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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짜르트형님 그간 안녕하셨는지요.



저는 예전에 한국에서 뵜었던 이중현이라고 합니다.

예. 거기서 영화 아마데우스로 형님과 제가 만났었죠.

그 영화가 나온게 1984년이니 제게는 퍽이나 오래된 영화라 지루 할 줄 알았었는데,

형님의 아하하하 하는 경박한 웃음소리가 너무나 매력적이라서

2시간이 넘는 가까운 러닝타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습니다.

과연 아카데미상 8개 수상이라는 타이틀이 아깝지 않더군요.




그 영화로 인해 저는 형님이 천재라는 것, '짤즈부르크'라는 도시에서 형님이 태어났다는 것,

우리집 세탁기가 탈수까지 다 마쳤다고 어서 빨래 널라고

뾰로롱 하면서 내는 소리조차도 사실은 형님의 음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하간 순전히 그 영화로 인해서 저는 이번 일정에 '짤즈부르크'를 집어넣었습니다.

사실 그 영화가 프라하 올로케라느니, '짤즈부르크'는 몇번 언급만 되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느니 하는 말은 안하셔도 되요.

엊그저께 비엔나의 쇤부른궁에서 요제프아저씨가 가르쳐 줬거든요.

중요한건 팩트가 아니라 상징이라구요.





사실 짤즈부르크하면 떠오르는 영화는 '사운드오브뮤직'이죠.

짤즈부르크에 가면 사운드오브뮤직 투어도 있다면서요.

'도는 도는 도깨비, 레는 노란 민들레, 미는 쫄깃쫄깃 인절미,

파는 파란하늘에 솔솔 부는 봄바람 라라 즐거운노래

시인나게 불러요 모두가 즐겁게 랄랄라'하는 번역센스만점의

일요 아침 만화 '알프스의 노래'는 꼬박꼬박 챙겨보던 저였지만,

영화는 사실 본 것도 아니고 안 본 것도 아니예요.





중학교 때, 학교에서 시립예술회관으로 사운드오브뮤직 단체관람을 하러 간적이 있었거든요.

저는 아무래도 나온지 30년도 더 된 영화보다는 지난달에 나온 '철권'을 더 좋아할 나이였었죠.

커튼을 잘라만든 옷을 입고 도레미송을 부르는 장면이 끝나자마자 담임선생님 눈을 피해

근처 오락실로 도망쳤었고, 마리아와 그 일당들이 그 뒤로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어요.

전혀 알고 싶지도 않았구요.





이야기가 좀 샜는데, 제가 짤즈부르크로 향하건 순전히 형님탓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어요.

사실 전 취향이 그닥 고풍스럽지 못하여 레퀴엠이니,

피가로의 결혼이니, 돈조반니 이런건 별로 즐기지 않았어요.

제가 즐겨 듣는 음악은 마릴린맨슨, 양방언, 서태지, 스트라토바리우스,

이선희, 신해철 처럼 세속적이면서도 약간 별난  취향이랍니다.






하지만 형님의 음악이 '고전'으로 칭송되어

후세에 무수히 많은 음악가들에게 영향을 끼친 것쯤은 저도 잘 알고 있어요.

음대 다니는 친구가 그러던데요. '락'이라는 장르를 하나하나 따라올라가보면 결국 비틀즈를 만나듯,

음악 전체를 하나하나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결국 모짜르트를 만나지 않을 수가 없다고,

니가 듣고 있는 마릴린맨슨, 양방언, 서태지, 스트라토바리우스, 이선희, 신해철에게도

사실은 모짜르트가 알게 모르게 다 녹아 있는 거라고.

니가 어떤 음악을 듣건 모짜르트로 부터 벗어날 수는 없다고.

모짜르트야말로 정녕 음악의 아버지라고.






음악의 아버지는 바흐영감이라는 말은 하지 말아주세요.

아까도 말했잖아요. 중요한건 팩트가 아니라 상징이예요.

그냥 시켜주는대로 음악의 아버지 하세요.

형님은 인류역사상 최고의 음악가예요. 이런 자질구레한 평가에는 초연해지셔야죠.

여하튼 전 그래서 형님 보러 짤즈부르크로 향합니다.







지금은 할슈타트에서 나와 아테낭푸헤임역 플랫폼에서 짤즈부르크행 기차를 기다리고 있어요.

7월이라 날씨가 참 덥군요. 뒤통수가 얼얼해질정도로 시원한 생맥주가 마시고 싶어요. 캬~

프라하에서 맛본 체코 맥주는 정말 맛이 좋았었는데,

그 때 좀 더 마실걸 하며 애써 그 맛을 기억해내려고 노력하는 중이예요.

허공에서 생맥주 잔이 둥둥 떠다니는게 보이는 그런 날이로군요.







짤즈부르크가 맥주로 유명한 도시는 아닌걸로 알고 있어요.

옛날엔 맥주를 뭐, 말 오줌이라고 비하하고 무시했다면서요. 말도 안돼.

오늘날 21세기에는 '술'하면 맥주, '맥주'하면 술이랍니다.

와인만 마셔 버릇 하셨을 형님은 잘 모르시겠지만,

비엔나 맥주는 밍밍한게 아무 감흥도 없더라구요. 점잖은 도시니까요. 맥주는 체코죠.







그나저나 제가 앉아 있는 벤치 바로 앞에서, 어느 금발 남자 두명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네요.

양아치 같이 T발음을 뭉개는 영어를 쓰는걸 보니 미국애들 아니면 캐나다 애들 같아요.

미국과 캐나다도 영어 발음이 미묘하게 다르다는데 저는 그것 까지는 구분 못해요. 

단지 캐나다 애들은 쌀가마만한 배낭에 지네나라 국기를 떡 하니 붙여서 식별이 아주 쉽거든요.

이 친구들 짐에 캐나다 국기가 없는걸로 봐서는 미국 애들 같네요.








딴에는 어디 한번 영어 알아들어보겠답시고 귀를 쫑긋 세우는데,

아 이 자식들이 어떻게나 빠르게 발음을 굴리는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고

가까스로 '뮤닉'이라는 단어하나만 알아차릴 수 있겠어요.









뮤닉이 어딘지 아시죠? 독일의 뮌헨이예요.

아, 유럽식으로 뮌센이라고 말해야 형님이 알아들으시겠구나.

저 친구들은 아마 뮌쉔에서 있다가 여기로 왔나봐요.

이 곳 아테낭푸헤임에서 꽤 가까운 곳이거든요. 










뮌센을 뮤닉이라 부르는걸 처음 아셨다구요? 미국에서는 유럽의 도시 지명을 멋대로 바꿔불러요.

뮌쉔은 뮤닉, 베네치아는 베니스, 비엔나는 빈, 피렌체는 플로렌스, 프라하는 프라그.

모르긴 해도 그냥 사투리 같아요.







우리 한국도 중국이나 일본의 베이징, 상하이, 도쿄 이런 도시들을 북경, 상해, 동경 이런식으로

맘대로 한자 발음 그대로 부르거든요. 뭐 비슷한 사연이있겠죠.

손바닥만한 한국땅에서도 경상도말, 전라도말, 서울말, 북한말이 다 판이하게 다른데

전세계적으로 퍼져있는 영어는 오죽하겠어요.

어떻게든 알아듣는것만 해도 감지덕지죠.







전 이번 여행에서는 뮌헨에 갈 계획이 없어요.

뮌헨뿐만이 아니고 독일땅 전체를 밟을 계획이 없어요.

독일 하면, 딱딱하고 유드리 없는 그런 이미지예요.

게다가 독일사람들은, 네모 낳고 재미 없고,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나올듯한 로보트 같은 민족으로 알려져 있거든요.

마땅한 먹거리라 해봐야 맥주와 소시지 정도?

응? 맥주와 소시지? 맥주, 맥주, 뮌헨, 호프브로이 하우스, 뮌헨, 맥주...







아하하하.. 형님, 죄송하지만, 생각이 바뀌었어요. 짤즈부르크 안 갈래요.

거기 안 간다고 누가 죽나요?

지금 저한테 필요한건 맥주인데,

거기 가 봤자 요란하게 노래부르는 성악가 아줌마 밖에 없을거 아닌가요..

너무 분해하지 마세요. 아마데우스 감독판으로다가 다시 처음부터 끝까지 볼게요.

결혼해서 마누라가 애를 가지면 형님 음악으로 태교도 시킬게요.

이쯤에서 합의봅시다. 저는 술 마시러 뮌쉔의 호프브로이하우스로 갑니다.

혹시나 프라하에서 발렌타인이라는 친구가 오게 되면,

이탈리아로 오라고 좀 전해주세요. 그럼 전 이만... [이 게시물은 최고관리자님에 의해 2009-04-11 09:33:25 불펜 게시판에서 복사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