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인사] 마지막 인사를 드려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 작성일
- 09-05-25 23:13
그리고, 6월에 아마 많이 아플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 죽느냐, 라고 했더니 그럴 수도 있다고 대답하더군요. 나는 가족도 없고 친지도 없다, 혼자 살고 있다, 그러니 내가 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솔직하게 말해달라……라고 말하니, 사실상 시한부 선고를 내린다고 대답을 해 주었습니다.
의사는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고(뭐라고 설명을 하기는 했는데 참 알아듣기도 어렵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멍 해져서 이야기가 다 들어오지도 않았었습니다), 입원한 뒤에 요양과 함께 약물치료를 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나을 방법에 대해서 물어봤습니다. 확신은 할 수 없지만 지금으로써는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하더군요.
나중에 다른 큰 병원의 의사에게서 들은 이야기입니다만……약물치료, 항암 화학요법이나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 당연히 일상적인 생활은 물론, 머리도 모두 빠지고 체중도 급격하게 다운되는 등의 엄청난 후유증을 동반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 그때서야 생각이 났습니다. 엄청나게 고통스러워하면서 항암 치료를 받는 말기 암 환자의 초췌한 모습을. 뼈가 앙상해지고 피골이 상접해지는, 보기 싫은 모습이 되는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병이라는 것이 참 신기하더군요. 악성이라는 녀석은 언제 크기가 확 커질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언제 기억상실을 일으키게 될지, 혹은 갑자기 요절을 하게 될지 모른다고 하더군요. 다만, 그것이 6월 안이라는 잠정적인 추측만 할 뿐이라고 합니다.
참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울어보기도 하고, 푸른 하늘을 보고 원망하기도 하며, 누군가에게 호소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 지쳐 잠이 들고 일어났을 때, 누군가 ‘이건 꿈이다’라고 말해주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태양은 떠오르고, 언제나처럼 세상은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무서웠습니다. 저녁이 다 되어 나 이외에 홀로 소리를 내고 있던 TV마저도 끄게 되면, 세상은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고 저는 어둠 속에 혼자 남게 되었죠. 그 때마다 선명하게, 악마의 기억처럼 ‘나는 죽는다, 곧 죽는다’라는 생각이 저 자신을 덮쳐 왔습니다. 그래서 밤이 싫었습니다.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누군가와 계속해서 함께 있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덕이 모자라고 잘못한 일들이 많아……혼자 감내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죠. 그 동안 참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상처를 주고, 잘못해 왔구나……그래서 그 죄를 받는거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부처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굉장히 담대하고, 또 대인배는 아닙니다만……제 몸이 이렇게 되고 또 ‘너는 곧 죽는다’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니 원망과, 억울함과, 애달픔과, 슬픔은 접게 되고,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는지, 그리고 뭔가를 하고 싶은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것, 마지막까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저와 함께 했던 사람들과 함께 그저 그렇게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하루를, 그리고 이틀을, 그런 나날을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살아 왔던 길 그대로 걷다가, 그렇게 말이죠. 좋은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고, 함께 해서 즐거웠던 사람들과 웃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 회사에 출근하기 위해 아침에 일어나고, 오전을 보내고, 점심을 먹고, 내가 세상에서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면서 오후를 보내고, 퇴근을 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그러다 어짜다 야구장에 가서 신명나게 소리를 지르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었습니다.
물론, 즐겁게 지내다 보면 세상에 다시없을 ‘기적’이라는 것이 나에게도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기는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참 제 인생에서 다시없을 정도로 야구장에 많이 갔군요. 10번을 넘게 갔던 것 같으니 말이죠. 과감하게 평일 조기퇴근을 하고 야구장에 가기도 했네요. 그 안에 있으면 살아있다는 생각에 아드레날린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이 좋은 걸, 그 동안 살기 바쁘다고 왜 그렇게 자주 가지 못했는지 이해할 수 없기도 했지요. 후후.
사람들을 만날 때 티를 내지 않으려고 참 부단히도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어떤 베팍의 형은 제게 “쟤가 요즘은 초반에 말을 잘 안하고 눈치를 보다가 분위기 파악하고 난 다음에 이야기를 시작해, 처음에는 먹기만 해”라고 하더군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습니다. 각성제와 병원에서 내어 준 진통제를 먹으면 일정 시간 동안은 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점점 짧은 주기로 오는 두통과 어지러움증, 그리고 생각의 공백 상태를 사람들과 만나면서 드러내지 않으려면 사람들을 만나기 직전에 약을 먹어야 했습니다. 불안했거든요. 그래서 그 덕분에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던 겁니다.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음식만 열심히 먹어 댔네요, 그러고 보니까(안구에 무리가 오면서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나는 건 어찌할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주위에서 살이 좀 올랐다는 이야기를 했나봐요. 이상하게 피골이 상접해지지는 않더군요. 하하(왜 입맛은 안 없어지는 걸까요? ㅋ...).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오다 보니 벌써 어느덧 2009년 5월이 지나가려 하고 있네요.
후회는 없습니다. 나름대로 만나기 힘들었던 불펜의 형님들도 ‘어느 정도는’긴 길을 마다하지 않고 가서 만나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어 봤고, 또 좋아하는 동생들을 제 집 가까이에다가 불러서 게임도 하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좋은 사람들, 웃는 얼굴들……한 번씩 모두 봤습니다. 제가 품고 있었던 암울한 과거를 불펜 여러분들께 고백하면서 위로도 받았고, 난생 처음으로 부산에 다녀와 보기도 했습니다. 원래 가지 말아야 할 자리였습니다만 일본에 계시면서 한번 꼭 뵙고 싶었던 배까쥬기님도 뵈었지요. 참 반가웠습니다.
다만……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습니다. 나에게 남겨진 이 세상의 마지막 날들을, 누군가를 사랑해 주고 그로 인해 그 누군가에게 행복을 안겨다 주는 사람으로 남고 싶었습니다. 그 사람이 나로 인해 웃는 얼굴을 보고 행복 속에 살고 싶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해 주지는 않지만 남은 시간을 그 누군가에게 쏟아 기억으로 남고 싶었습니다. 나를 잊지 말아달라고 말이죠.
그래서 참으로 성급했었나 봅니다. 그 누군가를 발견하고, 나에게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알아서인지 참 성급했었습니다. 속으로는 외쳤지요, 나에게 시간이 없다고. 그러니까 그냥 잠시 잠깐만 웃어 달라고……마음의 외침이 닿지는 않았더랬습니다. 예전 재미있게 두 번, 세 번 보았던 이림님의 만화 ‘죽는남자’처럼,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해 살고 싶었습니다. ‘아무나 좋아’라는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진심이었습니다. 제 마지막 시간을 걸었던.
누군가에게 물어봤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거리를 걷는 것은 어떤 느낌인가요……’라고.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으니까요.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는데……지금에 와서는 그게 무척이나 많이 아쉽고 슬픕니다.
이 사실을 여러분들께 알리기 전에 먼저 말한 사람이 딱 한 명 있습니다. 그 동생 녀석은 함께 병원에 가자고, 그리고 오진일 거라고 다시 한 번 큰 병원을 가라고 말하더군요. 네, 저도 바보는 아닌지라 서울에 있는 큰 병원이란 병원은 모두 다 다녀와 봤습니다. 똑같았습니다. 상황을 설명하고 다시 한 번 봐 달라고. 그리고 돌아오는 대답 또한 똑같았습니다.
다시 한 번 병원에 가는 거……말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참 쉬운 말이겠지만 저에게는 피를 말리는 일이었습니다. 접수를 하고, 대기실에 앉아서 ‘아닐 거야, 살 수 있을 거야, 거짓말일 거야’를 수도 없이 되뇌며 떨리는 몸과 마음에 저 혼자 용기를 넣었습니다. 그리고 이내 너무나 어렵게 쌓았던 그 용기와 기대는 한 순간 모래위의 누각처럼 무너지고 말지요. 계속해서 거듭해서 찾아오는 억장이 무너지는 절망, 절망, 절망. 이제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네요. 부디, 여러분들도 그 말은 하지 말아 주세요.
불펜엔 한 번 올렸던 저의 과거를 읽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실질적으로 저는 가족이 없습니다. 제가 무슨 일을 하든, 어떤 일을 하든 무신경했던 사람들이었기에, 그리고 저를 위해 울어 줄 사람들이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이것은 굳은 제 다짐입니다). 할머니가 마음에 크게 걸립니다만, 고령에 또 때마침 몸이 많이 아프셔서 할머니한테는 말씀을 드릴 수가 없네요. 하하.
제가 선택한 길에는 후회는 없습니다. 저는 이것이, 진정으로 사람들의 가슴에, 그리고 등 뒤에, 계속해서 살아갈 방법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행복했던 시간들, 그리고 좋은 이야기들, 즐거웠던 기억들, 그것들을 주신 베이스볼파크 여러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베이스볼파크 여러분들께 제가 잘못되기 전에 이 사실을 제가 직접 말할 수 있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그리고 또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아무도 모르게 그냥 잠수하는 것처럼 사라질까도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이곳이, 그리고 이곳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이, 소중하고 좋은 사람들이었기에 이런 말씀을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전 국민이 슬픔에 빠져 있을 때에 가뜩이나 매사 불편한 이야기들뿐인데 다시 한 번 심기를 불편하게 해 드리는 이런 말씀을 드리게 되어 너무나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래도, 꼭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했던 연재를 즐겁게 봐 주셨던 분들, 그리고 다음 연재를 기다리고 계시는 분들께도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제 연재는, 부득이하게 마침표를 찍게 되었네요.
왜 이런 뒤숭숭한 시국에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라고 말하신다면……음, 참으로 이기적입니다만 더 이상 늦췄다가는 안 될 것 같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나름대로 여러분들과의 이별의 준비를 해야 하니까요.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자, 이제 마지막 인사입니다. ‘Time To Say goodbye'라는 말이 있더군요. 웃으면서 안녕이라고 말 할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이후의 계획은 없습니다. 그저 그렇게 살다가, 그저 그렇게 즐겁게 지낼 생각입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회사 일도 하고, 아무 일도 업었던 것처럼 사람들도 만나고요.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요. ^^ 베팍은……탈퇴를 하고 할 수 있을 때까지는 눈팅을 하고 여러분들이 지내는 이야기를 즐겁게 보고, 들을 생각입니다.
여러분들께 마지막 부탁이 있습니다. 지금 함께하고 있는 사랑하는 사람보다 제 몫까지 더 오래, 건강하게 살아 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나는 것을 지켜보는 슬픔을 안겨주지 마세요.
그리고,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나쁜 기억이든, 좋은 기억이든 어떤 것이든 좋습니다. 저를 잊지 마시고, 저라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이곳에서 여러분들과 함께 슬픔과 기쁨을 공유했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는 것을 기억해 주세요. 그리고, 행여나 나중에 제 소식을 들으신다면, 기억해 주세요.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나를 잊지 마세요’.
저를 미워하셨던 분들, 그리고 저를 좋아하셨던 분들, 그리고 저와 별 인연이 없었던 베이스볼파크의 모든 유저 여러분들.
사랑합니다. 모두모두 건강하시고 안녕히 계세요.
;)
