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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검찰의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당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을 맡았던 이인규 변호사가 9년 동안 다니던 로펌을 6월말 그만둔 것으로 확인됐다. 이 변호사는 로펌 퇴사와 동시에 갑작스럽게 해외로 나갈 준비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 안팎에선 이 변호사의 출국이 사실상 도피성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 변호사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관가(官街)의 주목을 받고 있다. 6월말 출범한 국가정보원 개혁발전위원회(국정원 개혁위)가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당시 이른바 ‘논두렁 시계’가 언론에 보도된 경위와 관련한 진상조사에 나서면서, 이 변호사는 다시 한 번 언론에 등장했다. 이 변호사는 2015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논두렁 시계의 출처로 국정원을 지목한 바 있다. 논두렁 시계 사건은 2009년 노 전 대통령 수사 당시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받은 명품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언론보도를 말한다. 뿐만 아니라 한 사정기관에서는 이 변호사의 의뢰인이자 고교 동문인 강남훈 홈앤쇼핑 대표와 관련한 각종 의혹들을 들여다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의원도 같은 의혹에 대해 홈앤쇼핑 관계자에게 물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변호사의 지인 중에선 그가 이미 출국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으나 8월11일 현재 출국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 변호사의 한 지인은 시사저널에 “현재 일본에 머물고 있으며 8월25일경 미국으로 건너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변호사의 서울 종로구 평창동 집에서는 장기간 사람이 드나들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흔적을 여럿 찾을 수 있다. 취재진은 이 변호사 집을 8월9일 아침 7시30분경을 비롯해 모두 8차례 방문했으나 전혀 인기척이 없었다. 초인종을 눌렀으나 집 안에선 누구도 응답하지 않았다. 이 변호사의 집 대문 안쪽에는 신문과 택배 등이 그대로 쌓여 있었고, 건물 옥상에 설치된 4대의 에어컨 실외기 역시 한여름 폭염에도 가동되지 않았다.

이 변호사 집 인근에 사는 주민들도 최근 이 변호사 가족을 보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 변호사 집 맞은편에 사는 한 주민은 “이 변호사 가족을 못 본 지 3주 정도 됐으며, 차량 2대도 움직이지 않은 지 오래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 역시 “매일 아침 기사가 와서 (이 변호사를) 픽업해 가기 때문에 종종 봤었는데, 한동안 안 보이고 집에 불도 꺼져 있어 해외에 나간 줄 알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또한 8월7일부터 이 변호사에게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았다. 출국 여부를 묻는 문자 메시지에도 답변을 보내오지 않았다.

이 변호사는 자신이 형사팀장으로 있던 법무법인 바른을 그만둘 당시 주변에 “이제 자녀가 있는 미국에서 좀 쉬고 싶다”며 출국 계획을 밝혔다고 한다. 법무법인 바른 관계자는 “60대가 돼서 좀 쉬겠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뭘 할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며 “출국 준비가 필요해 8월 중으로 나간다고 했으나 관광비자는 아닌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다른 대형 로펌 관계자는 “중수부장까지 지내고, 국내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대형 로펌의 형사팀장이 50대 후반에 돌연 사직서를 냈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며 “다른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했던 대검 중수부의 부장이었다. 이 변호사 밑에서 함께 수사했던 검사들이 홍만표 변호사와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었다. 이에 맞선 노 전 대통령 측 변호사가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이 변호사는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검찰을 그만두고 2009년 9월 법무법인 바른에 영입됐다. 당시 바른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을 변호했다.

이 변호사가 9년 가까이 다닌 바른을 그만둔 시점은 공교롭게도 국정원 개혁위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의 간접적 원인이 됐던 이른바 ‘논두렁 시계 사건’에 대해 진상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나선 즈음이다. 이 변호사는 2015년 2월 경향신문에 “‘논두렁 시계’ 언론보도는 국정원 주도로 이뤄진 것”이라고 말해 파문이 일었다. 국정원 개혁위는 최근 이 사건을 국정원 적폐 진상조사 1순위로 꼽은 바 있다. 이와 관련해 국정원 감찰실이 최근 이 변호사를 만났으나 별다른 이야기를 듣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변호사 주변에선 그의 출국 시도에 대해 최근 한 사정기관이 그의 고등학교 동문인 강남훈 홈앤쇼핑 대표와 관련된 각종 의혹에 이 변호사가 연루돼 있다는 의혹에 대해 내사에 나선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말도 파다하다. 이 사정기관은 강 대표가 홈앤쇼핑 마곡사옥 신축 시공사를 삼성물산으로 선정하는 과정에서 일었던 각종 의혹에 대해 들여다보고 있으며, 여기에 이 변호사가 연루됐다는 의혹도 같이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홈앤쇼핑은 이 변호사가 바른에 재직하는 동안 수십 건의 사건을 맡기며 거액의 수임료를 냈다.

이뿐만 아니라 이 변호사 밑에서 일하던 운전기사가 강 대표 운전기사로 옮기는 등 두 사람이 단순한 변호사와 의뢰인 관계를 뛰어넘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에는 강 대표가 이 변호사로부터 고가 골프채를 선물받은 일을 홈앤쇼핑 임직원들에게 자랑하다 내부에서 구설에 휘말리기도 했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중소기업청이 홈앤쇼핑 면세점 사업권 매각과 관련한 배임 의혹에 대해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다. 그런데 수사가 진행되지 않다가 최근에야 배당된 과정에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며 “홈앤쇼핑과 관련한 전반적 의혹에 대해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맞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