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병) 자본주의의 노예가 된 빨갱이
- 작성일
- 11-11-10 10:58
인생의 목표 중에서 큰 줄기 하나가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는거예요.
이 세상 그 누가 돈 앞에서 자유롭나요..
단언하건데 그런 사람 아무도 없을걸요?
회사 창립기념일이래요.
울팀은 머슴부서라서 사람들한테 떡을 돌려야죠.
모종의 떡 업체로부터 떡을 수백통을 배송 받는데..
아나 떡이 도착하는 시간은 우리 대장님도 모르고 캡짱님도 모르고 오직 담당자인 나만 아는데
떡 도착 시간 정확하게 5분 전에 비서실에서 전화가 와요.
어떻게 알았을까.. 떡 시간을 누설 할 사람은 그럼 떡집 사장님 밖에 없는데
떡집 사장님이랑 비서실이랑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을까..
야뜬 사람들한테 본격적으로 나눠주기 전에 꼭대기층 킹왕짱님들 잡술거 미리 다 갖고 오라고요. 갖고 가야죠. 어명인데.
떡 상자를 들쳐 메고 엘레베타를 타는데 엘레베타 거울 닦는 용역분이랑 마주쳤어요.
저야 뭐 인사는 종니 잘 하고 다니니 이번에도 꾸벅 인사를 드리는데..
용역 아저씨 눈길은 떡통에서 떠날 줄을 모르는군요.
시루떡에서 아주 그냥 김이 무럭무럭 나고 있었거릉요..
"내일이 창립기념일이거릉요~ 그래서 떡 주문 했는데요.
이따가 용역실에도 갖다 드릴거에요~"
그제서야 용역 아저씨 얼굴에도 웃음 꽃이 피어납니다.
"아이구.. 우리 것도 주문했어요?"
그럼요. 당연하죠. 정규직 입만 입인가요.
회사의 설립일인데. 그 동안 굳은 일 중요하지 않은일들
묵묵히 다 해 주신 분들께 감사하는 의미로 떡 정도는 돌려야죠.
계약직 파견직 일용직 그 외 기타 등등 대장님이랑 캡짱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걍 죄다 떡 줄 인원에 포함했죠..
5명 앞에서 한 통씩 돌아가는건데..
사실 용역실 앞으로는 아주 조금 더 주문했거든요.
4명 앞에 한 통 꼴로;;
대장님 캡짱님 한테 들키면 혼나면 되죠 뭐.
자르겠어요 설마..
그렇게 기분 좋게 꼭대기층으로 올라갔는데요.
5인분 세트를 이분들은 한 사람 앞에 하나씩 달라네요.
쳇. 드려야죠. 달리 킹왕짱이겠어요.
그렇게 털레털레 사무실로 돌아왔는데요.
우리 대장님이 제가 만든 팀별 떡지급 리스트를 보시더만
"너 용역실 떡도 따로 주문했냐?"카네요..
그렇다고 하니 뭔가 말을 할려다 마네요.
그걸 보고 쪼르르 쫓아오신 우리 장군님은
용역실 떡은 제일 마지막에 주래요.
꼭대기 아닌 킹왕짱님들이 자기네들꺼 하나씩 집어가 버리면
다른 정규직들 줄게 부족해 진다고요.
흠. 킹왕짱 밑에 사람 있고 사람 밑에 떡 있고 그 떡 밑에 용역 있군요.
야뜬.
한참 떡을 나눠 주고 있는데 캡짱님이랑 대장님은 그저 떡이 꼭대기층에 제대로 올라갔는지만 궁금해 하시네요.
떡 바로 옆에서 용역아주머니가 쓰레기통을 비우고 계시건 말건..
뭐 어차피 용역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이니 떡 줬는지 안 줬는지도 신경 쓸 일이 없겠죠.
듣기로 킹왕짱쯤 되면 연봉이 단순히 억소리 나는 것도 아니고 으어어어억 한다던데.
저만 하더라도 요새는 꼴에 돈 좀 받는답시고 길에서 파는 오뎅은 쳐다도 안 보는데.
그 돈 받으면 까이꺼 떡 뭐 눈에도 안 들어올거 같은데..
혼자 집어간 5인분 떡 반 이상 남길거 같은데.
근데 용역들 실수령액은 최저임금보다 조금 더 많은거 같던데.
족발보다도 비싼 그 떡 용역 월급으로는 못 사먹을텐데.
우리는 한계비용이라는 개념을 모르는건지 아니면 알고도 무시하는건지 원.
그러던 중에 또 비서실에서 전화가 왔대요.
꼭대기층 킹왕짱 중 한 명인데, 떡이 맛있대요. (족발보다도 비싸다니깐)
가족들한테도 맛보여주고 싶은데, 굳어지기 전에 자택으로 퀵으로 쏴 달래요.
우리 캡짱님, 대장님, 장군님 다들 혀를 내 두르시는데..
별 수 있나요. 억울하면 킹왕짱이 되어야죠.
아니나 다를까 또 다른 킹왕짱들이 와서는 한개씩 집어가는 경우도 왕왕 생기던데..
다행스럽게도 여분 수량보다는 덜 집어가서 남은걸 죄다 용역실에 갖다 줄 수 있었어요.
아니나 다를까 떡 보고 제일 좋아라 하시는분들도 용역실분들이시더만요.
아, 창립기념식 행사 진행하는 일용직분들도 매우 좋아라 하셨죠.
뭐.. 누구도 잘못 한 사람은 없어요..
캡짱님 대장님 장군님은 킹왕짱들 챙기는게 일 이니까 응당 할 일을 열심히 한거죠.
그러다 보면 용역실에게는 무심해 질 수도 있는거고.
이런 부분은 사실 뉴비라서 좀 다른 시선을 가진 제가 메꿔야 하는거고.. 잘 한거죠.
저도 돈 마이 벌고 싶고 사회적으로 성공 하고 싶어요.
그렇게 아침 잠이 많은데도 새벽부터 기어 나가서 중국어 학원 다니고 있고
이런 저런 조건들 딱딱 안 맞으면 소개팅도 안 나가거든요.
사회적으로 성공할라면 분명히 앞으로 저한테 용역직들은 tiny insignificant detail이 될거고
제 후배들 중에 나름 생각 있는 인간이 있다면 지금의 저처럼 그런 제게 구역질 낼거고.
(대세는 깔때기)
사실 저는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어요.
왜냐면 제가 제일 먼저 떡 하나 챙겼거릉요.
그 떡 한 통 빼 오기 위해 팔아 먹은 비싸디 비싼 제 양심,
찹찹찹 맛나게 먹고 있는 여친느님을 보니 뭐 걍 아무 것도 아닌거다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