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오늘 결전의 5차전을 앞두고...

네이버의 베어스 팬카페에서 선물받은 '두산베어스때문에 산다'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요.


지금까지 베어스의 역사를 돌아보며 추억에 잠기게 하는.. 그런 책인데..

제가 알고 있었다는 얘기도 있지만 몰랐던 얘기들도 많네요.



특히.. 82년 OB의 원년 우승...

박철순이 아픈 허리를 이끌고 뛰었고, 결국 우승과 허리를 맞바꿨다는 건 막연하게 알고 있었지만...



그 허리 부상이..

척추사이의 연골이 튀어나온.. 앉아있기조차 힘든 그런 심각한 부상이었다는 것도 몰랐고...


우승을 결정지은 82년 한국시리즈 마지막경기(6차전) 선발로 나온 박철순선수가..

경기장 뒤에 몰래 데려다놓은 응급차에서 경기중간중간 허리에 국소마취제 맞으며 통증을 이겨내며 완투를 한 것이었다는 사실도 몰랐고..



특히..

아직도 흔히 접할 수 있는 그 우승의 순간...

삼성타자가 친 타구가 크게 바운드를 튀기며 마운드 위로 날아갔고, 박철순선수가 점프했지만 잡지 못하고 주저앉았고,
달려나온 유지훤선수가 잡아 런닝쓰로우로 1루에 송구해 아웃 시키고,
그라운드위의 모든 선수가 마운드에 무릎꿇고 두 팔을 치켜들고 있던 박철순선수에게 달려드는 그 장면...

사실 저는 그 감격스런 장면을 보며, 박철순선수가 잡지도 못할 공에 왜 저렇게 어설프게 점프를 하며 우스꽝스럽게 넘어졌을까 하는 철없는 생각을 했었는데...


사실은 그 장면이 허리가 완전히 한계에 달한 상태에서도 온 몸의 힘을 다 짜내 그 타구를 잡아보고자 점프한 것이기에 겉보기에는 어설퍼보이는 점프가 된 것이고...

점프후 아픈 허리로 인해 제대로 착지 하지 못하고 그냥 넘어지며 엄청난 충격이 허리에 가해져 이제는 더이상 일어설 수도 없는 상황이 된 것이었고...

그래서 유지훤의 송구가 신경식의 미트속으로 빨려들어가며 우승을 확정지은 순간...

일어서지 못한채 그져 마운드에 무릎을 꿇고 있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라는 사실은 전혀 몰랐었네요.



정말.. 수백번도 더 봤던 그 장면이 박철순선수의 몸에는 엄청난 고통을 주었던 장면이었다니... ㅠ.ㅠ


우승을 위해 선수생명을 맞바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박철순선수였기에...

아직도 올드 베어스팬들은 박철순이라는 이름 세 글자만 들으면 눈가가 촉촉해지는 것이겠지요.



박철순선수의 얘기를 읽으며 떠오르는 선수가 있더군요.

바로 임태훈선수.



베어스팬으로써 임태훈선수는 뭐라 할 수 없는 선수죠.

비록 우승은 못하고.. 항상 우승의 문턱에서 분루를 삼켜야 했지만...

그래도 베어스가 그 정도의 강팀이 될 수 있었던 영광 뒤에는 임태훈선수의 희생이 있었죠.


지난 3년간 포스트시즌 포함해서 매년 60경기 이상 출전하며 평균 100이닝을 훌쩍 넘는 투구...

지금까지 수많은 노예들이 있었지만... 임태훈처럼 3년 연속 꾸준하게 많은 경기에 많은 이닝을 견뎌낸 선수는 흔치 않죠.



박철순선수가 우승과 선수생명을 맞바꾼 것에 감히 비교는 될 수 없겠지만...

올해의 부진이.. 지난 3년간의 희생과 상관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팬들은 많지 않기에...

지난 준PO 1차전 9회 마운드에 올라온 임태훈이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며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도...

차마 그에게 비난의 말을 할 수 있는 베어스팬은 없었을 겁니다.

그저 안쓰러움의 눈물을 흘렸을 뿐...



그랬던 그가.. 아픈 허리를 안고 시리즈 4차전에 나와 좋은 모습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3이닝을 꾸역꾸역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팀이 4차전에서 승리하는데에 숨은 공신이 되었지요.



특히... 1회 무사 만루의 위기에서 오직 직구만으로 7관왕 이대호 선수를 3구삼진.. 그것도 마지막 공은 휘둘러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당하는 스탠딩삼진을 잡아낸건 전율 그 자체였죠.



책에서.. 85년 시즌 막판 박철순 선수가 어느정도 부상을 털어내고 오랫만에 선발로 나와 3년만에 처음으로 승리를 챙기는 장면이 나오더군요.

허리가 온전치 못한 상태였기에.. 허리에 부담을 주는 변화구는 던지지 못했고...

그래서 그날 그가 승리를 위해 던진 82개의 공중 78개는 직구였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경기 후 인터뷰에서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네요.


'오직.. 직구로 정면승부하겠습니다'



이대호를 변화구 없이 직구로 삼진을 잡아내는 임태훈선수를 보면서...

그전에 던진 공들이 특히 변화구가 맘대로 듣지 못해 자초한 무사 만루의 위기였기에...


책을 읽는 순간..

아.. 임태훈선수 허리에 정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그래서 85년 허리가 아픈 박철순이 '오직 직구로 정면승부'하며 3년만의 승리를 따냈던 것처럼..

임태훈도 절체정명의 순간에서 '오직 직구로 정면승부'를 했던 것인지...




박철순선수는 자신의 허리와 맞바꾼 우승에 대해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고 얘기했죠.

또한 박철순선수의 희생 덕분에 저는 어린시절을 베어스 원년의 영광에 취해 기쁨을 누렸고, 지금 또한 그러고 있지요.



하지만..

또다시 운명의 신이 찾아와...

'베어스의 우승과 네가 좋아하는 한 선수의 생명.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한다' 라고 한다면...



저는 가차없이 우승을 포기하고 좋아하는 선수의 생명을 선택하겠습니다.


비록 원년에는 '우승'을 선택해서 기쁨을 누렸지만...

그것이 한 선수의 생명과 맞바꿔서 얻어야 하는 것이라면.. 다시는 그런 아픔을 겪고 싶지 않네요.




임태훈선수의 상태는 잘 모르겠습니다.

정말 던져도 되는 것인지...

아니면 아픔을 무릎쓰고 던지고 있는 것인지...



만약 후자라면..

올해 우승을 못해도 좋습니다.

또한 올시즌은 지난 3년처럼 임태훈의 비중이 어마어마하게 큰 것도 아니구요.


물론... 투수진이 난리가 난 상황에서,

임태훈선수 1명이 더 빠지면 아마 난리가 나겠지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임태훈선수의 상태가 휴식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휴식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우승 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선수가 오랫동안 선수생활을 하는 모습을 더 지켜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