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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떤 영화가 좋은 영화일까?

작성일
12-06-12 22:17
글쓴이
퍼스나콘 알투디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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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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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세요?'라고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개인적 취향만 늘어 놓습니다. 그러다가 한수 가르쳐 준다는 식으로 하는 말이 '모든게 상대적이죠. 자신이 좋으면 좋은 거 아닌가요?'라고 되묻습니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왜 어떤 영화 평론가는 저렇게 지루한 작품을 걸작이라고 할까?', '왜 어떤 영화 책에서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에 하품만 나오는 영화들을 잔뜩 소개해놓았을까?' 어쩌면 사람을 골릴려고 괜한 소릴 하는 건가?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마음 속으로는 저 영화의 장점이라는 건 대충 알겠는데 그것을 말로 표현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갑갑함. 소위 말하는 걸작이라는 건 어떤 기준으로 평가해야 하는 것일까? 이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수 많은 세월 동안 별짓을 다 해봤습니다. 걸작이라고 불리는 영화들은 찾아지는 쪽쪽 다 봤으며, 주요 영화 관련 서적은 거의 다 읽었고, 소리를 완전히 없애고 영화를 보기도 했고, 역으로 소리만 들으면서 보기도 했으면, 시나리오를 찾아 읽어도 보고, 직접 영화상의 대사를 타이핑해서 내 나름의 시나리오를 만들기도 하고, 영화를 만들어 보기도 하고, 영화사의 순서대로 초창기 영화부터 보기도 했습니다. 영화를 전문적으로 비평하는 영화평론가들에게 그 영화의 비밀을 가르쳐 달라고 빌어도 봤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의문들... 그러다가 햇수로 4년전 쯤에 제가 평소 존경하는 영화평론가 H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어서 여쭈어 봤지요.
그 분의 답변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영화에 감동을 받으세요? 아마 탄탄한 스토리, 명확한 주제의식, 거기에 배우들의 폭풍같은 연기가 더해지면 눈물을 흘리며 감동을 받았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영화관에서 눈물을 흘리게 하는 영화들은 일단 의심을 해봅니다. 어떤 영화적 장치를 통해서 우리의 감정을 움직이게 했는지에 대해서 따져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동일한 반응을 이끌어내는 영화들은 관객의 동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생각할 여지를 주지않고 한 방향으로 몰아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그래서 그런 영화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1953년에 만들어진 자크 타티의 <윌로씨의 휴가>의 한 장면이 자신은 여지껏 본 수 많은 영화 중에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었다고 했습니다. 그 장면은 영화 속에서 스케치처럼 스쳐지나가는 장면입니다.








기저귀를 찬 꼬맹이가 자신과 형이 먹을 아이스크림을 사러 갑니다. 아이스크림을 두개 받아 든 이 꼬맹이는 둘 중 어느 것이 더 많은지를 알아보려고 자꾸 눈 대중을 합니다. 호텔 앞까지 왔을 때 문이 닫혀있어 손잡이를 비틀어 문을 열어야 합니다. 꼬맹이는 한 손에 아이스크림을 쥐고 손잡이를 비트는데 아이스크림이 떨어질 듯합니다. 문이 열릴 때까지 아이스크림은 아슬아슬하게 달려 있습니다. 문이 열리자 기적적으로 아이스크림은 떨어지지 않고 꼬맹이는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을 H 영화 평론가는 자신이 본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었다고 합니다. 저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게 어디서 약을 팔아~" 저도 그 영화를 봤지만 그런 사소한 장면을 두고 영화사상 명장면 운운하는게 과장되었다고 느낀거죠.

그러다가 (아래 글에도 나와 있듯이) 제가 자주 가는 카페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카페 츠자가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전공이 디자인이다보니 회화나 만화에 관심이 많았어요. 어느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이 회화를 회화답게 할까? 무엇이 사진을 사진답게, 무엇이 만화를 만화답게 할까라는 고민에 빠졌어요. 각각의 예술에는 거기에 가장 걸맞는 표현 양식이 있는 것 같아요. 어떤 경우에 저건 소설로 표현하는게 좋은데 왜 굳이 회화의 표현양식을 빌렸을까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4년전에 피식하고 웃어 넘겼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위에 스틸 컷으로 나와 있는 저 장면들은 영화, 즉 동영상으로 봐야 합니다. 저 장면에서 기묘한 균형이 만들어집니다. 꼬마가 호텔문을 열려고 하는 순간 아이스크림은 떨어질 듯 기울어집니다. 회화나 사진의 정지된 장면으로 표현하면 저 장면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습니다. 저 순간 아이스크림에는 지구의 중력이 느껴집니다. 우리는 움직이는 화면을 통해서만 그동안 잊고 있었던 지구의 중력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화만이 표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화의 위대한 평론가였던 앙드레 바쟁은 그런 시네마틱한 것을 이야기하려 했습니다.이야기를 통해 감동을 전하거나 심리묘사를 하는 방식은 소설을 통해서 더 잘 전달할 수 있습니다. 어떤 영화에서 영화 음악이 감동적이었다면 그것은 음악이 준 것이지 영화가 준 감동이 아닌 것입니다. 영화만이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시네마틱한 것이고 그런 것을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좋은 영화인 것입니다.

이런 말을 하면 '그럼 아무 영화에나 아이스크림이 떨어질 듯한 장면을 넣으면 다 걸작이냐?'라고 반문할 수 있을 겁니다. 저건 저 영화의 한 장면에 불과합니다. 저 영화 전체가 그런 시네마틱한 것의 잔치가 벌어집니다. 그래서 걸작인 것입니다.

영화의 아름다움을 어디서 느끼냐고 물으면, 수많은 영화 평론가들이 '바람이 불 때'라고 말합니다. 바람이라는 것은 동적인 것이고 쉽게 통제할 수 없는 자연적인 것입니다. 프랑스의 유명한 영화평론가 세르주 다네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에 나오는 바람이 궁금했습니다. '어떻게 사무라이가 복수를 위해 칼을 뽑을 때 그의 뒤로 분노를 표현하는 것같은 그런 바람이 기적처럼 만들어질가?' 그 비밀을 알기 위해 그는 비행기를 타고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영화를 촬영하고 있는 촬영장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존 포드 감독의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를 보면 짝사랑하던 여자가 결혼을 하고 교회 문을 나설 때,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와 그녀의 면사포를 살짝 흔들어 놓습니다. 그건 옛 사랑에게 손짓을 하고 떠나가는 여자의 심정을 너무나도 잘 표현한 것입니다. 바람이 만들어 놓은 이런 기적같은 연출을 두고 혹자는 존 포드 매직이라고 불렀습니다.

1928년에 만들어진 빅토르 쇠스트롬의 <바람>은 무성영화입니다. 그런데 영화 내도록 황무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얼마나 거대하고 무섭던지 영화가 끝난 뒤에는 귀에는 바람 소리가 나고 입에는 모래가 서걱거릴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홍상수 감독의 영화 <하하하>에서 우리에게 시네마틱한 즐거움을 준 것도 통영에서 불어오는 바람이었습니다.

통제할 수 없을 것 같은 자연의 움직임이 스크린을 채울 때, 그리고 그것을 감독이 표현해낼 수 있을 때 영화상의 기적같은 감동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움직임을 담을 수 있는 매체는 영화입니다. 이런 생각이 가능할 때 우리는 다른 눈으로 영화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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