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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딱한 유럽 2006]

제 9탄 스카이섬 - 삽질의 추억

작성일
09-01-16 09:09
글쓴이
퍼스나콘 [눈웃음]선배거긴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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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유럽일까.

물가 비싸고 멀고 식상한 유럽이 배낭족들에게 이토록 인기가 있는 이유는 대체 무얼까.

대답 할 수 있는 이유야 많다.

첫째로 서구문물은 지난 수십년간 우리사회에서 '상류문화'의 코드로 자리 잡혀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치안도 대체로 괜찮은편이고,

편리한 교통과, 여행지에 대한 많은 정보가 그 이유가 될 거다.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얽히고 설킨 철도망은 유레일패스만 있으면 못 가는 곳이 없다.

기차에 올라타서 창밖을 바라보며 두어시간쯤 그저 앉아있기만 하다 내리면,

전혀 새로운 분위기의 경관과 박물관과 유적지가 기다리고 있다.

다시 기차에 올라타서 또 멍하니 몇시간쯤 창밖을 바라보다 내리면

또 다시 멋진 왕궁과 다리와 음식들이 '어서옵쇼'를 외친다.

또 기차에만 오르면.. 또.. 또..



서점과 인터넷에는 각양각색의 여행가이드북과, 정보와, 여행기가

너도 나도 '저를 좀 봐 주세요!!' 하면서 차고 넘쳐 흘러 아우성을 친다.



하지만 하일랜드는 적어도 교통과 정보라는 부분에 있어서는

이러한 선진 유럽의 메리트가 전혀 없다.



기차노선이 있기야 하지만 유레일 패스는 사용 할 수 없고

영국 철도청의 살인적인 요금이 그대로 적용된다.

인구가 적다보니 수요가 부족해 운행 횟수는 하루에 두번쯤?

이마저도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미묘한 갈등 탓에 런던에서는

스코트레일 노선 예매를 해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길어야 30일 일정에 여기저기 찍고턴 하기 바쁜 한국 배낭족들은

이 머나먼곳 까지 올 여유가 사실은 없다.



그리하여 정보는 부족하다.

2006년 기준으로, 국내 배낭족들이 가장 선호하는 가이드북인 '백배'와 '론니'

최신판 어느쪽에도 하일랜드에 관한 정보는 찾을 수 없다.





45파운드짜리 값비싼 아침을 잔뜩 먹어둔 그 이른 아침,

한달 전부터 시티링크에서 싼값에 예매해둔 스카이섬Isle of skye행 버스를 탄다.









인버네스에서 스카이섬으로는, 버스로도, 기차로도 갈 수가 있는데,

나는 출발할때는 그 유명한 네스호를 끼고 달리는 버스구간을,

돌아올 때는 광활한 하일랜드 중심을 가로질러

유럽에서도 최고의 풍광으로 손꼽히는

인버네스-카일오브로할쉬 Kyle of Lochalsh기차구간을 선택했다.











정신머리 제대로 박힌 사람치고,

네스호에 수룡 같은 것이 정말로 있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거다.

하지만 이 커다랗고 시커먼 호수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보면,

누구라도 이 안에서 뭔가 무시무시한 괴물이

불쑥 튀어나올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될 법하다.











스코틀랜드중에서도 특히 하이랜드 지방에서는 지명부터 이렇게

영어식과 켈트어식, 두가지를 같이 표기한다.

분명히 영어를 쓰기는 쓰는곳인데, 영어권 나라에서 좀 멀어진 느낌이다.









카일오브로할쉬까지 버스를 타고 가는 도중에는 네스호를 등지고 있는

Urquart Castle과 Eilean Donan Castle이라는

두개의 멋진 섬을 지나친다.













특히 Urquart Castle 에서는, 겨우 5분동안이기는 하지만

잠시 내려서 사진을 찍을 시간이 주어지기도 한다.

투어도 아닌 일반 버스노선인데도, 여행객을 배려한 센스가 멋지다.











영화 하이랜더, 007 -The world is not enough

등에서도 나와 우리에게 낯설지만은 않은 Eilean Donan Castle.











드디어 스카이섬, 목적지인 카일라킨Kyleakin에 도착한다.



버스편을 이용 하는 것이 기차 보다 유리한 이유 중의 하나가,

기차는 스카이섬 바로 앞에 있는 카일오브로할쉬까지 연결되는데 반해,

버스는 카일오브로할쉬를 지나 스카이다리를 건너 스카이섬 내부에 있는 첫번째 마을인

카일라킨까지 가서 내려주기 때문이다.



이제와서야 스카이섬에 대한 설명을 하자면,

그 경치 좋다는 하일랜드지방에서도 최고로 쳐 주는,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는 스코틀랜드의 정점이다.

면적은 그리 크지 않지만, 과거의 활발한 지질운동 덕분에 다양한 지형을 감상 할 수 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원시적인 벌판이 끝 없이 펼쳐진 모습은 더 없이 극적이고 신비롭다.

Isle of skye의 skye란 '하늘'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켈트어로 '날개'라는 뜻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섬 전체의 모양이 날개를 닮았다는데서 붙은 이름이긴 한데,

그냥 귀에 들리는대로 '천공의 섬'이라고 해석하여도 전혀 무리가 없는, 그런 곳이다.













학교 도서관에서 구판 론리플레닛 그것도 영문판을 찾아다 복사하고

'스카이섬'이라는 검색어에 엄하게도 스카이 휴대폰에 대한 정보를 보여주는

네이버를 쥐어짜내어 억지로 억지로 여기까지 섰다.

이제 태초에 천지가 창조 되기 이전시절의 환상적인 시공간속으로 나아가기만하면 되는 것이다...



카일라킨의 유스호스텔에 짐을 풀고 보무도 당당하게 섬 구경을 나선 내가,

그날 하루의 일정이 완전히 망해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오늘, 2006년 6월 25일은 일요일이다.

뒤늦게서야 스코틀랜드 관련 책자를 보고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하일랜드 사람들은 일요일의 안식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긴단다.

과장된 설명이기야 하겠지만 일요일에는 산책도 해서는 안되고

빨래를 널기 위해 베란다로 나가서도 안된단다.



카일라킨에서 섬 내부로 오가는 버스는 오후 6시경에 딱 한대뿐이다.

안식일에 버스를 타고 섬 이곳 저곳을 돌아보려 한 나는

그 지방의 종교적 특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온 무지렁이 배낭족이 되어버렸다.



버스가 없으면 뭐 어떠랴.

까짓거 '섬' 따위가 커봐야 얼마나 크겠어.

내게는 장딴지 튼실한 두 다리가 있다.

제대한지 사흘만에 비행기를 탔으니, 아직까지 군인 신분을 벗어난지

보름이 채 되지 않았던 내게는 군인정신이 충만하다.

걷자. 걸으면 된다.









바다가 바로 보이는 잔디 깔린 축구장과 놀이터.

부럽다. 애들은 그저 이런데서 뛰어 놀아야 한다.











금발 여자라면 일단 들이대고 본다.

집 앞 정원에서 혼자 소꿉놀이 하고 있는

순수 스코틀랜드혈통 꼬마아가씨에게 추근대며 결국 사진찍는데 성공.









이런풍경도 좋고,







또 이런 풍경도 좋고,











이런 풍경도 좋다.







하지만 세시간, 세시간을 꼬박 걸었지만, 섬의 중심지인 포트리Portree는 커녕

두번째 마을인 브로드포드Broadford조차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슬슬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섬이라길래 끽해야 제부도, 여의도, 월미도 정도의 넓이일거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제주도정도, 아니면 그보다 훨씬 더 큰 섬이라면?



차편도 마땅치 않은데, 지나가는 '택시'는 단 한대도 보지 못 했는데,

숙소가 있는 카일라킨으로 되돌아서서 다시 세시간을 걸어가야 한다면?



뭔가가 등줄기를 타고 쑤욱 흘러내린다.

큰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는 직감이 든다.

그래, 벌써 몇년전이던가.

그 해 겨울, 대학입시원서를 접수 할 때,

치열한 눈치작전 끝에 단지 경쟁률이 가장 낮다는 이유하나만으로

'법학과'를 선택 했을 때도 이런 기분이 들었었다.





잘못하고 있는거다. 이대로 계속 걸어서는 안된다.

숙소로 돌아가야 한다.

결국 브로드포드로 향한지 세시간만에,

나는 오던 길을 되밟아 카일라킨으로 돌아선다.



역시 나중에 안 사실이긴 한데,

스카이섬의 전체 총 면적은 제주도만하다.

서울시보다도 거의 세배가 넓으니,

아무 생각 없이 여기를 걸어보겠다고 덤빈건 단단히 미친짓이었다.



영화에서 보던대로 내 옆을 지나치는 차들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워보지만,

철저하게 무시당한다. 여기는 개인주의가 판을 치는 서양이고, 성수기의 관광지다.

생긴것부터가 생소한 동양인을 언제 봤다고 태워줄 것 같지는 않다.



여태 걸어온 길이니 다시 걸어서 돌아가면 된다.

세계여행경력 10년이 넘는 쁘리띠님은 순례자의 길을 걷기 시작하며,

한달동안 그저 걷기만 한다는 것이 행복해서 죽을것만 같았다던데

여행 열흘차인 나는 이런식으로 그저 걷기만 하는 것이 시간 아까워 죽을것만 같다.











6시간의 고행을 마치고 돌아온 나를 반겨주는 조촐한 저녁식사.

우유는 물 탄듯 묽고, 빵은 깔깔하게 입천장을 긁는다.

살이 빠지지 않을 수가 없다.

스코틀랜드는, 이렇듯 다이어트하기에도 좋은 여행지다.





















카일라킨 호스텔 뒷편의 야트막한 산으로 30분정도 걸어 들어가면,

이렇게 다 허물어진 성채가 남아있다.











낡아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안내판을 억지로 읽자니,

13세기 노르만족이 세운 일종의 해안경비초소라고 한다.

토익 R/C 300점을 겨우 넘긴 가련한 독해력으로는 여기까지가 한계다.

바윗돌을 구하기도 힘든 이런곳에 성을 짓고 땅을 차지한 노르만 친구들도 대단하고,

또 이런 먼곳까지 강철기갑보병 끌고 와서 뭉개버린 잉글랜드 친구들도 참 대단하다.

천하의 카이사르도 영국땅을 정벌하면서 차마 스코틀랜드는 건드리지 못했다던데 그래 대영제국 만세다.















까마득히 멀리 보이는 스카이대교.

해는 대체 언제 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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