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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그리피 주니어 ⓒ AFP/멀티비츠/스포탈코리아/나비뉴스

화려한 등장 (1989년 4월3일)
오클랜드 콜리세움. 1회초 2번째 타자로 그가 등장하자 관중석이 술렁였다. 신시내티의 현역 외야수 켄 그리피의 아들이자 1987년 전체 1순위 지명자이며, 메이저리그의 새로운 역사를 쓸 것으로 지목된 19살짜리 타자의 데뷔 첫 타석이었기 때문이다. 오클랜드의 에이스 데이브 스튜어트와 맞선 그리피는, 초구를 파울로 만들어냈다. 그리고 2구를 받아쳐 좌중간을 가르는 2루타를 뽑아냈다. 일주일 후 홈경기 데뷔전에 나선 그리피는 1회 첫 타석에서 초구에 방망이를 휘둘러 데뷔 첫 홈런을 뽑아냈다. 4월이 끝나기 전, 그리피는 8타수 연속 안타로 또 한 번 세상을 놀래켰다. 모두가 느낄 수 있었다. 새로운 전설이 시작된 것을.

부자 백투백 (1990년 9월14일)
1990년 8월, 신시내티가 그리피 시니어를 방출하자 시애틀이 재빨리 데려왔다. 이로써 그리피 부자는 메이저리그 최초로 '선수로서' 한 팀에서 같이 뛰게 됐다. 9월14일 이들은 또 하나의 최초 기록을 만들어냈다. 2번으로 나선 아버지와 3번으로 나선 아들이 1회초 경기 시작과 함께 백투백 홈런을 만들어낸 것. 그리피 부자에게 홈런을 얻어맞은 투수는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의 커크 매카스킬이었다. 한편 정확히 3년 전인 1987년 9월14일은 토론토가 1경기 10홈런의 최고기록을 세운 날이자, 칼 립켄 주니어의 8243이닝 연속 출장이 중단된 날이다.

1993년 홈런더비
그리피는 1992년 올스타전에서 그렉 매덕스로부터 홈런을 뽑아내는 등 3타수3안타 2타점으로 올스타전 MVP에 올랐다. 1993년에는 당시 리그 대항으로 치러졌던 홈런더비에 출전, 후안 곤살레스와 함께 7개의 홈런을 날려 AL이 20대12로 승리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나머지 선수 AL-세실 필더 4, 알버트 벨 3 / NL-배리 본즈 5, 바비 보니야 5, 데이빗 저스티스 2, 마이크 피아자 0). 한편 그리피가 날린 7개의 홈런 중 하나는 캠든야즈의 밖으로 날아가 길 건너편 철물점 앞에 떨어졌다. 이후 아무도 그곳까지 타구를 날리지 못했다. 1992년 개인 최다인 27홈런으로 시즌을 끝냈던 그리피는 1993년 이미 전반기에만 22개를 기록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홈런더비 후 더 많은 23개를 날려 45개로 시즌을 끝냈다.

8경기 연속 홈런 (1993년)
후반기 시작과 거의 동시에 그리피는 8경기 연속 홈런으로 데일 롱, 돈 매팅리가 가지고 있는 메이저리그 기록과 타이를 이뤘다. 그리고 시작된 9번째 경기. 미네소타의 선발투수는 스캇 에릭슨이었다. 1회 에릭슨으로부터 단타를 뽑아낸 그리피는 3회 2번째 타석에서 우중간으로 홈런성 타구를 날렸다. 하지만 공은 펜스 상단을 맞고 튀어나왔고, 그리피는 2루에서 멈췄다. 나머지 두 타석에서 범타로 물러나면서 결국 그리피는 최고기록을 경신하지 못했다.

ⓒ AFP/멀티비츠/스포탈코리아/나비뉴스

불꽃을 붙이다 (1995년 8월24일)
5월26일 경기 도중 다이빙 캐치를 시도하다 손목이 골절되는 부상을 입은 그리피는 그 여파로 74경기를 결장했다. 그리피는 킹돔의 낡은 인조잔디에서도 몸을 사리지 않는 수비를 했고, 이는 서른 살이 넘은 후 시작된 지독한 햄스트링 부상으로 이어졌다. 그리피가 돌아온 8월15일, 시애틀과 선두 캘리포니아의 승차는 무려 12경기반에 달했다. 팀이 1승4패에 빠지며 백기를 들려던 순간, 그리피는 9회말 2사에서 양키스의 마무리 존 웨틀랜드를 상대로 극적인 끝내기 투런홈런을 뽑아냈다. 자신의 생애 첫 끝내기였다. 시애틀은 이 승리를 시작으로 6승2패를 기록, 승차를 6경기반으로 줄였다. 2경기 차로 다가선 9월19일, 그리피는 다시 연장 11회말 끝내기홈런을 날렸다. 다음날 시애틀은 공동선두가 됐다. 그리피는 이 홈런을 시작으로 8경기에서 .406 5홈런 15타점을 몰아쳤다. 그리고 시애틀은 원게임 플레이오프 끝에 극적인 지구 우승을 차지했다.

The Double (1995년 디비전시리즈)
양키스와의 디비전시리즈. 시애틀은 그리피가 3홈런 5타점의 대활약을 했음에도 원정 1,2차전을 모두 패했다. 하지만 홈 3,4차전을 모두 잡아내면서 최종 5차전이 성사됐다. 시애틀은 8회초까지 2-4로 뒤져 패색이 짙었다. 하지만 8회말 데이빗 콘으로부터 뽑아낸 그리피의 솔로홈런을 시작으로 4-4 동점을 만들었고 경기를 연장전으로 몰고 갔다. 연장 11회초, 시애틀은 하루밖에 쉬지 못하고 구원 등판한 랜디 존슨이 5점째를 내주는 위기에 몰렸다. 하지만 11회말 선두타자 조이 코라가 번트안타로 출루했고, 그리피가 안타로 무사 1,3루를 만들었다. 그리고 시애틀 역사상 가장 극적인 순간인 에드가 마르티네스의 'The Double'이 나왔다. 그리피의 시리즈 5경기 성적은 .391 5홈런 7타점 9득점이었다.

클레멘스로부터 2방 (1997년 4월25일)
로저 클레멘스가 1945년 할 뉴하우저 이후 AL 투수의 첫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1997년. 클레멘스는 264이닝을 던지면서 9개의 홈런밖에 맞지 않았다. 1경기에 2개를 맞은 것은 단 한 번. 바로 그리피에게 당한 것이었다. 토론토 원정경기에서 그리피는 3회 클레멘스로부터 동점 솔로홈런, 7회에는 1점 차로 추격하는 솔로홈런을 뽑아냈다. 이후 불펜진이 불을 지르면서 결국 클레멘스의 승리는 날아갔다. 그리피는 경기가 9-7로 뒤집힌 8회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스리런홈런에 이어 다시 3번째 솔로홈런을 날렸다. 그리피에게 가장 많은 홈런을 허용한 투수는 데이빗 웰스(8개). 그 다음이 클레멘스(6개)다.

ⓒ AFP/멀티비츠/스포탈코리아/나비뉴스

300홈런 (1998년 4월13일)
1997년을 294홈런으로 마친 그리피는 1998년 12경기 만에 6개를 때려냈다. 역사상 2번째로 어린 나이(28세143일)에 달성한 300홈런이었다. 비록 지미 팍스보다는 180일이 뒤졌지만, 팍스가 그리피보다 2살 어린 나이에 데뷔했음을 감안하면 추월이 가능한 페이스였다. 결국 그리피는 400호에서 팍스를 따라잡았다. 그리피는 500호가 되면 베이브 루스보다 2년이 빨랐던 팍스의 기록을 1년 더 단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그는 모두가 공인한 756호 도전자였다. 하지만 이후 부상이 쓰나미처럼 그를 덮쳤고, 모든 것이 어그러졌다. 그리피가 500호를 넘은 것은 만 34세212일로, 오히려 루스(34세186)보다도 뒤졌다.

56홈런 (1998년)
그리피는 1997년 생애 최다인 56개의 홈런을 날렸다. 아메리칸리그에서는 1961년 로저 매리스(61개) 이후 최고 기록이었다(그 해 58개를 기록한 마크 맥과이어는 AL-NL 합산 기록). 이듬해 그리피는 또 56개를 쏘아올렸다. 하지만 그리피에게는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지 않았다. 심지어는 실망스럽다는 말까지 나왔다. 내셔널리그에서 벌어진 맥과이어와 새미 소사의 홈런 레이스 때문이었다. 100% 깨끗한 것이 맞다면, 그리피는 스테로이드 시대 최대 피해자 중 한 명이다.

굿바이 킹돔 (1999년 7월15일)
1977년 창단 때부터 시애틀의 홈구장이었던 킹돔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시애틀은 전반기 마지막 홈경기를 킹돔, 후반기 첫 홈경기를 세이프코필드에서 갖기로 했다. 그리피는 킹돔에서의 마지막 경기에서 킹돔 역사상 마지막 홈런을 때려내고 후안 곤살레스의 홈런 타구를 잡아내며 고향과도 같았던 킹돔과 작별했다. 세이프코필드는 그리피에게 악조건이었다. 주 홈런코스인 우중간은 킹돔보다 11m가 더 길었으며, 바다 쪽에서 불어온 습한 바람이 홈런 타구를 집어삼켰다. 그리피는 선수들의 의견을 모아 펜스를 앞으로 당겨줄 것을 요구했지만 구단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느날 그리피는 당연히 홈런이 될 줄 알았던 타구가 중견수에게 잡히자 덕아웃으로 돌아와 단장에게 전화를 걸었고 트레이드를 요구했다. 하지만 시즌이 끝나고 그리피가 실제로 세이프코필드에서 거둔 성적(.278-382-616)은 킹돔(.299-388-618)의 그것과 거의 다름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