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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가 벌어진 지 보름이 넘었다. 그간 사태의 근본적 원인을 둘러싸고 꽤 치열한 논의가 진행되었고, 현 정권의 폭압적인 진압을 규탄하는 소리가 줄을 이었다. 그런가 하면 철거민들을 ‘테러범’으로 모는 엉뚱한 작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필자는 이번 사태의 전개를 지켜보면서 참으로 이 정권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절감한다.

백성을 잠재적 폭도로 여겨

그것은 한마디로 현 정권의 담당자들이 국민을 적으로 보는 ‘폭민관(暴民觀)’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철거민들을 작전의 대상으로 삼아 토벌을 벌이고, 정부가 기득권 세력의 앞잡이로 행세하면서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개의치 않는다. 이는 ‘독재로의 회귀’나 ‘민간 파시즘’ 정도의 차원을 훨씬 넘는,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을 넘어 국가 자체의 존재성을 정면으로 외면하는 ‘폭력’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위정자들의 폭민관은 유구한 역사를 갖는다. 우선 전통시대의 권력자들은 예외 없이 백성을 잠재적인 폭도로 여겼다. 동양 유학의 ‘덕치론’조차 백성을 위하는 정치는 추구하지만 백성을 주인으로 보지 않는다. ‘치자(治者)’의 입장에서 보면, 백성은 자칫 ‘폭민’이 될지도 모를 통치의 대상일 뿐이다. 사실 통치의 대상이 나라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발상은 그 자체가 결코 범상한 것이 아니어서 그것을 이론적으로 최초로 정식화한 루소의 ‘일반의지’는 오늘날까지도 난해한 개념으로 남아 있다.

폭민관과 관련하여 우리의 현대사는 남다른 역사를 갖는다. 세 단계의 변화 내지 층위를 설정할 수 있다. 하나는 일제의 ‘치안유지법’이다. 보통선거제의 도입과 함께 제정되었음은 그 ‘폭민성’을 입증해준다. 주로 좌익 제거, 신흥종교 단속, 독립운동 탄압에 악용되었다. 다른 하나는 이승만 정권에서 만들어져 오늘날까지도 살아 있는 ‘국가보안법’이다. 이것이 ‘치안유지법’을 계승한 증보판일 뿐만 아니라 특별법으로서 ‘형법’의 제정보다 시기적으로 앞섰음은 이승만 정권의 폭압성을 말해준다. 그것이 아직 살아 있음은 ‘자유민주주의’의 허구성을 입증해준다.

마지막으로 현 정권의 폭민관이다. 그것은 앞의 선배들의 그것과는 여러 점에서 다르다. 우선 그것은 민주화의 경험을 일정하게 반영한다. 현 정권은 국권을 침탈한 외세나 군사독재가 아니라 선거를 통해 집권했다는 정통성을 갖는다. 하지만 목하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제정을 추진하고 있는 일련의 ‘MB 악법들’은 제3의 폭민관의 그릇이자 실행도구가 될 가능성이 짙다. 그것들은 대부분 언론 및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경제민주화에 역행하고 사회양극화를 조장하며, 국가통제를 강화하고 인권을 말살하려고 한다.

국가 존재성 외면하는 ‘폭력’

더욱 중요한 것은 현 정권의 폭민관이 두드러진 사회적 실체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 역시 민주화의 효과이다. 민주주의는 공공재라서 그 혜택을 사회 구성원 모두가 본다. 기실 민주화운동의 최대의 수혜자가 바로 재벌이니, 거대자본세력과 ‘강남’으로 대표되는 그 추종세력이 권력의 실질적인 주체이다. 오늘날 이들이 ‘국민’을 독점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폭민’이 되고 있다. 실로 그 어느 때보다도 ‘국민’과 ‘폭민’은 계급적 속성을 갖고 있다. ‘용산참사’의 처리와 악법강행의 추이는 현 정권의 일본 제국주의 및 군사독재의 후예 여부만이 아니라 그간 이룩한 민주화 성과의 후퇴 여부, 더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의 발전 전망을 가름하는 결정적인 분수령이 될 것이다.

<최갑수 서울대 교수·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