던 사례는 무궁무진하겠죠. 가장 극단적인 경우가 해러웨이일 텐데, 그녀는 기술로 성정체성을 아예 해소할 것을 주장합니다. 간단히 말해서,무성적이고 중성적인 존재가 대안이라는 얘기겠죠. SF 영화나 소설에서 곧잘 등장하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존재가 미래의 인간형으로 등장하는 경우를 생각하면 쉬울 겁니다.

아마 범죄물만큼 남성에게 비치는 여성의 존재를 뚜렷하게 보여주는 장르는 없을 듯 합니다. 여기서 여성의 존재는 남성에게 수수께끼 사건과 동일시 되죠. 해결사인 탐정/남성이 수수께끼인 사건/여성을 풀어가는 이야기는 범죄물의 기본적인 구조랍니다. 사건이나 여성이나 불가해한 존재란 것이죠. 그러면 여성의 시각에서 보면 어떤 세계가 드러날까요. 르 귄은 전부는 아니겠지만 명확한 실마리를 보여줍니다. 그녀의 대표작 <어둠의 왼손>이 어느 정도 답변을 해주죠.

대략 줄거리는 이렇답니다. 태양계를 중심으로 하는 우주 연합국 시대가 들어선 어느 날, 연합국 대사 한 명이 미지의 행성에 파견됩니다. 우주 연합국의 외교 방침은 전쟁을 피하고, 민간 대사를 파견하여 말 그대로 대화의 외교를 수행하여, 행성의 문명을 간섭하지 않고 자율성을 보장하되, 같은 질서에 들여오는 방식이죠. 매우 섬세하고 훌륭한 태도가 아닐 수 없죠. 제국주의가 하는 것처럼, 목사를 보내고 상인을 보내고 나서 총칼로 무력 점령하지 않으니까요.

흥미롭게 주인공 외교관은 흑인입니다. 이 주인공이 자신이 겪었던 생활상을 독백하듯이 토로하면서 소설이 전개되죠.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가 도착한 행성의 주민들의 성입니다. 이곳 주민은 성이 하나가 아니랍니다. 남성도 될 수 있고 여성도 될 수 있죠. 그런데 그들이 자신의 성을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랍니다. 쌍방의 두 존재가 연애의 감정이 들 때, 그 관계의 성격에 따라 성이 결정됩니다. 정말 흥미롭죠. 자신이 느꼈던 감정에 따라 성이 결정된다니. 흑인 외교관이 당황하고 이해하기 힘든 것은 당연한 일이겠죠.

르 귄은 이처럼 소수자에 서로 다른 존재의 이야기를 탁월하게 조율하는 작가입니다. 그녀의 다른 소설을 봐도, 언제나 나와 다른 존재와 어떻게 만나고 말하고 관계를 만들지 고민하죠. 그것이 사람 사이의 관계인 경우도 있고, 사회 이념 사이의 관계인 경우도 있습니다. 그녀의 <빼앗긴 자들>은 후자의 사례로, 무정부주의 행성과 자본주의 행성의 관계를 풀어낸 수작이죠.

나와 다른 것 때문에 고민하는 분들이라면, 그녀의 소설은 '다른 식'으로 고민할 좋은 사례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