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값 쟁쟁한 타자들이 뭐에 홀리기라도 했는지 무수한 잔루만 남기며 0의 행진을 이어나갔지만
투수들은 달랐습니다. 철옹성이었죠. 정규이닝까지 네덜란드가 기록한 안타 수는 불과 2개.
5이닝 10삼진을 기록하며 WBC 한경기 최다 탈삼진 기록까지 갈아치운 우발도 히메네스의 퍼포먼스는
가히 산왕 정우성-신현철의 그것과 비견할만 했습니다.
도미니카가 패배한다?
쉽게 하기 힘든 상상이 현실이 될 때쯤, 역시 기적은 쉽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이야기 하는 것처럼
연장 10회에 들어 도미니카가 0의 행진에 마침표를 찍습니다. 만화처럼 멋진 장면은 분명 아니었지만.
하지만 네덜란드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실책으로 인한 어이없는 실점. 맥이 풀리고 절망에 빠지기 충분한 상황이었지만요.
역시 만화처럼 아주 멋진 장면은 아니었지만, 기어코 동점을 만들어내고 끝내기 득점을 얻어내는데까지 성공한 네덜란드.
순수한 희열에 들떠 서로를 얼싸안으며 기뻐하는 그들의 모습은
분명 여기 이 만화의 한장면보다 훨씬 극적이었고, 가슴 뭉클하더군요.
WBC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스포츠의 백미와 같은 오늘 경기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그 값어치를 다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눈물이 나려고 하더군요.
이상하게 왜 이리 야구만 보면 감상에 빠지게 되는지.
평소 풍부한 감수성과는 그리 가깝지 않은 사람인데도 말이죠.
p.s. 1차전 플레이볼 직전까지 도미니카 선수들의 마음가짐이 어땠는지는 알 도리가 없지만
오늘 경기에서만큼 도미니카 선수들의 투지는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귀하신 몸들의 안일한 플레이라고 말하기에 그들의 눈빛은 너무 뜨거웠으니까요.
그런만큼 생각하지 못했던 패배 이후 그들의 표정 역시 보고있기가 안쓰러울 정도더군요.
특히 페드로 마르티네스. 아직까지 불러주는 팀 하나 찾지 못하는 수모를 겪으며
이번 WBC를 명예회복의 장으로 여겼던 그이기에, 대회에 임하는 마음가짐은 남다를 수 밖에 없었죠.
하지만 그의 WBC는 허무하게도 오늘로 끝이 나고 말았네요.
넋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그라운드를 바라보던 그의 표정이라니...
WBC는 끝났지만 하루빨리 소속팀을 찾아서 메이저리그 무대 위에서 그의 피칭을 보여주기를 바랍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