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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딱한 유럽 2006]

제 10탄 에딘버러 -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는 배고픈 배낭족이 되자

작성일
09-01-18 14:01
글쓴이
퍼스나콘 [눈웃음]선배거긴안돼
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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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적 부터 숫자에는 완전히 젬병이었다.

특별히 바가지를 뒤집어 쓰지도 않았고 낭비를 한 기억도 없는데,

어디서부터인지 알음알음 커지기 시작한 적자는 걷잡을 수 없다.

지금 생각해보니 인버네스에서 B&B 더블룸을 혼자 쓴 타격이 아닌가 싶다.





글라스고에서 출발하는 빠리행 라이언에어를 타기까지는 아직 이틀이나 남았는데,

주머니에 돈이라고는 공항까지 가는 차비와 숙박비를 제외하고

13파운드가 조금 더 남았다.

빠리, 그러니까 유로화가 통용되는 유럽 대륙으로 날아가기 전까지

영국화폐인 파운드화를, 계획에 맞게 딱 미리 환전해간만큼만 다 쓰게된다면 기분이 아주 좋을것 같다.





여행중의 씀씀이 라는 것이 배낭족들마다 천양지차이긴 한데 내 기준으로 13파운드는,

오늘 저녁과 내일, 그리고 모레 아침까지 그럭저럭 버틸 수 있는 금액이다.

스코틀랜드 전통 순대요리라는 하기스 같은걸 사 먹을 수야 없겠지만,

빵과 우유로 대강 끼니를 때우다가 마지막에 피쉬앤칩스정도는 한번쯤 먹을 수 있겠다.

이틀동안 13파운드면 넉넉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부족할 것도 없다.























그러나 재난이란 언제 어디서나 몸을 잔뜩 웅크린채 도사리고 있기 마련이다.

에딘버러성 입장료 10파운드, 학생할인도 없다.

에라 모르겠다. 내게는 선택권이 없다.

인생 전반을 통틀어 다시 오게 될 가능성이 희박한 이곳을 포기할 수는 없다.

배고픈거야 어떻게든 견딜 수 있다. 사람이 좀 굶는다고 그렇게 쉽게 죽지는 않는다.

두눈을 질끈 감고, 입장권을 사 버린다.



















성 위에서 굽어 보이는 에딘버러 시가지와 파란 하늘,

그리고 저 멀리 바다가 한눈에 다 들어오니 가슴이 탁 트인다.

이 풍경 하나만으로도 10파운드가 조금은 덜 아까워진다.







































거대한 화산암 위에 우뚝 솟아 삼면이 절벽으로 둘러싸인 에딘버러성은

왕들의 거처이기 이전에, 색슨족으로부터 스코틀랜드를 지켜내기 위한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성내부는 밖에서 보기와는 달리 규모가 제법 크다.

칼과 대포, 총 같은 무기와 갑주들,

왕가의 물품들에 죄수들의 생활상까지 쏠쏠한 볼거리들도 많다.

입장료가 비싸기는 하다만, 그래도 들어가 볼만한 가치는 충분한 곳이다.





























에딘버러성은 기분 좋게 잘 구경하고 나왔지만, 다시 식비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남았다.

이제 정확히 3파운드 하고도 10펜스로 다섯끼니를 버텨야 한다.

우리돈 5,500원도 아니고 그 비싼 영국에서의 3.1파운드로.





왜 입장료는 빼놓고 식비만 계산하느냐고?

에딘버러에서는 에딘버러성을 제외하고는 입장료를 낼만한 곳이 딱히 없다.

왕립박물관과 국립미술관 같은 커다란 전시장이 모두 입장료가 무료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자기네들은 영국이 아니라 스코틀랜드라고 외쳐본들,

결국은 토니 블레어 내각의 노동당이 꽉 쥐고 있는 유나이티드 킹덤의 나와바리다.

물론 스코틀랜드에도 독자적인 의회는 있지만, 박물관 입장료를 받지 않는 정책은

그대로 따라가고 있나 보다.

영국에서는 어린이들에게 역사인식과 현장실물교육효과를 위해,

국가가 소유한 박물관과 미술관은 내외국인을 불문하고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죄다 훔쳐온 물건들로 입장료를 받는다는게 웃긴 일이기도 하겠지만,

어찌됐건 런던과 마찬가지로 에딘버러에서도 국영 전시장의 입장료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시내에 있는 테스코로 가서 스파게티면 한봉지에 토마토소스 한병, 그리고 생수 2리터를 사고도 99펜스가 남는다.

기쁜표정으로 테스코 만세를 외쳐본다.

이제 아침점심저녁을 호스텔 주방에서 스파게티만 주구장창 해 먹으면 된다.

에딘버러의 볼거리들은 그리 넓지 않은 구시가에 죄 모여 있어 걸어 다닐 수 있고,

다행히도 내가 잡은 호스텔은 구시가 중심부에 위치해 있어서 끼니때마다 잠깐씩 들리는데 무리가 없다.



















































왕립박물관으로 입장했을 때가 마침 정각이었나보다.

사람도 별로 없는 넓은 홀 한켠에서 망측하게 생겨 먹은 시계가 홀로 환영을 해준다.

사방에서 뭔가가 이상한것들이 튀어 나와서 벌리고 때리고 돌리고 뒤집고 비틀며 난리를 친다.

자폭장치라도 터지는 줄 알았다.





































그 아름답다는 프라하의 천문시계라는 것이 사실은 터무니 없는 사기라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그리고 이 녀석이 유럽 전체에서 가장 별스러운 시계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일부러 시간을 기다려 정시에 종소리 치는 장면을 한번은 더 봤을텐데 참 아쉽다.



























아침, 점심을 스파게티로만 때운 것은 확실한 패착이었다.

매 끼니를 라면만 먹는것과 비슷한 비용이었고, 또 비슷한 효과가 나타난다.



















에딘버러 구시가 뒤에 있는 Arthur's Seat은 그리 높지는 않은 뒷산이었고,

나는 별로 많이 걷지도 않았는데도 산마루를 올라가는 중턱쯤에서 그만 다리가 풀려버렸다.

그래. 기름기라고는 전혀 찾을 수 없는 토마토소스를 그나마도 아끼고 아껴서 뿌린 밍밍한 스파게티는,

모르긴해도 3대 필수 영양소를 고루 갖춘 음식은 절대로 아니다.

이러다 영앙실조 걸리겠다. 에딘버러성 지하감방의 죄수들 식단에도 고깃점은 있던데.

















인간이 끝도 없이 단순해져간다.

춥고 배고프면 서럽고, 예약하려는 호스텔에서 전화를 받지 않으면 화가 나고, 짐이 무거우면 짜증난다.

배부르고 따뜻하고 숙소가 잡혀 있는데 누구랑 영어라도 몇마디 나누면서

괜찮은 장면 좀 사진으로 남겼다 싶으면 이내 또 입이 귀 밑에 걸린다.

아끼고 아끼던 햇반과 고추참치를 하나 까먹으니 기분이 좀 풀리지만, 허기는 여전하다.

잠깐동안 아쉬워하다가, 미련 없이 하나씩 더 먹는다. 배 부르다. 기분 좋다..







가지고 있는 유로화를 환전하면야 물론 되겠지만 그건 싫다.

뭔가 거창한 까닭이 있는것도 아니고 그냥 싫다.

더 쓰지 않아도 살아남을 수 있는데,

옆에서 배고프다고 우는 소리하는 일행도 없는데 의미 없는 지출은 하지 않으련다.







대신, 프랑스에 가서는 그 고급요리라는 푸아그라를 먹어야지.

달팽이랑, 홍합도 먹어야지, 이탈리아에서는 피자와 스파게티만 밀어 넣어 줄테다.

스페인에서 희재를 만나게 되면, 풀코스요리와 함께 코가 비뚤어질 때 까지 샹그릴라를 먹자.

그러니 여기서는 조금만 더 참자.

이곳은 The worst food court in the world, United Kingdom이나니...























에딘버러성 바로 아래에 있는 타탄양모공장에서는,

양털로 실을 만들어 염색하고, 천을 짜서 재단하여 마침내 전통의상 킬트를 만드는 일련의 과정들을 상세히 보여준다.

단순히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한 장치만은 아닌듯 하다.

그러니까 관광산업을 통한 국가 이미지 제고랄까.





아무리 무심한 사람이라도 이 별나게 생긴 모직물과 킬트를 기억 한켠에 남기게 된다면

스코틀랜드와 영국간의 미묘한 감정싸움에까지 관심을 갖게 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에딘버러를  단순히 '영국'이라고만 생각하지는 않게 될 것 같다.























비온뒤에 땅이 더 굳는다고, 잉글랜드의 지배아래 스코틀랜드라는 국가로 인정받지 못해서인지

이곳 사람들의 민족문화 수호의지는 대단하다.

반만년 역사가 빛나는 단일민족이라는 우리보다도 더하다. 본 받을만 하다.

집 나와 보니 볼 것도 많고 배울 것도 많다.



















떠나는날 아침, 터미널로 떠나기 전,

남은 99펜스를 들고 다시 한번 테스코에 들어가 봤더니, 딱 99펜스하는 빵이 있다.

RYE BREAD with SUNFLOWER SEED.

라이마을에서 난, 해바라기씨가 있는빵.

오호라... 해바라기씨 빵이 라이마을에서는 특산물인가보다.

이렇게 가격까지 내 주머니사정에 정확하게 맞춰주다니,

정말이지 라이는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RYE는 내가 방문한 영국 남동부의 그 조그마한 라이 마을이 아니라, 그냥 곡식 이름이었다.

그 때 까지만 해도 나는 RYE가 '호밀'이라는 뜻인줄을 몰랐다. 어쩐지 뭔가가 께름칙하더라.

스프나 고기에 조금씩 곁들여 먹는 빵일까. 빵인지 흙인지 벽돌인지 깔깔하기만하다.

그냥은 도저히 넘어가지 않는다.

꾹 참고 두어번 뜯어 먹어 봤지만, 결국에는 휴지통으로 던져 넣고야 만다.

뱃가죽이 등가죽에 들러 붙을 지경인데 전재산을 다 긁어서 산 음식을 맛만 보고 버리다니,

정말이지 스코틀랜드는 다이어트의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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