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흑 흑 흑

집에 가고 있는 데, 졸고 있는 데, 전화가 와서 받으려고 보니까

제 옆자리에 머리가 하얀 진짜 할머니가 많은 짐을 세워놓고 서 계시더군요.

자리를 양보하려고 했더니 할머니께서 너무나 단호한 목소리로 '금방 내려요' 하시더라구요.

할아버지들과 달리 할머니들은 좋으면서 싫은척 하시는 경향이 있어서 한번 더 권했지요 자리에서 반쯤 일어나서.

그 할머니, 외모와는 전혀 다른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단호하게 싫다는 표시를 하시더라구요.

뭐 금방 내리시기도 한다고 하고, 할머니 말투도 단호하셔서 걍 자리에 앉아서 하던 졸기를 마저 하고 있는데,

제 앞에 서 계시던 낮술의 달인 '행인1' 아저씨께서 그 상황이 맘에 안 드신거죠

제 자리를 놓고 자기 맘대로 할머니에게 강권도 해 보시고, 혼자 궁시렁도 대보고, 살짝 술주정도 해 보셨지만 할머니가 너무 강경하신 겁니다.

먼거리에서도 느낄 수 있었던 아저씨의 쐬주냄새 포스에 눌려서 다시한번 할머니께 자리를 양보합니다.

할머니, 심하게 쿨하게 귀찮아 하십니다. 

왠지 한번 더 권했다가는 한대 얻어맞을것 같은 기분에 다시 눈을 감고 잠을 청합니다.

한참을 가다가 또다시 전화가 와서 눈을 뜨니
 
금방 내린다던 할머닌 열차가 약 30분을 더 달린 이후에도 여전히 그 자리에 서 계시고,

그 옆자리엔 새파랗게 젊은 제가 앉아서 전화를 받고 있고,

그 주변엔 싸가지 없는 저와는 달리,  동방예의지국에서 제대로 교육받고 자란 수많은 열혈 아저씨들이 계셨던 거죠.

신애리 계집애를 바라보는 똥줄타게 달리는 하늬의 눈빛을 하고 .

결국 천하에 싸가지없는 X는 내릴역이 멀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어나서 옆칸으로 이사를 가고,

진짜 할머니는 꽂꽂하게 서서 싸가지 없는 x 보다 더 멀리 가신 것 같고,

옆칸으로 이동하기 전에 슬쩍 보니 싸가지 없는 x 이 앉아 있던 자리는 빈 채로 아무도 안 앉아 있었다지요.





ps)  그 칸에 탔던 열혈 아저씨님들,

그 싸가지 없던 그 x 은 옆칸에서 결국 '예수를 믿지 않으면 티켓이 없어서 죽은 다음에 지옥에 떨어진다'형에 처해졌답니다.

그 x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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